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노'는 죄가 없다…사투리에 찍힌 낙인, 흔들리는 언어 다양성

기사등록 2026/07/12 05:53:07 최종수정 2026/07/12 05:57:00

'리센느' 원이 한마디에 정치권이 뿌린 논쟁

무의식적 '자기 검열'로 단어 소멸 부를 수도

'귀여운 밈'과 '혐오' 사이…SNS시대의 언어 격차

[서울=뉴시스]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무섭노' 발언. (사진=유튜브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한이재 기자 = "무섭노."

걸그룹 리센느 멤버 원이의 짧은 한마디에 정치권이 끼어들면서 뜻밖의 언어 논란으로 번졌다.

경상도 방언 종결어미 '-노'를 둘러싸고 극우 온라인 커뮤니티 표현이라는 공방이 이어졌지만, 언어학계는 이번 논란을 단순한 어법이나 정치적 해석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터넷 시대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고, 특정 표현에 사회적 의미가 덧씌워질 때 언어 다양성과 방언 문화는 어떤 영향을 받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무섭노'는 틀렸나…규범보다 먼저 변하는 언어

경남 거제 출신인 원이가 "무섭노"라고 말하자 일부 정치권에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표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반면 경상도 출신을 중심으로는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사투리를 특정 집단의 언어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론도 이어졌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경상도 방언 종결어미 '-노'는 전통적으로 의문사가 있는 의문문에서 주로 사용된다. 실제 지역어 조사에서도 대부분 "와 이리 무섭노"처럼 의문사와 함께 쓰인다.

하지만 살아 있는 언어는 문법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은 일부 사례에서는 의문사 없이 '-노'가 사용된 용례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2006년 지역어 조사에서는 경남 창녕의 72세 화자가 "한 오십 년 넘었노"라고 말한 사례가 기록돼 있다.

국립국어원 한 연구원은 "혼잣말처럼 문장을 짧게 말하는 상황에서는 의문사 없이 사용되는 소수의 예도 있다"고 설명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YTN 라디오에 출연해 "경상도 말에서는 '-오'형이 감탄형으로, 서울말로 비교하자면 '-네(무섭네)'로 쓸 때 '-오'라는 감탄문을 쓴다"고 말했다.

안태형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는 "전통적인 경상도 방언에서는 의문사 없이 '-노'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지만 언어는 생물처럼 계속 변화한다"며 "세대와 지역에 따라 언어는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특정 표현만으로 사용자의 성향을 단정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원이의 고향인 거제시도 10일 입장문을 내고 "'무섭노'는 경남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방언이자 구어적 표현"이라며 "이를 특정 정치적 의도를 담은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동무'처럼 될 수도…자기검열이 부르는 언어의 소멸

언어학자들이 더 우려하는 것은 '-노' 자체보다 언어에 사회적 낙인이 덧씌워지는 현상이다.

안 교수는 "일베가 '-노'를 사용하면서 특정 집단의 언어라는 인식이 생기는 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원래 방언으로 사용해 온 사람들까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특정 표현이 부정적인 집단의 언어라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원래부터 사용하던 사람들까지 스스로 사용을 꺼리게 되는 '자기검열'이다.

안 교수는 "우리는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말인데 '일베가 쓰는 말'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오해를 받을까 봐 사용을 자제하게 된다"며 "사투리를 보존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적 의미가 덧씌워지면서 일상에서 거의 쓰이지 않게 된 '동무'와 '인민'을 사례로 들었다.

국어사전에 실린 '동무'와 '인민'도 정치적 의미가 덧씌워지면서 남한에서는 일상어에서 멀어졌듯, '-노' 역시 특정 집단의 언어라는 인식이 굳어질 경우 방언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경현 조선대 교수의 논문 '신조어 비하 표현의 특성 연구' 역시 단어 자체에는 부정적 의미가 없더라도 사회적 배경과 화자의 인식이 결합되면서 비하 표현으로 굳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 시대 흔들리는 '언어의 사회성'

인터넷과 SNS는 언어의 생성과 확산, 소멸의 속도를 크게 바꿔놓았다.

안 교수는 "예전에는 새로운 표현이 생성되고 사회에 정착했다가 소멸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생성과 확산, 소멸이 매우 짧은 주기로 반복된다"고 진단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언어의 사회성' 변화다.

안 교수는 "언어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함께 이해하고 사용할 때 사회성을 갖는다"며 "하지만 특정 세대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이 빠르게 생겨났다 사라지면서 다른 세대는 같은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 세대만 사용하는 표현이 늘어나면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세대마다 사용하는 언어와 이해하는 언어가 달라질 수 있다"며 "언어생활의 간극이 커지는 것도 인터넷 시대 언어 변화의 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국립국어원도 언어의 다양성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언어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는 만큼 실제 언어 사용을 꾸준히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방언의 의미 변화나 사회언어학적 변화 역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무섭노'를 둘러싼 논란은 특정 표현의 진위를 가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인터넷 시대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고, 사회적 낙인 속에서 언어 다양성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리센느 원이가 자신의 고향인 경남 거제 사투리를 쓰고 있다. (사진출처: 유튜브 '안녕하세요원이입니다잘부탁드립니다') 2026.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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