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록 한계 넘으려 커서 인수…기업용 AI 시장 우회 진입
닷컴버블 때도 주식 발행 러시 뒤 거품 꺼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스페이스X가 현금 대신 커서 주주들에게 자사 주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AI 코딩 도구 업체 커서(Cursor)를 600억달러, 약 83조원 규모로 인수하기로 한 것은 머스크의 기업용 AI 시장 진입이자, AI 투자 광풍 속 기업들이 비싸진 주식을 앞세워 인수전에 나서는 사례라고 짚었다.
커서는 개발자가 세부 코드를 일일이 쓰지 않고 자연어로 원하는 기능을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작성·수정해주는 프로그래밍 보조 도구다. 이런 방식은 최근 ‘바이브 코딩’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됐다.
WSJ은 머스크의 챗봇 그록이 아직 기업용 AI 시장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커서 인수가 그에게 우회로를 열어줬다고 평가했다. 커서 인수가 마무리되면 머스크는 곧바로 기업 고객을 겨냥한 AI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다.
하지만 WSJ이 더 주목한 대목은 거래 방식이다. 스페이스X는 현금이 아니라 자사 주식을 커서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수 대금을 치르기로 했다. 주가가 높을수록 같은 인수 대금을 치르기 위해 넘겨야 할 지분은 줄어든다. AI 승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비싸진 스페이스X 주식이 머스크의 대형 인수 실탄이 된 셈이다.
이 거래가 거품 신호로 읽히는 이유는 기업들이 돈을 조달하는 방식 때문이다. 기업은 투자나 인수 자금을 마련할 때 크게 두 가지 선택지를 갖는다. 빚을 내거나, 주식을 새로 발행하는 방식이다. 금리가 낮으면 빚을 내는 것이 싸고, 주가가 높으면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 싸다.
주가가 낮을 때 주식을 발행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희석되고 주가에도 부담을 준다. 반대로 주가가 높을 때는 기업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지분을 내주고 큰돈을 조달할 수 있다.
WSJ은 이런 선택이 한두 기업에 그치지 않을 때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여러 기업이 동시에 주식을 새로 발행해 투자자에게 팔거나, 주식으로 인수 대금을 치르기 시작하면 시장 전체의 주가가 지나치게 비싸졌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WSJ은 기업들이 비싸진 주식을 시장에 내놓거나 인수 대금으로 쓰는 흐름 자체가 과열장의 신호일 수 있다고 봤다.
금융정보업체 LSEG 자료에 따르면 닷컴버블 당시 미국 인수·합병 거래의 3분의 2는 새로 발행한 주식으로 자금을 댔다. 2020~2021년에도 이 비중은 45%까지 올라갔다. 두 시기는 1990년 이후 4개 분기 기준으로 주식 조달 비중이 가장 높았던 때였다.
WSJ은 지금도 대형 거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번 분기 기업들은 인수 비용의 거의 절반을 주식으로 조달하고 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최근 대규모 주식 발행처럼,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겠다고 몰려들자 기업들이 새 주식을 내놓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주식 발행 자체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위험한 신사업이나 인수에 돈을 댈 때는 갚아야 하는 부채보다 주식 자금이 더 적절할 수 있다.
그러나 WSJ은 AI를 향한 자금 조달이 홍수처럼 몰리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I가 실제로 막대한 돈을 벌어줄 만큼 큰 시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앞다퉈 돈을 쏟아부으면 경쟁이 치열해져, 투자한 만큼 이익을 남기지 못할 수도 있다. WSJ은 닷컴버블 때도 기업들이 가능한 한 빨리 돈을 쓰기 위해 경쟁했고, 투자금을 얼마나 빨리 써버리는지를 뜻하는 ‘번 레이트’조차 성장의 증거처럼 여겨졌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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