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적 쇼 거부하고 도달한 서사적 임계점
단련된 신체성과 객석과의 연대로 완성한 웰메이드 미학
10년의 시간성부터 IP 고유성까지 3차원으로 직조
SM 공연 기획/제작 센터 김경찬 수석·공연 기획/연출 유닛 김명석 책임 문답
25일 K-팝 업계에 따르면, 올해와 지난해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과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각각 펼쳐진 '에스파(aespa)', '엔시티(NCT) 127', 'NCT 드림(DREAM)' 무대는 K-팝의 종가(宗家) SM엔터테인먼트가 구축해 온 라이브 프로덕션의 정수를 여실히 드러냈다. 음반의 개념과 서사에 철저히 복무하는 유기성, 귀로만 흩어지던 무형의 음악을 손에 잡힐 듯한 '물성'으로 전환하는 공간 장악력, 그리고 투어를 거듭할수록 아티스트의 실제 시간과 호흡하며 전개되는 성장 서사는 왜 SM의 콘서트가 K-팝 공연 미학의 독보적인 '모범답안'으로 꼽히는지 명징하게 증명한다.
◆음반과 세계관에 대한 철저한 복무…유기적 성장 서사의 완결
SM 콘서트의 첫 번째 미학적 원칙은 '텍스트 중심주의'다. 세트리스트는 단순히 발표된 인기곡을 나열하는 관성적 구성을 거부하고, 앨범의 테마와 서사의 맥을 한 편의 희곡처럼 완결짓는 드라마의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고척돔에서 당도한 네 번째 투어 '싱크 : 컴플렉시티(SYNK : COMPLæXITY)'는 앞선 선들이 교차하며 피워낸 균열과 복잡성을 무대 위에 그대로 펼쳐 보였다. 에스파 공연 연출을 맡은 김명석 SM 공연 기획/연출 유닛 책임은 "더 커진 규모의 투어를 앞두고 타 아티스트와 차별화되는 지식재산권(IP)의 가장 큰 특징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초창기 서사의 시작점부터 현재 이야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아이-에스파(ae-aespa)'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된 이유"라고 짚었다. 특이점 발생부터 오리지널 자아의 쟁취까지를 5막 구조로 엮어낸 연출은 앨범 속 가상 세계관의 에러를 무대 위에서 풀어헤치며 에스파의 '3막'을 선언하는 성장소설도 보여줬다.
시간성을 무대 위에 번안해 내는 기획력은 NCT의 양대 축에서도 선명하다. NCT 드림이 작년 7월 고척돔 공연 '2025 엔시티 드림 투어 - 더 드림 쇼 4 : 드림 더 퓨처'에서 정규 5집 '고 백 투 더 퓨처(Go Back To The Future)'의 모티브를 바탕으로 시공간을 유영하며 청춘의 불완전성을 질문했다면, 최근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NCT 127의 다섯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더 레드라인(NEO CITY – THE REDLINE)'은 10주년의 임계점을 무대 서사로 번안했다.
◆청각의 시각화…공간 건축으로 빚어낸 손에 잡히는 '물성'
SM 무대 연출의 가장 큰 장점은 귀로 듣는 사운드의 뉘앙스를 시각과 촉각을 자극하는 구체적인 '물리적 실체'로 변환해 내는 공간 장악력이다. 무형의 음악을 유형의 물성으로 치환하는 비결은 공연장의 건축적 한계마저 연출의 질료로 삼는 치밀함에 있다.
이러한 공간 건축은 아티스트 고유의 음악적 물성으로 직결된다. 에스파 고척돔 공연은 스크린이 갈라지는 크랙(CRACK) 특수효과로 가상 자아의 에러를 시각화한 데 이어, 헤비메탈 풍으로 편곡된 '아마겟돈(Armageddon)' 사운드 위로 깃발을 휘날리며 전열을 갖추고 도하하는 연출을 통해 '쇠맛의 물성'을 거대한 블록버스터로 구체화했다. NCT 127 무대 역시 암흑을 면도날처럼 베어내는 100여 대의 레이저와 금속성 사운드 스케이프로 얼음의 질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멤버들의 마찰열을 폭발시키며 '타오르는 빙하'라는 형용모순의 물성을 완성했다.
◆결핍을 채우는 상호작용…부재를 연대의 윤리로 승화
김경찬 수석은 결핍을 다루는 미학적 태도에 대해 "아티스트가 현시점에 필요한 고민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며 "아티스트의 고민은 극복해야 할 도전과제이며, 관객들이 아티스트에게 공감하고 공명하는 순간 역시 이를 이겨내는 동력을 마주할 때다.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 인간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이 에너지의 최대치를 요구하는 공연이야말로 균열과 결핍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짚었다. "그것을 아티스트가 어떻게 인지하고 다뤄나갈지 비전을 제시하는 이미지가 존재할 때 팬들도 사랑할 힘을 얻는다"는 설명이다.
실제 NCT 127 무대에서 이 철학은 눈부시게 빛났다. 가창곡의 중추였던 도영과 정우의 군 복무 공백에 대해 연출진은 10주년을 기념할 신들을 고민하는 동시에, 무대 위 5인의 동선 진폭을 키워 밀도를 채웠다. 휴가를 나와 객석에 자리한 두 멤버와 무대 위 다섯 멤버, 그리고 선배들에 감탄하면서 이들을 응원하는 후배 NCT 위시의 시야가 포개진 케이스포 돔은 부재를 지우는 분장 대신 결핍을 마주한 자들만이 뿜어내는 단단한 연대의 중력장이 됐다.
◆축적된 아카이브가 제시하는 K-팝 콘서트의 모범답안
올해 30주년을 맞은 'H.O.T.' 시절부터 축적해 온 SMP(SM Music Performance)의 유산은 시스템의 피로에 갇히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며 진화해 왔다. 그 중심에는 테크놀로지의 규격과 아티스트의 날것의 에너지를 치열하게 조율하는 '퍼포먼스 디렉팅' 시스템이 존재한다.
앨범의 세계관에 철저히 복무하며 일궈내는 드라마틱한 완결성, 무형의 사운드를 공간의 한계마저 넘어선 물성으로 구체화하는 테크놀로지, 그리고 투어가 누적될수록 아티스트의 실제 결핍과 시간성을 껴안으며 객석과 함께 완성하는 연대의 힘. K-팝 역사의 굽이마다 무대의 패러다임을 넓혀온 SM의 콘서트는, 거대해진 글로벌 산업 안에서 콘서트라는 종합 예술이 도달해야 할 가장 치열하고 근사한 미학적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다음은 SM엔터테인먼트 공연 기획/제작 센터 김경찬 수석(NCT 127 공연 연출)과 공연 기획/연출 유닛 김명석 책임(에스파 공연 연출)과 SM아티스트 콘서트 연출 등에 대해 서면으로 주목 받은 문답 전문.
"현재 아티스트가 어떤 시점에 서 있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고민을 1순위로 상정합니다. 에스파의 경우 더 커진 규모의 네 번째 월드투어 '2026-27 에스파 라이브 투어 – 싱크 : 컴플랙시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타 아티스트와 차별화되는 IP의 가장 큰 특징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기에 초창기 서사의 시작점부터 현재 그들이 가진 이야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아이-에스파의 활용이 두드러지게 된 이유기도 합니다. NCT 127의 다섯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더 레드라인'의 경우 이번 무대에 서는 5명의 멤버들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와 시각적 요소를 공연을 통해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태용과 재현의 합류를 포인트로 잡은 신들을 구상했고, 특히 NCT의 네오함을 상징하는 NCT 127의 색깔을 첫단락에서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의 중반부에는 발라드 등의 가창곡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도영, 정우의 부재를 보완하는 동시에 NCT 127의 10주년을 기념할만한 신들을 고민했습니다. 또한 마지막 섹션은 '피냐타'에서 등장한 험머 자동차 신, '블링이'의 전투기 등 최신 앨범의 이미지들을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각인하는데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에스파의 '쇠맛'을 구현한 크랙 연출과 헤비메탈 깃발 퍼포먼스, NCT 127의 '타오르는 빙하'를 형상화한 레이저 규격, NCT 드림의 돔 천장 미디어 파사드 등은 청각적 파동을 물리적 실체로 체감하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음악의 뉘앙스를 조명, 무대 기믹, 사운드 텍스처라는 만져질 듯한 물성으로 치환해 관객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SM만의 공간 건축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SM은 국내 무대 예술계에서 '퍼포먼스 디렉터'라는 영역을선구적으로 정립해 왔습니다. 거대한 하드웨어와 화려한 특수효과 속에서도 결국 무대의 임계점을 뚫어내는 것은 VCR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근육과 숨결을 던지는 아티스트의 신체성입니다. 연출 시스템 안에서 퍼포먼스 디렉터는 완벽히 계산된 테크놀로지의 규격과 아티스트의 날 것의 에너지가 충돌하여 마찰열을 내도록 어떤 방식으로 조율하고 개입합니까?
"세트리스트 구상이 마무리되면 해당 세트리스트 상에서 아티스트가 소화해낼 수 있는 안무 난이도의 밸런스를 퍼포먼스 디렉터와 함께 논의합니다. 공연 전체의 흐름적인 면에서나 아티스트의 체력적인 면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연속해서 안무 퍼포먼스만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안무를 보여주는 지점과 인터랙티브한 교감을 나누는 지점을 구분하는 작업을 합니다. 음악이 가진 고유한 힘과 아티스트의 에너지, 안무 퍼포먼스, 관객들의 호응만으로 채워질 수 있는 곡들에서는 의도적으로 화려한 연출을 덜어내기도 하는 반면에, 연출로서 콘셉트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구간에서는 해당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퍼포먼스 섹션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연출이 콘셉트에 맞춘 무대 공간을 설명하면 퍼포먼스 디렉터가 디테일한 안무 및 동선을 제작하고 A&R과 함께 편곡 방향성을 설정하는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아티스트와 프로덕션 모두가 최대의 출력값을 뽑아내야 하는 오프닝 섹션의 경우 아티스트에게 한계를 넘어서는 에너지를 요구를 해야할 때도 있습니다. 현재 SM의 공연은 초반부 멘트를 최소화하고 연속해서 가창하는 구성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보다 속도감 있고 밀도 있는 공연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제안을 하는 것은 연출가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실질적으로 에너지를 출력해내는 아티스트에게 달려있기에, 뛰어난 의지와 연습량으로 이를 해낸 모든 SM 아티스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에스파가 가상 세계관의 버그와 에러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거나, NCT 127이 멤버 공백이라는 물리적 결손을 숨기지 않고 무대 위 5인의 밀도와 객석의 2인을 잇는 시선의 중력장으로 승화시킨 연출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대 연출에 있어 결점 없는 완벽함을 덧칠하기보다, 아티스트가 당면한 '균열이나 결핍'을 회피하지 않고 극적인 서사의 발화점으로 전환해 내는 SM 연출팀의 미학적 태도는 어디서 비롯됩니까?
"앞서 언급한 '아티스트가 현지점에 필요한 것과 고민'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티스트의 고민은 극복해내야 할 도전과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관객들이 아티스트에게 공감하고 공명하는 요소들도 이를 이겨내는 동력을 마주할 때입니다.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계속해서 에너지를 사용하고 이 에너지의 최대치를 요구하는 공연이야 말로 균열과 결핍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것을 아티스트가 어떻게 인지하고 다뤄나갈지 비전을 제시하는 이미지들이 공연에 존재할 때 팬들이 아티스트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가는 것 같습니다. NCT 127 공연에서 멤버들을 다양한 이미지로 구현해내면서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달했던 이유입니다."
◆NCT 127의 형광연둣빛 바다가 만들어내는 '원팀의 신뢰', NCT 드림의 '서로에 대한 기여', 에스파와 마이(MY)의 '실존적 연대'에서 보듯 SM 콘서트의 피날레는 객석과의 교감으로 완성됩니다. 연출가가 설계도를 그릴 때 연출 요소로 객석의 팬덤을 어떻게 상정되는지 듣고 싶습니다.
"응원봉 제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빛으로도 아티스트와 관객들의 교감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단순히 빛의 흐름만으로 응원봉 제어를 활용하지 않고 무대의 일부이자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연출이 포인트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 LED에서 펼쳐지는 영상 요소들과의 연동을 예시로 들 수 있는데 NCT 127 공연의 경우 큐브를 통해 멤버들이 눈을 뜰 때 무대에서부터 퍼져나가는 빛이 관객들의 응원봉으로 이어지게 하거나 영상 속 인물이 엔터를 누를 때 응원봉 불빛이 들어오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를 구현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특수 효과 장치를 활용한 비가 내릴 때 응원봉의 빛줄기도 비를 형상화하게 하는 등 관객들이 아티스트를 넘어서 무대와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에 무엇이 있을지를 고민하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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