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동생 대신 20년 넘게 원룸 관리
보증금 8000만원 반환 거부…1·2심 유죄
대법 "보증금 사용·지출에 재량 부여돼"
[서울=뉴시스]홍연우 기자 = 집주인인 동생 대신 20년 넘게 원룸 임대차보증금을 관리하다 일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70대 남성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대법원이 뒤집었다.
오랜 기간 보증금 수령·반환과 건물 관리비 지출 등에 폭넓은 재량을 부여받았다면 단순히 사용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 만으로 횡령의 고의를 인정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업무상횡령 혐의로 기소된 A(70)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서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건물주인 동생 B씨의 형으로, 1996년께부터 서울 노원구 한 원룸 건물의 임대차계약과 보증금 등을 관리해왔다.
그는 2018년 한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 5000만원을 계약 만료 뒤 반환하지 않고, B씨가 대신 돌려준 뒤 반환을 요구했음에도 응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또 다른 임차인에게 받은 보증금 4000만원 가운데 3000만원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자신이 약 20년간 임대차계약 체결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받아 보증금 수령과 반환을 전적으로 책임져 왔고, 실제 받은 보증금을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등에 사용했다며 불법영득의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A씨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B씨에게 횡령금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배상명령도 내렸다. 2심 역시 임대차보증금은 계약이 끝나면 임차인에게 그대로 반환해야 하는 돈으로 용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다며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자금의 용도가 추상적으로 정해져 있더라도 보관자가 구체적인 사용 목적과 사용처, 시기 등에 광범위한 재량을 갖고 사후 보고나 증빙 제출도 요구받지 않았다면 사용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영득의사를 추단해선 안 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A씨가 건물이 신축된 1996년께부터 모친의 위임을 받아 19개 호실의 임대차계약 체결과 보증금 반환, 건물 관리비 지출 등을 맡아온 점에 주목했다. 이후 건물을 공동 소유하게 된 B씨 등도 수십 년간 관리에 관여하지 않았고 A씨에게 보증금 사용 내역이나 증빙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A씨가 임차인들에게 받은 보증금을 자신의 계좌로 관리하면서 호실 구분 없이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을 반환하거나 건물 관리비로 사용해온 점, 형제들 사이 민사 분쟁이 불거지기 전까지 보증금 귀속이나 반환을 둘러싼 별다른 분쟁이 없었던 점도 고려됐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에 비춰 A씨에게 보증금의 구체적인 사용 목적과 사용처, 시기 등에 관해 "광범위한 재량을 가지고 이를 사용할 권한이 사실상 부여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가 일부 보증금의 행방이나 사용처를 설명하지 못하고 증빙자료를 내지 못했더라도, 이를 개인적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면 불법영득의사를 함부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임대차보증금은 이를 그대로 보관했다가 추후 임차인에게 반환하는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용도가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원심의 판단에는 업무상횡령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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