카드이자 10% 상한 79%·약값 상한 87%…美 유권자, 당파 넘어 찬성

기사등록 2026/09/30 18:12:43

WSJ 등록 유권자 1500명 조사…생활비·의료 관련 16개 정책 중 14개 과반 지지

5000달러 지급안 23%·정부 할인 식료품점 37%…정부 개입 모두 선호한 건 아냐

[매캘런=AP/뉴시스] 미국 진보 정치의 상징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20일 텍사스주 매캘런 맥캘런공연예술센터에서 '과두정치와의 싸움' 투어 연설을 하고 있다. 2025.06.23.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미국 유권자들이 처방약 가격과 보육비, 신용카드 이자에 상한을 두는 등 생활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부 개입에 당파를 넘어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보수와 진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정책적 공통분모가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지난 16~21일 등록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2.5%포인트다. WSJ은 중간선거 운동이나 의회에서 논의되는 30개 이상의 정책에 대해 유권자들의 의견을 물었다.

생활비와 직접 연결된 정책의 지지율이 특히 높았다. 처방약 최고가격에 상한을 두자는 방안은 87%, 신용카드 이자율을 10%로 제한하자는 방안은 79%가 찬성했다. 일하는 가정의 보육비에 상한을 두자는 방안도 74%의 지지를 받았다.

정부가 생활비와 의료비 부담을 줄이거나 세제를 바꾸도록 한 16개 정책 가운데 14개가 과반의 지지를 얻었다. 이 가운데 10개는 약 3분의 2 이상의 유권자가 찬성했다. 정부가 할인된 처방약을 안내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방안도 73%가 지지했다.

주택시장에 대한 개입에도 지지가 높았다. 대형 기관투자자가 단독주택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것을 제한하자는 방안에는 75%가 찬성했다. 높은 주택가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관투자자의 주택 매입을 제한하자는 정책에도 유권자들의 호응이 나타난 것이다.

당파의 경계를 넘는 흐름은 경제정책 밖에서도 나타났다. 강력한 국경 통제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많은 동시에 미국에 오래 거주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한 불법체류자에게 시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자는 방안도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적지 않은 응답자가 투표 때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하는 방안에 동의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돈을 풀거나 시장에 개입하는 모든 정책이 인기를 끈 것은 아니다.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의회 다수당을 유지할 경우 모든 성인에게 5000달러를 지급하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지지율이 23%에 그쳤다.

정부가 직접 할인 식료품점을 운영하자는 방안도 37%만 찬성했다. 뉴욕에서 조란 맘다니 시장이 제안한 것과 같은 유형의 구상으로, 조사에 포함된 주요 생활비 대책 가운데 지지율이 낮았다.

부유층 증세에서는 전체 유권자와 공화당 지지층의 차이도 나타났다. 연소득 100만달러가 넘는 고소득자에 대한 연방 소득세를 올리자는 방안은 전체의 73%, 순자산 10억달러 이상 억만장자에게 새로운 연방세를 부과하자는 방안은 61%가 지지했다. 하지만 공화당 지지층에서는 고소득자 증세에 반대하는 응답이 더 많았고 억만장자세를 지지한 비율도 약 3분의 1에 그쳤다.

신용카드 이자율 상한은 정치권에서도 이념을 가로지르는 정책이다. 진보 성향의 버니 샌더스 무소속 상원의원과 보수 성향의 조시 홀리 공화당 상원의원이 10% 상한 법안을 지지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비슷한 방안을 제시했다.

[댈러스=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무대에 오르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6.09.11.
다만 이번 설문은 각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응답자들에게 함께 제시하지 않았다. 신용카드 금리를 10%로 제한할 경우 금융회사가 잔액을 장기간 보유하는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을 줄일 수 있고, 건강보험사의 보장 의무 확대는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WSJ은 높은 지지를 받은 정책 상당수가 소비자와 일반 시민의 이익을 부유층이나 보험사, 대기업 등보다 앞세운다는 점에서 ‘포퓰리즘’ 정책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를 공동 진행한 민주당계 여론조사 전문가 존 안잘론은 미국 정치를 단순히 보수와 진보로만 구분하기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민주당과 공화당 내부에 모두 포퓰리즘적 정책을 지지하는 흐름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공화당계 여론조사 전문가 애덤 겔러는 유권자들이 대기업이나 보험사·금융회사 같은 거대 기관이 공정한 가격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이들 기관의 영향력을 제한해 가격 부담을 낮추자는 정책이 보수·진보를 넘어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중도우파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마이클 스트레인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의 인플레이션을 거치면서 과거 정치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정책들까지 논의 대상으로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연방정부의 시장 개입에 신중했던 공화당에서도 과거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주로 다루던 정책을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2016년 첫 대선 도전 당시 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거나 재협상하고, 공화당 내부의 긴축론으로부터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를 보호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안잘론은 높은 주택가격과 경제적 계층 이동이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과거라면 고려하지 않았을 정책에 관심을 갖는 유권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WSJ은 이런 흐름이 양당에 대한 불신과도 맞물려 있다고 짚었다. 이번 조사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모두 유권자의 거의 60%에게 부정적으로 평가됐고 긍정 평가는 각각 40%를 밑돌았다. 중도좌파 싱크탱크 뉴아메리카의 의회·정치제도 전문가 리 드루트먼은 폭넓은 지지를 받는 정책이 있는데도 양당이 이를 충분히 실행하지 못하는 배경으로 상대 당에 정치적 성과가 돌아갈 수 있다는 계산과 막대한 재정 비용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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