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준 못 맞추면 투표용지 발송 제동…트럼프, 美선거판 손댄다

기사등록 2026/08/28 10:34:47

유권자 정보·봉투 바코드 대조…기준 어기면 선거당국에 반송

기표한 표 아닌 발송용 투표용지 대상…적법성 판단은 아직

[머틀비치=AP/뉴시스] 21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컨벤션센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달린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의 유세 연설을 지켜보고 있다. 2026.08.21.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미국 우정청(USPS)이 새 기준에 맞지 않는 우편투표용지 묶음을 선거당국에 돌려보낼 수 있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명부부터 선거구 획정까지 선거 규칙 전반을 바꾸려는 움직임의 대표적 사례다.

미국 인터넷매체 액시오스는 27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우편투표와 유권자 명부, 시민권 증명, 선거구 획정, 투표소 주변 인력 배치까지 선거제도 곳곳을 건드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표권 전문가들은 나중에 법원이 제동을 걸더라도 선거 전에 혼란과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의 인디라 탈와니 판사는 26일 우정청의 새 우편투표 규정 시행을 전국적으로 막아온 가처분을 해제했다. 이에 따라 규정은 일단 시행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는 규정의 적법성을 인정한 본안 판결은 아니다.

최종 규정에 따르면 주·지역 선거당국은 선거당국이 유권자에게 보내는 봉투와 유권자가 투표지를 돌려보내는 봉투에 공식 선거우편 표식과 고유 바코드를 넣어야 한다. 투표용지를 받을 유권자의 이름·주소와 양쪽 봉투의 바코드 정보도 우정청 포털에 올려야 한다. 우정청은 선거당국이 투표용지를 발송하기 전에 등록 정보와 바코드를 대조한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접수를 거부하고 선거당국에 돌려보낼 수 있다.

이 규정은 유권자가 기표해 반송하는 우편투표용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대상은 선거당국이 유권자에게 보내는 기표 전 투표용지 묶음이며, 선거당국은 오류를 고친 뒤 우정청에 다시 제출할 수 있다.

24개 주의 법무장관과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는 26일 새 규정을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들은 각 주가 투표용지를 발송하기 불과 몇 주 전에 봉투를 다시 설계하고 유권자 정보를 전송할 전산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우편투표 갈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과 연방기관의 조치, 법무부 소송, 공개 압박을 동원해 선거 규칙을 바꾸려는 여러 시도 가운데 하나다. 브레넌센터의 앤드루 가버 선임변호사는 선거 규칙은 주와 의회가 정하도록 돼 있다며 대통령이 개입할 헌법상 권한은 없다고 지적했다.

유권자 명부를 둘러싼 충돌도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토안보부에 선거당국이 시민권 확인에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별로 시민권이 확인된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투표권 단체들은 기존 시민권 자료가 합법적인 유권자를 잘못 분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법무부는 이와 별도로 각 주에 개인정보를 삭제하지 않은 전체 유권자 등록 명부를 요구했다. 브레넌센터에 따르면 법무부는 명부 제출을 거부한 30개 주와 워싱턴DC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며, 27일 현재 23건이 기각됐다.

[퍼트니=AP/뉴시스]11일(현지 시간) 미국 버몬트주 퍼트니의 중간선거 예비선거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하고 있다.2026.08.12.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로 등록할 때 시민권 증빙서류를 내도록 하는 ‘세이브 아메리카법’의 통과도 의회에 요구하고 있다. 법안은 하원을 통과했지만 아직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진보 성향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는 투표연령에 해당하는 미국 시민 가운데 2100만명 이상이 여권이나 출생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당장 제시하기 어렵다고 추산했다.

백악관의 로런 비스 대변인은 민주당이 대다수 미국인의 지지를 받는 상식적인 선거 공정성 강화 조치에 맞서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민권 증명 요건을 둘러싼 충돌은 연방기관 인사로도 번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민권 증명 요건을 연방 유권자 등록 양식에 넣는 데 반대한 미 선거지원위원회의 민주당 소속 위원 2명도 해임했다. 선거지원위원회는 연방 선거 보조금과 투표기기 인증, 전국 공통 유권자 등록 양식을 담당하는 초당적 연방기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은 선거구 획정으로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이 주도하는 주들에 통상 10년마다 조정하는 연방하원 선거구를 정기 획정 시점이 아닌데도 다시 획정하라고 요구하자 민주당이 주도하는 주들도 맞대응에 나섰다. 액시오스는 민주당이 하원 과반을 확보하려면 각 지역구에서 2024년 대선 당시 카멀라 해리스 후보의 득표율보다 더 얻어야 하는 폭이 3.1%포인트에서 4.9%포인트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공화당에 약 1.8%포인트의 추가 우위를 주는 효과다.

선거구에 이어 투표소 주변에 연방요원을 배치할 가능성도 쟁점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은 투표소 안팎에 연방요원이나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을 배치하지 않겠다고 확답하지 않았다. 다만 구체적인 배치 계획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와 별도로 법무부는 선거법 준수와 투표권 침해 여부를 살피는 모니터요원 약 1000명을 파견할 계획이다. 법무부 모니터요원은 선거법 집행을 지원하는 통상적인 인력으로, ICE 요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트럼프 행정부의 선거 개편 시도 상당수는 법원과 의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유권자 명부 제출 소송은 잇따라 기각됐고 세이브 아메리카법은 아직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우편투표 규정도 일단 시행할 수 있게 됐을 뿐 적법성을 둘러싼 소송은 계속되고 있다.

가버 변호사는 개별 조치가 법원과 의회에서 제동이 걸리더라도 혼란을 일으키는 효과는 남는다고 봤다. 그는 일련의 조치가 “논란을 한꺼번에 일으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자신의 투표권이 위험하다고 겁먹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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