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 학살한 군인, 도피중 체포돼 재판 회부

기사등록 2026/07/28 10:21:31

80세 퇴역 군인, 25년형 받고 도주, 3년만에 잡혀 재판

쿠데타군이 살해한 아옌데, 하라 등 "인권범죄" 재수사

1973년 피노체트 쿠데타로 수만 명 학살, 의문사 당해

[산티아고=AP/뉴시스]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정권이 1973년 잔인하게 처형한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사진을 들고 산티아고 스타디움에서 학살당한 5000명의 죽음에 항의하는  2017년4월의 산티아고 시위대.  2026.07.28. 
[산티아고( 칠레)= AP/ 뉴시스] 차미례 기자 = 칠레의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학살 당한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살해범인 군인이 유죄판결 후 3년 간의 도피 생활 끝에 체포되어 50여년 만에 재판에 회부 된다.

칠레 경찰은 은퇴한 칠레 군인으로 피노체트 군사 정권 시절 하라의 납치 살해에 가담했던 군인이 재판에서 25년 형을 선고받고  도피했지만,  3년 만에 그를 체포했다고 지난 25일 발표했다.
 
하지만 빅토르 하라의 부인과 딸 등 가족들은 이번 체포에도 그 것 만으로는 완전히 만족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하라의 딸 아만다 하라는 26이 언론에 밝힌 공개서한에서 " 우리는 은퇴한 군인 넬손 하세 마제이 대령이 2023년 부터 법망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다가 적발, 체포되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정의가 이뤄졌다고 여기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퇴역 군인인 하세 마제이(80)는 저항 가수 하라와 당시 교도소장이었던 리트레 키로가 카르바할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25년 2일을 선고 받았다.

2018년 처음 재판에선 다른 6명의 군 장교들과 함께 선고를 받았고 2023년에 모두 형량이 증가 되었다.

이들의 집단 학살은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 군사정권 17년 동안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마제이는 형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달아나서 숨어 살다가 이번 주말에 3년 만에 발견, 체포되었다.  산티아고 법원의 파오라 플라자 판사는 그를 즉시 구속, 투옥시켰고 그가 같은 사건으로 붙잡혀 옥중 생활을 시작한 맨 마지막 군인이라고 밝혔다.

1960년 생인 하라는 칠레 원주민의 민요와 대학생의 저항 가요가 중심인 칠레의 "새 노래" 운동의 주역으로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고 민중의 비참한 빈곤의 삶과 자유에 대한 의지를 노래했다.

국민의 선거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대통령궁에서 총을 들고 군대와 싸우다 폭사하는 등 쿠데타 군이 승리한지 5일 만인 1973년 9월 16일 하라는 산티아고 종합 운동장에서 5천여 명의 시위대, 저항세력과 함께 무참하게 학살 당했다. 

하라는 당시 40세의 아옌데의 칠레 공산당 당원으로 칠레 국립공대 교수로 재직 중 대학 캠퍼스에서 체포되어 종합 운동장으로 끌려가 죽었다.

당시의 칠레 종합운동장은 지금은 빅토르 하라 스타디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른 5000명과 함께 그 곳에 붙잡혀 있던 하라는 심하게 맞고 고문을 당하고  기타를 치던 손가락이 모두 부러지고 짓이겨진 채 총살 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AP/뉴시스] 칠레 마푸체 원주민의 민요와 전통 가요, 대학가요를 접목해 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민중가수 빅토르하라의 생전 모습. (AP자료사진). 그는 총을 들고 대통령 궁에서 싸우다 살해된 아옌데 대통령,  국민 저항의 지도자였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70년대 칠레 문화를 이끌었지만 1973년 산티아고 종합 운동장에서 다른 5000명과 함께 무참하게 학살 당했다.  2026.07.28.
그의 시신은 사후에 몸에서 수십 군데의 골절과 함께 44발의 총탄 흔적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쿠데타 군의 증오의 대상이었다.

국민 인기 가수였던 빅토르 하라는 나중에 그의 죽음과 군사독재 정권의 만행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군 가해자들이 밝혀졌고 군인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
 
 1991년 칠레의 민주화와 피노체트 정권의 몰락 몇 개월 뒤에 칠레 정부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국가 위원회'는 하라의 처형이 순전히 정치적 이유였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를 심각한 인권 범죄의 희생자로 규정했다. 

당시 군사쿠데타 즉시 직접 처형 당한 사람들은 3개월 동안 모두 890명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수 십년간 칠레에서는 1973년 쿠데타 시작부터 1990년대 까지의 고문, 살인, 구금중 강제 실종자와 아이들(고아)의 불법 강제 입양 등 인권 범죄에 대한 국가 위원회를 잇따라 설치하고 철저한 수사가 계속되었다. 

군사정권 17년간의 희생자는 약 4만 명에 달했고 그 중 2000명은 직접 처형 당했다.  수감 중에 강제로 사라진 실종자가 1469명,  고문 피해자도 수 천 명이었다.

칠레 정부는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의 가해자인 수백명의 군인과 국가 공무원, 민간인들을 적발해 단죄했지만 처벌 받은 사람들을 통합 관리하거나 제대로 기록을 남긴 정부 기관은 한 군데도 없었다.

2024년부터 칠레 정부는 국가수색계획이란 이름의 전문 수색기구를 마련해서 실종자와 의문사 피해자들을 통합 수색했지만 아직도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유가족들은 말하고 있다. 
 
현재 빅토르 하라 재단의 책임자로 있는  아만다 하라는 "경찰이 당시 인권 범죄를 저지르고 잠적한 모든 가해자들을 남김 없이 찾아 내서 처벌해야만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서한의 끝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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