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이기주 인턴 기자 = 제주 바다에서 물질하는 미국인 여성이 있다. 미국 뉴욕 출신 카일리 젠터(36)다.
올해 기준 한국에서 해녀 면허를 보유한 유일한 외국인인 젠터는 처음에는 낯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경계받았지만, 이제는 해녀들이 그를 ‘딸’이라고 부를 만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
25일(현지 시간) CNN에 따르면 젠터는 2024년 1월부터 제주 서쪽 영락리에서 해녀로 물질을 시작했다. 당초 마을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젠터가 매일 물질에 나서며 의지를 보이자 해녀들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
해녀는 호흡 장비 없이 바다에 들어가 전복과 소라, 해삼 등 해산물을 채취하는 제주 고유의 여성 잠수부다. 해녀 공동체는 함께 물질하고 서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강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젠터는 2012년 영어 교사로 한국에 처음 왔다. 이후 제주에서 생활하며 해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해녀학교에 다니면서 물질을 배웠다. 당시에는 해녀가 될 생각이 없었지만, 2024년 영락리에서 젊은 해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본격적으로 물질을 시작했다.
처음 젠터를 본 해녀들은 낯선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 그를 '미국인 꼬마'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젠터가 꾸준히 물질에 참여하면서 신뢰를 얻었고, 결국 해녀회장은 그를 ‘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영락리 어촌계장 김창식씨는 "우리 마을에 최초의 미국인 해녀가 생겨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위해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해녀회장 홍복녀씨 역시 젠터에 대해 "한국인이나 제주 토박이인 우리보다 물질을 더 잘한다"고 평가했다.
젠터가 해녀 공동체에 완전히 받아들여졌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물질 중 홍씨가 소라가 가득 든 그물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자 다른 신입 해녀들이 돕지 못했고, 홍씨가 젠터의 이름을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젠터는 "그가 도움이 필요할 때 나를 찾았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제주 해녀가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제주해녀박물관에 따르면 지난해 활동 중인 해녀 2371명 가운데 63%가 70세 이상이었으며, 39세 이하는 30명에 불과했다.
고령화뿐 아니라 기후변화도 해녀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영락리 해역에서는 과거 하루 100㎏이 넘는 해삼을 잡을 정도로 해산물이 풍부했지만, 젠터에 따르면 올해 잡힌 해삼은 모두 합쳐 10마리에 불과했다.
김씨는 "수온이 높아지면서 해조류가 많이 사라졌다"며 "소라가 먹으려면 해조류가 필요한데 물이 너무 따뜻해 소라가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씨는 "얼마나 더 오래 물질할 수 있을지, 다음 세대 해녀들이 물질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며 "젊은 해녀들에게 미안하다.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젠터는 물질을 하지 않는 기간에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반려동물 호텔에서 일하고, 소셜미디어와 팟캐스트를 통해 해녀 문화를 알리고 있다.
그는 "이건 평생의 약속이다. 나는 이 마을에서 살고 이 마을에서 죽을 것"이라며 "이 마을이 나에게 정말 큰 기회를 줬기 때문에 항상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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