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빌라 배경 오컬트 '프린츠하우스' 출간
"모든 것 가진 상류층이 귀신 들리면 어떨까"
굿·구마 의식 결합…"오감으로 공포 체험하길"
"다양한 국가 독자가 읽을 오컬트물 쓰고 싶어"
차기작은 코미디 오컬트…청소년 소설도 구상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의 원작자가 이번에는 귀신 들린 최고급 빌라의 문을 열었다. 악귀가 출몰하고 굿과 구마의식까지 벌이지만 아무도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귀신에 들려도 부와 지위를 포기할 수 없는 자들이다.
'킬러들의 쇼핑몰' '살인자의 쇼핑목록'으로 유명한 강지영 작가가 신작 오컬트 호러 소설 '프린츠하우스'로 돌아왔다. 이번에 그가 겨눈 것은 귀신 만이 아니다. 귀신 들린 집에서조차 떠나지 못하는 '인간의 탐욕'이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사옥에서 만난 강지영은 작품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귀신 들림'에서 가장 안전해 보이는 사람이 누굴까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을 다 가진 상류층'이었어요. 그들은 이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해 조용히 부적을 쓰고 주술 의식을 치르기도 하잖아요."
강지영은 이야기를 구상할 때 소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법한 존재를 먼저 떠올린다고 했다. 귀신과 최상류층이라는 상반된 세계 역시 그렇게 만났다.
소설은 부모의 부를 상속받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최고급 빌라 '프린츠하우스'에 사는 선우와 '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전승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과거 이곳에서 부모와 함께 살다 고독(蠱毒)에 잠식돼 떠났던 '너'가 악귀에 씐 채 세입자로 돌아오면서 평온했던 일상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기이한 일은 이전부터 있었다. 입주민들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집을 포기하지 않는다. 굿을 하고 구마의식을 치르고 부적을 써서라도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을 지키려 한다.
강지영은 이들을 붙잡고 있는 것을 "부동산 신분 사회의 세속적인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프린츠하우스의 공포는 그래서 귀신에서 끝나지 않는다. 부와 권력을 누리는 입주민들은 저마다 과거의 죄를 품고 있고, 이들이 쌓아온 욕망이 또 다른 악을 만들어낸다.
강지영은 "입주민을 잠식한 악은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쌓아온 죄와 탐욕이라는 '불티'가 발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성 문학평론가가 "자본이라는 이름의 악령 앞에는 구마사제가 도착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한다"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지영은 장편 '굿 드라이버'에서도 오컬트를 다뤘지만, 이번에는 굿과 구마의식을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인 퇴마 서사를 만들었다.
"악을 규정하는 동서양의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여서 걱정도 됐지만 영화에서 많이 다뤄진 퇴마 소재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관건은 영상 없이 문자 만으로 어떻게 독자를 몰입시킬 것인가였다.
"소설이라는 텍스트만으로, 배우나 영상의 힘 없이 독자들을 섬뜩하게 몰입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컸는데 적절하게 균형을 맞춘 것도 같아요."
강지영은 시각적인 공포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구마의식과 주문은 물론 피어오르는 향과 공간의 분위기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독자가 눈으로 문장을 읽으면서 공포를 감각적으로 기억하고 만들고 싶었다.
"어떤 시기에 들었던 노래나 맡아봤던 향을 나중에 다시 접하면 그때가 떠오르는 것처럼 이 작품도 다양한 감각으로 오래 기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모로 오감을 자극하려 했어요."
오컬트에 대한 관심의 뿌리는 그의 유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지영은 경기도 파주 당동리에서 자랐다. 무당들이 모여 살던 마을에서 푸닥거리와 민간신앙은 어린 강지영에게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일상의 풍경에 가까웠다.
"동네 사람들은 오컬트적인, 우리가 흔히 미신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좀 충실하게 따르면서 살고 있었어요. 배탈이 나도 병원 대신 무당이 오방기 같은 것을 쭉쭉 찢어서 치료하기도 했습니다. 당동에서 많은 무당을 이웃으로 두고 있었고, 그 경험들이 작품에 반영됐죠."
오랜 기억 위에 이번 작품을 위해 새롭게 조사한 자료를 쌓았다. 다큐멘터리와 서적 등을 찾아보며 굿과 구마의식의 방식도 파고들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동양의 굿과 서양의 구마의식을 한 작품 안에 나란히 놓았다는 점이다. 방식과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악을 몰아내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는 서로 맞닿아 있다고 봤다.
강지영은 "세세하게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퇴마의식을 멀리서 보면 같은 행위"라며 "그래서 동서양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말했다.
해외 독자도 염두에 뒀다.
"다양한 국가의 독자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오컬트물을 쓰고 싶었어요. 다만 서양식에 맞추기보다 동양의 오컬트가 서양과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잤어요. 인간의 내장이 담긴 그릇이 보이거나 가족들의 모습으로 변신한 존재들이 저를 조롱하는 상징적인 악몽을 계속 꿨어요. 증상이 심해져 절을 찾기도 하고 병원도 가봤어요."
함께 작업한 편집자 역시 교정기간 컴퓨터와 인터넷이 갑자기 먹통이 되거나 정전을 겪는 등 기묘한 우연이 잇따랐다고 전했다.
그의 작품은 영상과 번역을 통해 국내를 넘어 해외 독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강지영은 오는 10월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집트 등에서 북투어를 할 예정이다.
그는 한국 장르문학이 해외에서 주목받는 이유를 단순히 한국 문화의 인기에만 두지 않았다.
"한국 문화를 넘어 날것의 한국 사회 이면을 담아낸 장르 소설들이 해외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프린츠하우스'가 귀신 들린 집을 통해 부동산과 계급, 탐욕을 끄집어냈듯 차기작에서도 오컬트라는 장르 안에 현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다음 작품 제목은 본격적인 신내림을 받기 전 귀신과 소통하는 상태를 뜻하는 '무불통신(無不通神)'이다.
"'무불통신'은 유쾌한 코미디 오컬트 소설이에요. 황당한 사고로 죽은 주인공의 영혼이 손녀뻘 아이의 세포로 태어나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강지영은 등교 거부를 소재로 한 청소년 소설도 구상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마주하는 사회 문제를 괴물이나 좀비라는 장르적 상상력으로 풀어보고 싶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문제를 괴물이나 좀비물 형식으로 풀어낸 가볍고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에도 도전할 계획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xcusem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