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여름휴가를 냈는데 국지성 호우로 여행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종일 실내에만 머물기는 아쉽다.
빗줄기가 잠시 잦아든 틈을 타 한여름에 절정을 맞는 연꽃을 찾아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비가 내릴 때는 넓은 잎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운치를 더한다.
비가 그친 직후에는 잎과 꽃의 색도 한층 짙고 선명해진다.
붉거나 분홍빛을 띠는 홍련(紅蓮)은 화사하고 생동감 있는 인상을 주고, 흰색이나 옅은 크림빛의 백련(白蓮)은 단아하고 청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도 맑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특성은 연꽃에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불교에서는 번뇌와 탐욕이 가득한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깨달음을 피워내는 꽃으로 받아들인다.
연꽃은 한 번 활짝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다. 이른 아침 꽃잎을 펼쳤다가 오후가 되면 오므라들기를 반복하며 며칠에 걸쳐 꽃을 피운다.
비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우산과 미끄럽지 않은 신발을 챙겨 가급적 오전 일찍 연꽃 정원으로 떠나보자.
[서울=뉴시스]김정환 관광전문 기자 = 충남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궁남지’(宮南池)는 백제 제30대 무왕 재위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왕궁 연못이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찬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는 634년 궁궐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궁궐 연못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궁궐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백제는 연못을 만들면서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이고 둘레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물 가운데에는 신선이 산다고 여긴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뜬 섬을 조성했다.
물, 나무, 섬을 하나의 풍경으로 엮은 백제의 뛰어난 조경 기술을 보여준다.
‘삼국사기’에는 638년 무왕과 왕비가 이곳에서 배를 띄우고 놀았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단순한 저수 시설이 아니라 왕실이 휴식과 연회, 자연 감상을 즐기던 정원이었음을 보여준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편찬한 역사서인 ‘삼국유사’에는 ‘서동요’ 설화가 실려 있다.
“한 여인이 도성 남쪽 연못가에 살다가 연못의 용과 인연을 맺어 서동을 낳았고, 그가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사랑을 이룬 뒤 백제로 돌아와 무왕이 됐다”는 내용이다.
백제 멸망 이후 연못은 훼손되고 주변은 농경지로 바뀌었다.
현재의 연못은 1960년대 바닥을 준설하고 가장자리를 정비한 다음 수양버들을 심어 복원한 것이다.
연못 가운데 섬에는 ‘포룡정’이 서 있고, 목교가 물 위를 가로질러 물가와 섬을 잇는다.
포룡정, 수양버들, 목교 등이 수면에 어려 고즈넉한 백제 정원의 풍경을 펼쳐놓는다.
여름이면 궁남지와 주변 ‘서동공원’은 거대한 연꽃 정원으로 변신한다.
넓은 연지에는 홍련과 백련, 황금련, 수련, 물양귀비, 열대수련 등 연꽃 20여 종과 물양귀비를 비롯한 기타 수생식물이 자리한다.
초록빛 연잎 사이로 흰색과 분홍색 꽃송이가 잇따라 솟아오른다. 연꽃 사이로 난 길에서는 단단한 봉오리부터 꽃잎을 넓게 펼친 꽃, 꽃잎이 진 뒤 연씨를 품은 연밥까지 한자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연꽃밭 가까이에서는 꽃 한 송이 한 송이의 색과 형태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포룡정과 목교, 수양버들, 넓은 연꽃 군락이 어우러진 궁남지의 전체 풍경이 펼쳐진다.
연중무휴로 개방한다. 관람료는 없다. 관광안내소와 주차장, 화장실, 휴게시설 등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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