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핵 확장 억지력 체계 만들어낸 시대, 이미 오래전에 끝나”
“美 확장 핵 억지력에 계속 의존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 될 것”
“확장 억지력 우려 가장 시급한 곳, 한반도와 동유럽”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미국의 동맹국들에 대한 핵 우산 제공을 축으로 한 ‘확장 핵 억지력’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한국과 유럽 등은 자체적으로 방어 태세를 구축해야 한다는 고언이 나왔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 잡지 포린어페어즈는 23일자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다트머스대 정치학과의 제니퍼 린드와 대릴 G. 프레스 교수의 공동 기고문을 실었다.
제목은 ‘부러진 핵 우산, 확장 억제 이후 어떤 시대가 오나’
이들은 구소련 붕괴와 탈냉전 이후 시대적 변화,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등으로 미국이 핵 확장 억제를 제공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자체 핵무장에 나설 경우 미국은 지원하고 무장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국을 보호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하는 기고문 요지
◆ “美 핵 확장 억지력 체계 만들어낸 시대, 이미 오래전에 끝나”
아시아와 유럽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확장 핵 억지력에 의존하여 안전을 지켜왔다. 자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기로 합의했다.
냉전 시대에는 효과적이었으나 미국의 핵 확장 억지력 체계를 만들어낸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러시아의 위협은 제한적이어서 동유럽에서 영향력 범위를 둘러싼 전쟁이 발발했다. 한반도는 북한이 필사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려 애쓰는 지역적인 갈등으로 축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 방어를 위해 미국 도시들을 위험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이 대부분 지역적 양상을 띠고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줄이는 시대다. 미국이 멀리 떨어진 동맹국을 위해 핵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믿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라트비아, 폴란드, 한국 지도자들은 자국의 안전을 위해 미국이 스스로의 파멸을 감수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북한과 러시아 지도자들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美, 핵 보증국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미국의 핵 공약이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면 동맹국들은 어떻게 안보 요구를 충족할 수 있나.
현재 핵 억지력 전략의 약점을 방치하면 적대 세력은 더욱 대담하게 공격할 수 있다.
아시아와 유럽 동맹국들이 서둘러 핵 프로그램 개발에 나서면 예방적 공격과 급격한 분쟁 확대 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핵 보증국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동맹국들이 지정학적 현실에 더 적합한 해결책, 경우에 따라서는 자체 핵무기 보유를 모색하는 것을 수용해야 한다.
◆ 구소련 붕괴가 확장 억제 약화의 출발
미국의 핵 억지력에 대한 신뢰도를 약화시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였다.
서방 존립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상황이 아닌 지역 안보 문제가 됐다. 미국은 동맹국을 위해 핵전쟁을 감수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 확장 핵억제에 대한 불신은 사실상 오래전부터 있었다. 1961년 프랑스 샤를 드골은 “미국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시를 희생하겠느냐”며 그 발상을 비웃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핵 억지력이 의심을 받으면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약속을 공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핵잠수함 기항이나 폭격기 비행 등 군사적 시위도 했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이라고 선언한 것도 미국과 나토가 하나 임을 강조한 것이었다.
로널드 레이건도 유럽 청중에게 “뮌헨에 대한 공격은 시카고에 대한 공격과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최근 공격적인 행보는 유럽 국가들에게 더 강력한 억지력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동맹국들이 미국의 국가 안보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기준으로 동맹 관계를 평가한다.
2028년 누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되든 동맹국을 돕기 위해 대규모 핵전쟁을 벌이는 것은 더 이상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미국 내에서도 외교 정책 방향을 놓고 분열된 지금 동맹국들이 미국의 확장 핵 억지력에 계속 의존하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 될 것이다.
대만 해협의 긴장 고조는 일본이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 시 핵 교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호주는 미국이 자국 기지를 사용하도록 허용할 경우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 확장 억지력에 대한 우려가 가장 시급한 곳은 한반도와 동유럽
확장 억지력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큰 곳은 한반도와 동유럽, 즉 공격적이고 핵무장한 적대 세력이 확전을 위협하는 두 전선이다. 대응이 시급한 곳이기도 하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 이후 50~90개의 핵무기를 보유해 왔으며 이를 계속 늘리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나토간 핵 공유 협정을 모델로 고려할 수 있다.
이 협정에서 미국은 북한의 공격시 전술 핵무기 통제권을 한국에 이양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면 미국은 지지하고 한국이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북한 정부는 자국 군대에 핵무기를 재래식 전쟁 계획에 통합하도록 지시했다. 이는 한반도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 발전으로 북한은 더욱 위험해지고 있다. 2017년 북한은 원자폭탄보다 파괴력이 10배 이상 강력한 핵실험을 감행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운반 시스템 개발이 진전돼 미국 도시들은 북한의 직접적인 공격 목표물이 될 수 있다.
만약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 도시들을 겨냥할 수 있다면 미국 정책 결정자들은 한국을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다.
◆ 미국은 억지력 신뢰성 높이는 조치들을 해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한반도 확장 억지력의 신뢰성을 높여주었던 여러 조치들을 점진적으로 해체해 왔다.
주둔 병력을 감축하고 북한과의 비무장지대에서 더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냉전이 종식된 1991년 미국은 한국에서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켰다.
트럼프 행정부의 수사적 발언과 정책은 한국이 미국에 의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가장 최근에는 이란 전쟁 중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드 미사일 방어 체계를 한국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이전했다.
이는 동맹국의 필요보다 자국의 안보를 우선시할 것이라는 한국의 커져가는 우려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 전술핵 재배치 등 한국의 3가지 옵션…韓, 핵탄두 외 핵무장 조건 갖춰
한국의 전략가들은 핵 억지력 강화 방안으로 세 가지 옵션을 논의해 왔다.
전술 핵무기 재배치, 나토식 핵 공유 체제 구축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는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핵확산금지 원칙을 고수해 왔다.
많은 한국 안보 전문가들은 핵무기가 경제 제재, 외교적 고립, 심지어 북한의 보복 공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여전히 핵무장화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독자적 핵무기 보유를 한국 국민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보유한 비핵국가이다. 현재 3척을 보유하고 있고 3척을 추가로 건조 중이다.
한국 공군은 12개 이상의 군용 비행장에 배치되고 수백 개의 강화 격납고로 보호되는 대규모의 최신 전투기 전력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수십 개의 지상 발사형 이동식 미사일도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핵무기 자체를 제외한 핵무장 주요 요소들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의 신뢰도가 약화돼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강행할 경우 북한이 이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져 전쟁 위험이 커질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핵 공유 협정을 요청한다면 이를 환영하고 자체 핵무기 보유를 결정한다면 지원해야 한다.
확장 핵 억지력이라는 세계적 체제는 냉전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이해관계에 맞춰 구축된 대담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시대는 끝나 미국은 과거의 방식이 아닌 현재의 세계에 맞는 억지 전략을 새롭게 구상해야 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kjdrago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