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마지막 탄광"…의학책 덮고 현장 간 전공의

기사등록 2026/08/28 08:41:46 최종수정 2026/08/28 08:46:24

직업성 질환 연관성 현장 경험 전공의 교육

국내 수련병원 중 유일 진폐증 전문치료 제공

[서울=뉴시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진과 전공의 등 의료진이 경동광업소 탄광 현장을 방문해 지하 깊은 작업장과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체험했다. (사진= 서울성모병원 제공)
[서울=뉴시스] 류난영 기자 = 1960년대 국내 최초로 직업보건 전문기관을 열었던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의료진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탄광을 찾았다.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직업병에 노출되기 쉬운 근로자들의 건강을 살피기 위한 차원이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성모병원은 국내 전공의 수련병원 가운데 유일하게 진폐증 전문 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는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 4명이 참여했다.

이는 병원을 찾는 진폐증 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실제 작업환경과 직업성 질환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20년 넘게 운영돼 온 현장 수련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또 '숭고한 사명감을 지닌 의료인 양성'을 지향하여 오랜 기간 실천해 온 병원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11일 명준표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를 비롯한, 전공의 등 9명의 의료진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을 찾았다. 의료진은 첫날 진폐재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건강강좌를 열고, 다음 날에는 경동광업소 탄광 현장을 방문해 석탄을 캐는 가장 깊은 곳인 막장까지 이동하며 지하 깊은 작업장과 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체험했다.

탄광이 감소하며 어느덧 우리에게는 잊혀진 병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분진으로 인한 직업성 폐질환인 진폐증은 여전히 업무상 질병사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4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있는 진폐증 환자는 약 2만명, 진폐 사망자는 506명에 달한다.

과거 1970~80년대 석탄과 주요 광물 채광이 활발했던 도계와 태백 일대는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청춘을 보낸 진폐재해자와 가족이 아직도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잠복기 때문에 과거 노출자가 뒤늦게 진단되는 경우가 많아 진폐증 치료와 산재 관리, 산재 사망 역시 해당 지역에서는 주요한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러나 거리 등의 문제로 전문 강좌를 쉽게 접할 수 없어, 적절한 치료로 안정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를 놓쳐 악화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진은 국내 탄광 근로자들의 진료에서 축적한 직업성 폐질환 예방·치료·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산재 진단과정의 궁금증을 해결하고, 합병증 예방관리 및 약물치료 경과를 방문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는 사망시 업무 관련성 평가와 질병 사망 판정 등에 대한 오해 지점 등을 안내하였고, 현장에서 개별 상담도 진행했다. 전공의들 역시 환자 및 가족들과 직접 묻고 답하며,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산재 판정의 배경을 현장의 언어로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방문 이튿날은 내년 폐광을 앞둔 국내 마지막 탄광인 경동광업소 채탄 현장에서 광부의 노동 환경을 체험했다. 전공의들은 회사 측의 안내하에 갱도 끝까지 내려가 석탄을 채취하고 운반하는 광부들의 삶의 현장을 체험하였다. 작업면을 준비하는 채준작업과 탄층을 발파해 무너뜨린 뒤 떨어진 석탄을 거두는 케이빙 채굴과정 등의학 교과서만으로 배울 수 없는 진폐증의 요인이 되는 열악한 환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이처럼 미래의 의료진들이 실제 탄광 내부 깊은 곳까지를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현장 질병 요인과 환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교육 기회는 국내에 흔치 않은 사례다. 특히 산재 판정을 내리는 의료진으로서 단순히 서적이나 영상과 같은 간접적인 정보습득이 아닌, 현장에 대한 정보와 경험은 향후 진료실이나 병실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 교수들의 설명이다.

 현장을 방문했던 김동근 전공의는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것으로 진폐와 진폐의 원인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 막장까지 내려가 탄분진 등 진폐를 일으키는 유해요인을 몸으로 체험한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며 "앞으로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이 날의 경험이 진료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밝혔다.

진폐증을 전문으로 진료하고 있는 명준표 교수는 자신 역시 2005년 전공의 시절 탄광 현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인연이 시작됐음을 밝히며 "전공의가 환자 곁과 작업 현장을 함께 경험해야 환자진료에 진심을 다하고, 산재 판정 시 현장을 이해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내년에 탄광이 문을 닫게 돼도 앞으로도 꾸준하게 사업장 현장을 방문해 진폐재해자 건강을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폐증은 조기에 진단하고 꾸준히 관리하면 건강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진단 이후 진료를 받지 않고 방치하여 조기사망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많아 적절한 진료가 중요하다"고 전했다.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는 작업환경 유해요인 측정을 위한 1961년 장성 탄광 등 사업장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근로자들의 상병예방, 진단, 치료, 재활 진료와 연구를 수행하여 작업능률을 관리하면서 근로자들의 건강을 지키고자 1962년에 국내 최초 직업보건 전문기관인 직업환경의학센터를 설립했다.

1965년 국내 최초로 직업병 클리닉을 개설했고, 1973년 세계보건기구로부터 국내 최초의 민간 직업보건협력기관으로 지정됐다. 석면폐증, 악성중피종, 폐암, 폐섬유증, 진폐증 등 직업성·환경성 호흡기질환의 진단·보상·예방과 국내 산업안전보건법 제정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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