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세 동갑내기 日 인디·메이저 대표 스타
문래동 길거리서 나직이 길어 올린 쓸쓸한 위로
38년 만에 '오리지널 스마일'로 복원한 청춘
지난 6월 데뷔 47년 만에 내한해 눈부시던 '긴기라긴(ギンギラギン)'의 시절을 지나 연륜의 '이부시긴(いぶし銀·묵직한 은빛)'으로 나이 듦의 우아함을 보여준 곤도 마사히코(62)의 무대 이후, 한국의 J-팝 지형도는 또 한 번 깊고 다층적인 결을 드러냈다.
그 중심에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온 원조 팬들의 오랜 노스탤지어를 깨운 두 개의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 일본 인디계 거물 밴드 '키린지(KIRINJI)'의 원년 멤버 호리고메 야스유키(54)의 문래동 노상 라이브와 그와 동갑내기인 일본 엔터테인먼트의 영원한 상징 기무라 다쿠야(54·키무라 타쿠야)의 첫 단독 내한공연이다.
◆철공소 골목에 흐른 '에일리언스'…호리고메 야스유키의 쓸쓸한 위로
지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도림로141길. 낡은 철공소들이 늘어선 골목에 간이 앰프와 건반, 기타가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제3회 문래 시티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나선 호리고메 야스유키는 2004년 키린지로서 싱어송라이터 이상은과의 합동공연 이후 22년 만에, 솔로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기교 없는 담백한 음색으로 '크레이지 서머(Crazy Summer)', '잿더미(燃え殻)', '스위트 솔(Sweet soul)' 등을 이어간 그의 무대는 '에일리언스(Aliens)'에 이르러 골목 전체를 고요한 침묵으로 감쌌다. 호리고메는 지난달 일본 음악 매거진 나탈리와 인터뷰에서 이 곡에 대해 일본 전방위 예술가 데라야마 슈지(테라야마 슈지)의 시적 언어를 경유해 도달한 '세계에 온전히 소속되지 못한 개인의 고독'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최근 샤이니 온유가 일본 싱글에서 재해석해 젊은 K-팝 팬들에게도 익숙해진 '에일리언스'는 회색빛 골목의 가을바람 속에서 원작자의 육성을 타고 더욱 은밀하게 공명했다.
형 호리고메 다카키가 이끄는 키린지가 지난 3월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연 첫 단독 공연으로 정교하고 실험적인 사운드의 진수를 선보였다면, 동생 야스유키는 가장 낮은 길거리에서 삶의 쓸쓸함을 응시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1만5000여 명의 1020 관객이 뿜어내는 감각적인 환호와 거대한 베이스 사운드는, 골목길에서 울려 퍼진 3040 세대의 아날로그적 사유와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유튜브로도 생중계된 한쪽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직관적인 열기였다면, 다른 한쪽은 세월을 통과해 온 리스너들의 은밀한 귀환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두 세대의 음악적 감수성이 한날 서울과 인천의 하늘 아래 나란히 부유한 순간이었다.
◆38년 만에 마주한 영원한 청춘…기무라 다쿠야가 건넨 악수
26일 오후 바운디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인스파이어 아레나에는 기무라 다쿠야가 섰다. 1988년 스마프(SMAP) 데뷔 이후 38년 만에 성사된 첫 단독 내한공연이자 아시아 투어의 일환인 '체크포인트(Checkpoint)'.
국내에서도 신드롬을 낳았던 '롱 베케이션', '뷰티풀 라이프'의 주인공은 50대의 나이에도 흐트러짐 없는 날렵한 실루엣과 맑은 눈빛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개인 곡 중심의 구성 속에서도 '셰이크(SHAKE)', '오리지널 스마일(オリジナル スマイル)' 등 스마프의 찬란한 유산이 흘러나오자 객석의 4050 관객들은 일제히 청춘의 시간 속으로 단숨에 도약했다.
한국 팬들의 오랜 애칭인 '김탁구'를 스스럼없이 부르며 웃음을 안기고, 생일을 맞은 관객을 무대로 불러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여유는 톱스타가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가늠케 했다. 앙코르 끝자락에 비친 그의 서툰 손글씨 "만나서 좋았어"는 3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관객들에게 전하는 가장 소탈하고 다정한 악수였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최근 한국 내 J-팝 소비 지형이 세대별로 완벽한 '투 트랙(Two-track)'을 형성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 축에는 킹 누(King Gnu)와 오피셜히게단디즘(Official HIGE DANDISM)이 있다. 지난 6월 케이스포돔 3만 관객을 집어삼킨 킹 누의 360도 무대와 떼창, 8월 2만6000명을 모으며 '프리텐더'로 청춘의 상실감을 나눈 히게단의 무대는 애니메이션과 숏폼을 통해 일본 록·팝 사운드를 편견 없이 흡수한 1020 세대의 거침없는 개방성을 대변한다.
다른 한 축에는 데뷔 46년 만인 올해 2월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첫 내한공연한 마쓰다 세이코(64·마츠다 세이코)를 비롯 곤도 마사히코와 백넘버(back number), 그리고 호리고메 야스유키와 기무라 다쿠야가 있다. 지난 6월 곤도의 공연장 관객 중 66.7%가 4050 세대였고, 이달 결성 22년 만에 킨텍스를 메운 백넘버의 서정적 멜로디에 화답한 이들 역시 청춘의 상처를 지나온 이들이었다. 과거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 불법 복제 테이프나 라디오 심야 방송을 통해 '숨어서 듣던' 이들에게 이들의 무대는 당당히 과거를 호명하는 '문화적 해방구'다.
젊은 세대의 자연스러운 향유는 기성세대로 하여금 추억을 양지로 끌어올릴 용기를 줬고, 중장년층의 축적된 정서는 공연 시장에 묵직한 연륜을 더했다.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은 과거의 영광을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긍정하며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지켜내는 일이다. 철공소 골목의 은밀한 읊조림과 아레나를 울린 스타의 다정한 미소는 그 자체로 하나의 대답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