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평가에 상처 받은 경험서 출발…"예술은 정답 찾는 시험 아냐"
"선인장은 관객 비추는 거울…많은 의미일 수도, 아무 의미 없을 수도"
14~16일 서울시발레단 국내 초연…"유머는 철저한 진지함에서 나와"
스웨덴 출신의 '천재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은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표작 'Cacti(선인장)' 국내 초연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선인장'은 현대 예술과 비평 문화를 유쾌하게 풍자한 작품으로, 역동적인 군무와 리듬감 있는 연출이 특징이다.
서울시발레단은 오는 14~1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독일 출신의 거장 안무가 크리스티안 슈푹의 '일곱 번째 파랑'과 알렉산더 에크만의 '선인장'을 더블 빌(두 개 작품을 한 공연에서 연속 상연)로 엮은 '죽음과 소녀'를 선보인다.
에크만은 2010년 초연된 이 작품의 탄생 배경에 대해 소수의 평론가들의 평가에 따라 작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창작자의 의도까지 결정해버린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저는 젊었고, 그만큼 외부 평가에 많이 노출돼 있었으며, 그런 시스템에 상당히 상처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몇 달 동안 작품을 만들었는데, 단 한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그 모든 것에 대한 판결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요."
그는 소셜미디어(SNS)와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 오늘날, 작품이 하나의 영상 클립이나 짧은 문구, 별점으로 축소되는 현상을 짚으며 이 작품이 현재 더욱 유효하다고 역설했다.
에크만은 "우리는 왜 무언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둘러 규정하려 하는가? 어떤 경험이 설명을 통해 정리되기 전에 모호하고, 육체적이고, 우습고, 불편한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는 걸까"라고 반문했다.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선인장'의 의미를 놓고 관객들이 해석하려고 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그는 "(선인장이) 누군가에게는 야망이나 성적 욕망, 경쟁, 예술적 성취, 고립을 의미할 수 있다"며 "결국 관객이 무엇을 그 안에 가져오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이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대상을 기어코 설명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직시하게 한다"고 분석했다.
작품은 겉보기에 유쾌하고 장난스럽지만, 이를 표현하는 무용수들에게는 극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에크만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용수가 웃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유머는 철저한 진지함에서 나온다"며 "무용수가 자신이 농담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순간, 그 농담은 대개 사라져버린다"고 단언했다.
무용수들이 엉뚱한 선인장을 신성한 물건처럼 진지하게 다룰 때 비로소 묘한 긴장감과 진짜 유머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내뱉는 '말(텍스트)'이다. 에크만은 무용수들이 춤을 추며 말을 하는 연출에 대해 "목소리는 관객과의 거리를 바로 허물고, 몸이 표현하는 것과 실제 머릿속 생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며 "그 마찰을 좋아한다"고 했다.
에크만은 "두 안무가가 같은 음악을 듣고 서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이 더블 빌의 예술적 가치"라며 "관객이 같은 음악을 두 번 마주하면서도 하나의 의미로 환원할 수 없다는 점이 좋다"고 짚었다.
20대 시절 증명에 대한 갈망으로 본 작품을 탄생시켰던 에크만은 어느덧 42세의 거장이 됐다. 그는 "젊은 시절 성공이 큰 무대와 수상이었다면, 지금의 성공은 내 목소리에서 멀어지지 않는 진정성"이라며 "대표작만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지는 않다. 52살에는 지금 상상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적어도 하나쯤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에크만은 한국 관객에 대해 "놀라울 만큼 집중해서 공연을 관람한다"며 온전한 '경험'을 당부했다.
"한국 관객들이 이 작품을 통해 놀라움과 긴장, 공감과 함께 웃음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공연장을 나설 때는 선인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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