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보다 갱생…"저도 두아이 엄마" 해든이 재판장은 왜?

기사등록 2026/08/25 17:01:00 최종수정 2026/08/25 17:24:43

법원, 항소심서 친모 감형…무기징역→징역35년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언급

"잘못 범한 사람들 사랑하는 것이 인간이 특성"

"형벌은 범죄자가 사회로 돌아오는 갱생의 기간"

"누구나 잘못판단 가능"…상황 헤아릴 필요 있어

[광주=뉴시스] 광주고법.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남광주=뉴시스]박기웅 이현행 기자 = '해든이 사건' 항소심 재판장이 친모의 형량을 무기징역에서 징역 35년으로 낮추면서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과 형벌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직접 밝혔다. 재판장은 약 16분간 이어진 선고에서 감형 이유와 함께 형벌의 의미를 설명했다.

황진희 광주고법 형사2부 재판장은 25일 항소심 선고에 앞서 "전국에서 피고인들에 대해서 엄벌을 탄원하는 많은 탄원서가 제출됐다"며 "피해 아동의 고통의 목소리를 대신해 엄벌을 탄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 역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엄벌에 관한 많은 고심을 했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는 16분 동안 이어졌다. 황 재판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고 일정한 목소리와 속도로 선고를 이어갔다. 다만 자신의 고심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문장 사이에 호흡을 두고 한 문장씩 천천히 말을 꺼냈다.

황 재판장은 자신의 깊은 고심을 설명하며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이를 재해석한 책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린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나를 다스리는 것'이라는 태도로 감히 저 자신을 설득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재판의 과정"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의 판단에 이르기까지의 고민을 드러냈다.

그는 "잘못을 범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라면서 "선이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악은 추악하다는 것을 알지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도 나와 같고 우리와 같은 부족한 인간이며 무지한 탓에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누구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며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상황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이어갔다.

황 재판장은 이런 고민을 형벌의 의미로 연결했다.

그는 "형벌은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범죄자가 사회로 돌아오기 위한 갱생의 기간"이라며 "범죄자가 사회로 돌아와 안전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동체 감각의 육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대 사회에서의 고독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돼 타인이란 필요하다면 친절과 도움을 주는 협력하는 동료이자 이웃이라는 것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황 재판장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친모 A씨(34)의 원심을 깨고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 아동을 지속적으로 학대하다 살해한 점에서 범행이 단순히 우발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사전에 치밀하게 살해를 계획했다고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사건 당일 피해 아동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당혹스러워하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고 119에 신고해 응급조치를 한 점 등을 들어 사망이라는 결과를 적극적으로 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봤다.

범행 후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보인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도 양형에 고려했다.

재판부는 특히 무기징역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종신 자유형인 만큼 피고인을 사회에서 영구히 격리해야 한다는 객관적 사정이 분명히 인정돼야 한다고 짚었다. 유기징역형의 상한 내에서 형을 선고하는 것이 너무 가벼워 현저히 부당한 경우에만 무기징역을 선택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A씨가 장기간 수용 생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성격적 문제를 개선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없으며 출소 후 적절한 사회적 지지체계를 형성해 건전한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가능성도 없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친부 B씨(36)에 대해서는 B씨와 검찰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0월22일 전남 여수시 자택에서 생후 4개월 된 아들을 약 18분간 폭행한 뒤 아기 욕조에 샤워기 물을 틀어놓은 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8월24일부터 두 달여 동안 19차례에 걸쳐 아들을 학대하거나 방임한 혐의도 받고 있다.

B씨는 아내 A씨의 학대를 알고도 피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고 상당 기간 학대 상황을 방임한 혐의와 사건 참고인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협박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pboxer@newsis.com, lh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