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는 줄었는데…'친밀한 관계' 내 피해 증가

기사등록 2026/06/23 12:00:00 최종수정 2026/06/23 13:58:24

성평등부,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 발표

통신매체·성추행·강간 피해, 3년 전 대비 감소세

전 애인에 의한 불법촬영물 등 피해 13.8%→42.5%

"성폭력은 옷차림 때문" 38.7%…피해자 비난 여전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성평등가족부 로고가 보이고 있다. 2026.01.06.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우리 사회 성폭력 피해 경험률이 전반적으로 감소했지만, 전 애인이나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 의한 피해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전 애인에 의한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피해 비율이 3년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성평등가족부는 23일 전국 19세~64세 성인 남녀 1만1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피해방지법)'에 따라 3년마다 실시되는 국가승인통계다. 성폭력 피해 실태와 법·제도 인지도, 정책 수요 등을 파악해 관련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진행된다.

◆전 애인 피해 13.8%→42.5%…가해자 협박 통한 불법촬영물 인지 증가

조사 결과 유형별 평생 성폭력 피해 경험률은 2022년보다 전반적으로 줄었다.

구체적으로 통신매체 이용 피해 경험률은 2022년 9.8%에서 2025년 7.6%로 감소했다. 성추행 피해 경험률은 같은 기간 3.9%에서 2.4%로, 성기노출 등 목격 피해는 9.3%에서 5.9%로 각각 줄었다. 강간·강간미수 피해 경험률도 0.2%에서 0.1%로 감소했다.

피해 양상에는 변화가 확인됐다. 전 애인, 애인,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피해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여성 응답자를 기준으로 전 애인에 의한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피해 비율이 2022년 13.8%에서 2025년 42.5%로 크게 증가했다.

애인에 의한 피해는 10.3%에서 18.1%로, 배우자에 의한 피해는 6.0%에서 13.4%로 각각 늘었다.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유포 피해의 가해자는 배우자(18.8%), 전 배우자(13.4%), 애인(11.0%), 전 애인(10.3%) 순으로 나타났다.

성추행 피해에서도 전 애인이 가해자인 비율이 증가했다. 여성 응답자 기준 성추행 피해 가해자 유형 중 전 애인 비율은 2022년 5.6%에서 2025년 14.6%로 상승했다.

성평등부는 성폭력이 낯선 사람에 의한 것을 넘어 친밀한 관계 안에서도 발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김성철 성평등부 안전인권정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동의 없이 영상물이 제작되거나, 동의하에 제작된 영상물이 동의 없이 유포되는 양상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2022년에 비해 생성형 인공지능(AI)이나 합성앱 등 허위영상물 제작이 용이해진 기술적 환경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또 "연인관계 종료 후 상대방에게 보복하거나 성적 모욕감을 주려는 심리가 결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성평등가족부가 23일 발표한 '2025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중 평생 동안 성폭력 피해 경험률. 2026.06.23. (자료=성평등가족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유포 피해의 인지 경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기준 유포 피해를 알게 된 경로는 '유포자의 협박을 계기로'가 37.0%, '주변 지인을 통해'가 35.0%였다. 2022년 조사에서는 유포자 협박 응답이 없고 주변 지인을 통해 알았다는 응답이 75.1%에 달했다.

피해 이후 추가 유포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불법촬영물·허위영상물 유포 피해 경험자 중 추가 유포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는 응답은 61.3%였다. 여성 응답자는 85.1%로, 2022년 77.9%보다 7.2%포인트 높아졌다.

강간·강간미수 피해에서도 강요, 속임, 회유 등 복합적 양상이 확인됐다. 여성 응답자 기준 피해 당시 상황을 복수응답으로 조사한 결과, 강요가 84.4%로 가장 높았다. 속임은 47.7%, 협박은 47.6%, 폭언은 42.0%, 회유는 31.1%, 폭행은 25.5%였다.

성평등부는 "이번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강요 등에 의한 피해가 현행법으로 보호받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비동의강간죄 입법에 대해 현장 전문가를 비롯해 관계부처와 의견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여성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다. 여성 응답자의 53.1%는 '밤늦게 혼자 다닐 때 성폭력을 겪을까 봐 두렵다'고 답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낯선 사람이 방문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40.4%, 택시나 공중화장실을 혼자 이용할 때의 두려움은 39.4%였다.

불법촬영, 불법촬영물 유포 등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우려도 20% 이상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은 옷차림 탓" 38.7%…피해자 비난 인식 여전

성폭력 관련 통념은 전반적으로 개선되는 추세지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거나 피해를 의심하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38.7%는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는 인식에 동의했다. 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피해 후 바로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응답은 38.4%, '금전적 이유나 상대에 대한 분노, 보복심 때문에 성폭력을 거짓으로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는 응답은 34.4%였다.

특히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 성폭력 원인이라는 인식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강했다. 19~29세는 31.7%, 30~39세는 32.5%, 40~49세는 36.9%, 50세 이상은 46.7%가 이에 동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44.0%, 여성이 33.1%였고 거짓신고가 많다는 응답도 남성이 38.1%, 여성이 30.5%였다.

2차 피해 역시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 경험자 중 여성과 남성 모두 '피해 사실을 주변 사람에게 말해봐야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응답이 각각 16.0%, 11.3%로 가장 높았다. 여성 피해자의 경우 '네가 그런 행동을 할 여지를 주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응답이 12.6%였고, 남성 피해자는 '친해서 한 행동인데 네가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반응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10.5%였다.

연구를 수행한 황정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체적으로 통념 수준은 개선됐고 법에 대한 인지도도 높지만, 실제 행동으로는 아직 안착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 신고율은 매우 낮았다. 피해 경험자 중 경찰에 신고했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여성은 2.4%, 남성은 0.7%였다.

신고하지 않은 이유로는 '피해가 심각하지 않아서'가 전체 73.0%로 가장 많았다. 여성 응답자 기준으로는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31.6%, '확실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31.5%,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24.7% 등이 뒤를 이었다.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수요로는 '2차 피해 방지 정책 마련'이 45.7%로 가장 높았다. 이어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33.0%), 피해자 지원 서비스 강화(32.2%), 가해자 재범방지 처분 강화(28.7%) 순이었다.

[서울=뉴시스] 성평등가족부가 23일 발표한 연도별 성별 성폭력 관련 인식 추이(2013, 2016, 2019, 2022, 2025). 2026.06.23. (자료=성평등가족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성폭력과 디지털성범죄 관련 법·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전반적으로 높은(75~88%) 수준을 보였지만, 세부 운영 제도 간 격차가 있었다.

해바라기센터 등 피해자 지원기관 인지도는 73.6%, 여성긴급전화 1366은 70.2%,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61.8%였다.

반면 불법촬영물 등과 신상정보 삭제 지원 인지도는 57.2%, 불법촬영물 등과 신상정보 대리 삭제지원 요청권 인지도는 48.2%, 친고죄 폐지 인지도는 59.4%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성평등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교제폭력 대응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률 마련을 추진할 계획이다. 현재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스토킹처벌법 개정안 등 교제폭력 관련 법안 16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 정책관은 "장관을 비롯해 실무진이 법무부, 법원 등 관계부처와 법제화 방안을 긴밀히 협의해왔다"며 "관련 법안이 조속히 마련될 수 있도록 국회 입법을 지원하고 소관부처인 법무부 등과 계속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디지털성범죄에 대해서는 예방·수사·차단·피해자 지원 전 과정에 걸친 범부처 협력을 확대하고, AI 기술을 활용한 피해 지원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불법촬영, 비동의 유포 개념과 피해 발생 시 대처 방법에 대한 홍보도 확대한다.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폭력예방교육을 강화하고,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해 내달부터 현장에 적용할 예정이다. 성폭력 사건 발생 시 피해자뿐 아니라 조력자도 보호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 증가와 2차 피해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디지털성범죄와 교제폭력의 사각지대가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가 두려움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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