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馬이야기] 국마장의 영광 잇고 말산업 재도약…미래전략 토론회

기사등록 2026/09/10 08:00:00

토론회 앞서 한국마사회 본사 제주 이전 촉구

최대 말산업 기반에도 생산농가 경영난·승마 수요 부족 과제

제주도, 2027~2031 종합계획 추진…생산·승마·복지·관광 연계

"거버넌스·정책연구소 필요"…지속가능한 산업구조 전환 제안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도, 제주도의회와 제주지역 말산업 관계자들이 8일 열린 ‘제주말산업 미래전략과 상생협력방안 토론회’에 앞서 한국마사회 본사의 제주 이전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26.09.09. ijy788@newsis.com

제주는 오랜 세월 '말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제주마는 섬의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제주인의 삶과 함께해 왔다. 농경과 운송, 군사와 교통의 수단이었던 말은 마을 공동체의 생활문화와 풍속, 지명과 언어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시대가 바뀌면서 말의 역할과 사육 환경이 달라졌다. 제주마는 이제 역사적 유산을 넘어 생물자원과 문화콘텐츠, 승마·관광·교육산업을 연결하는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주인의 삶 속에 이어져 온 말문화와 제주마의 생태적·산업적 가치를 조명하면서 보존과 활용 현장을 찾아 제주마와 말문화 유산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한다.<편집자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말산업의 뿌리는 제주다, 한국마사회는 제주로. 국가균형발전 실현하라, 한국마사회는 제주로."

8일 오후 제주시 헤리티크제주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주말산업 미래전략과 상생협력방안 토론회'에 앞서 제주도와 제주도의회, 제주지역 말 산업 관계자들이 한국마사회 본사의 제주 이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와 제주마생산자협회 등 말 생산자들은 성명서를 발표한 뒤 피켓을 들고 한국마사회의 제주 이전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은 성명에서 제주를 대한민국 말산업의 뿌리이자 중심지로 규정했다. 말의 생산과 육성, 경마와 승마, 관광 등 말산업의 주요 기능이 집적된 제주에 국가 말산업을 총괄하는 한국마사회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이 단순한 공공기관 하나를 유치하는 차원을 넘어 국가 말산업의 구조를 현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국마장의 역사 잇는다…한국마사회 제주 유치 촉구

한국마사회 유치가 제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배경에는 오랜 말 사육의 역사가 있다. 조선시대 제주는 국가가 운영하는 국마장이 설치돼 군마와 역마 등 국가가 필요로 하는 말을 길러낸 대표적인 말 생산기지였다. 중산간 곳곳의 잣성과 목장길, 현재까지 이어진 목축경관은 당시 제주가 국가 마정체계에서 차지했던 위상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수백 년 전 국가의 말을 길러 육지로 보내던 국마장의 역사를 오늘날 국가 말산업을 이끄는 한국마사회 유치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인 셈이다. 과거 국가 말 생산의 전진기지였던 제주가 현대에는 생산·육성·연구·교육·승마·관광·복지를 아우르는 국가 말산업의 중심지로 다시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 제주에는 국내 최초 말산업특구라는 제도적 기반과 함께 경마공원, 육성목장, 생산농가, 승마장과 조련시설 등 산업기반도 갖춰져 있다.

한국마사회 입장에서도 제주 이전은 단순한 본사 소재지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제주에는 국내 말 사육두수의 55%인 1만4876두가 있고 말산업 종사자도 2143명으로 전국의 52%를 차지한다. 생산 현장과 경마·승마시설, 대학과 연구기관, 관련 단체가 한 지역에 집적돼 있어 정책을 현장에서 시험하고 산업에 적용한 뒤 성과를 다시 정책에 반영하는 구조를 구축하기 유리하다.

특히 한국마사회가 제주로 이전하면 경마 시행기관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넘어 생산과 육성, 승마, 복지, 관광, 교육, 연구를 포괄하는 종합 말산업 진흥기관으로 역할을 확장할 수 있다. 생산 현장과 가까운 곳에서 산업 변화를 파악하고 새로운 사업을 실증할 수 있다는 점도 실질적인 이점이다.
[제주=뉴시스] 렛츠런파크 제주에서 출발선을 나서는 제주마. (사진=한국마사회 제공) photo@newsis.com

하지만 국내 최대 규모라는 외형과 달리 제주 말산업의 현장은 녹록지 않다. 경기 침체와 마주 투자 위축으로 경주마 경매 낙찰률과 거래가격이 하락하는 반면 사료비와 인건비 등 생산비는 올라 생산농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라마 역시 경마에서 퇴출된 이후 뚜렷한 수요처를 찾지 못하면서 사육두수가 2020년 4861두에서 2025년 3344두로 줄었다. 경마에 치우친 산업구조와 부족한 승마 수요, 퇴역마 활용과 말복지 문제도 제주 말산업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경마 중심 넘어 승마·복지·관광으로…제주 말산업 다변화

이 같은 현실에서 이날 토론회는 제주 말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산업구조와 정책체계를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강원명 제주도 친환경축산정책과장은 '말산업 현황과 지속가능한 산업기반 마련'을 주제로 발표하면서 제주도가 앞으로 추진할 말산업 정책을 제시했다.

우선 민선 9기 주요 과제로 한국마사회 본사 제주 이전과 말산업특구 고도화를 추진하고 2027년부터 2031년까지 적용할 제4차 제주 말산업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한다. 경마에 집중된 산업구조를 승마와 말복지, 문화·관광 등으로 넓혀 말산업의 융복합 육성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강 과장은 "말복지 분야에서는 행정과 한국마사회, 생산자단체, 동물복지단체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퇴역경주마의 용도 전환과 관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추진한다"며 "말 등록 의무화를 위한 말산업육성법 개정을 정부에 건의하고 말 보호시설 지정·운영을 통해 퇴역경주마의 입양·위탁관리 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생산 단계부터 말의 용도를 구분하는 방식도 도입한다. 경주용과 고기용 등의 용도별 사육체계를 시범 운영하고 말고기 수출을 위한 안정적인 공급 기반을 마련한다. 경주마 분야에서는 우수 씨수말을 도입하고 경매마의 건강 이력을 공개하는 한편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등 해외 경주마 시장 개척도 추진한다.

승마산업은 제주형 특화모델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국산 승용마 육성사업과 정기 품평회를 확대하고 제주 자연환경을 활용한 승마대회를 활성화한다. 유소년 승마와 치유승마를 비롯한 수요 기반을 넓히고 제주 고유의 말 역사를 축제와 관광콘텐츠로 발전시킨다. IT 기술을 활용한 웨어러블 안전승마와 스마트 말산업 관리체계 구축도 과제에 포함됐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8일 제주시 헤리티크제주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주말산업 미래전략과 상생협력방안 토론회’에서 제주 말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산업구조 개편 방안에 대한 주제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2026.09.09. ijy788@newsis.com

◆연구·기획·검증·환류…정책연구 구심점 필요

말산업 정책을 누가, 어떤 구조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추진할 것인가도 이날 토론회의 주요 화두였다.
김정훈 제주대학교 교수는 '말산업 활성화를 위한 거버넌스 구조'를 주제로 발표하면서 "단일 기관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한국마사회, 생산자와 관련 단체, 대학과 연구기관 등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교수는 현재 말산업에서 가장 시급하게 보완해야 할 기능으로 정책연구를 꼽았다. 정책을 한 번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연구·기획·검증·환류'가 반복되는 체계를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산업정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말산업 정책연구소 설립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연구소가 기초통계와 산업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존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는 한편 5년, 10년 뒤의 시장 변화를 전망하면서 새로운 정책을 지속적으로 제안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민·관·학 연구협의체와 말산업 데이터 플랫폼 구축도 함께 제안했다.

◆생산농가 지원부터 승마 수요 확대 등 제안 잇따라

현장 토론에서는 말 생산농가 지원과 산업구조 개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문창완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 부회장은 "생산농가의 경영 안정을 위해 장기 저리 융자와 생산비 부담을 낮추는 지원책을 확대하고 한국마사회와 연계한 재원을 생산기반 강화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봉조 제주도승마협회장은 "승마대회가 단순한 체육행사를 넘어 제주산 말의 새로운 유통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 단위 대회를 확대해 선수와 마주가 제주를 찾고 제주에서 생산·조련된 말을 직접 확인하고 구매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승마교육을 확대해 어린 시절부터 승마를 접하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병선 제주한라대학교 교수는 "퇴역 제주마와 한라마를 유소년 승마 등 승용마로 전환하고 이를 뒷받침할 조련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말 관련 단체가 분야별로 흩어진 상황에서 현장의 의견을 모아 정책으로 만드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며 정책연구 기능 강화에도 힘을 실었다.

결국 이날 토론회에서는 단순한 지원 확대보다 제주 말산업의 구조를 재편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이끌 정책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과 말산업 정책연구체계 구축, 생산·육성·승마·관광·복지의 연계를 각각 별개의 사업으로 추진하기보다 하나의 말산업 생태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준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장은 "한국마사회 제주 유치는 제주 말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고 대한민국 말산업의 균형발전을 이끌 중요한 과제"라며 "생산자단체와 관련 기관, 전문가들과 힘을 모아 한국마사회 제주 이전이 결실을 맺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이어 "토론회에서 제시된 의견을 도정에 반영하고 제주 말산업이 지속가능한 미래산업으로 성장하도록 정책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ijy788@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