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게, 섬세하게…원숙해진 케빈 첸의 리스트[객석에서]

기사등록 2026/08/20 15:46:04

'쇼팽 콩쿠르 준우승' 케빈 첸, 국내 첫 리사이틀

공연 전체 리스트로 구성…표현 넓혔지만 개성은 아쉬워

[서울=뉴시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케빈 첸의 국내 첫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6.08.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지난해 10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캐나다 피아니스트 케빈 첸이 국내 첫 리사이틀을 프란츠 리스트(1811~1886)로만 채웠다.

초절지교를 요구하는 작품들을 거침없이 소화하면서도 기교를 과시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강렬한 타건으로 거대한 음향을 만들어내다가도 힘을 덜어낸 섬세한 표현으로 서정성을 끌어냈다. 한층 깊어진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케빈 첸의 국내 첫 리사이틀은 지난 18일 개막한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 일환으로 마련됐다. 첸은 전날 개막공연에서 이승원이 지휘하는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데 이어 이날 단독으로 관객을 마주했다.

앳된 소년미를 지닌 첸은 수줍은 미소로 무대에 올랐지만 피아노 앞에 앉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마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연주가 시작되면 시종일관 진지하게 건반에 몰입했다.

공연의 포문은 헝가리 민속 춤곡 '차르다시'를 피아노로 구현한 '2개의 차르다시'가 열었다. 한 음 한 음을 눌러 긴장감을 쌓은 뒤 점차 속도를 높이며 춤곡 특유의 리듬을 살렸다.

1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첸이 직접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리스트의 '전주곡'(교향시)이었다. 리스트의 교향시 가운데 세 번째 작품으로 사랑과 투쟁, 승리 등 삶의 여러 국면을 그려낸 곡이다.

첸은 한 대의 피아노로 관현악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강렬한 타건으로 밀어붙이면서도 완급을 조절하며 삶의 굴곡을 긴 호흡으로 풀어냈다.

[서울=뉴시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케빈 첸의 국내 첫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6.08.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어진 '노르마의 회상', 마이어베어 '악마 로베르'의 카바티나는 공연장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에서 12연타는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또 '돈 주앙의 회상'으로 재차 기교를 뽐냈다.

특히 공연 전후반 각각 작곡가의 '순례의 해' 2·3번을 배치해 공연의 정서적 균형을 잡았다. 서정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레퍼토리 배치가 인상적이었다.

강렬함과 섬세함을 오가는 연주에서 젊은 피아니스트가 한단계 깊어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케빈 첸의 리스트'라고 할 만한 색깔을 각인시키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첸은 앙코르에서도 리스트를 놓지 않았다. 슈만의 '헌정'을 리스트가 편곡한 작품을 연주했다. 이어 '로망스 e단조'의 감미로운 선율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첸은 리스트의 세계를 함께한 객석을 향해 연신 감사를 표했다. 객석에서도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서울=뉴시스]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케빈 첸의 국내 첫 리사이틀이 열렸다. (사진=예술의전당 제공) 2026.08.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026 예술의전당 국제음악제'는 오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축제는 'Pack Your Summer with Classics'를 슬로건으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은 젊은 거장 음악가와 국내 연주자의 무대가 준비됐다.

우즈베키스탄 대표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는 리사이틀을,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는 국내 바로크 앙상블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인다. 러시아 첼리스트 아나스타샤 코베키는 리사이틀과 폐막 공연에 올라 SAC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이 무대에도 이승원이 포디움에 오른다.


◎공감언론 뉴시스 excuse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