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환시·환후 경험 작업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질문
3m 신작 회화와 드로잉 23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환각은 병의 증상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현실의 풍경이었을까.
PKM갤러리가 10일 개막한 이근민(44) 개인전 '장면이 되기 전(Before It Becomes a Scene)'은 사회가 '증상'이라 규정하기 이전의 감각과 이미지를 화면 위에 불러낸다.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으로, 작가가 2023년부터 제작해온 신작 회화와 드로잉 23점을 선보인다.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근민은 25년 전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던 과정에서 사회가 부여한 병명과 진단의 권력,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환각을 동시에 마주했다. 이후 그는 그 경험을 외면하지 않고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아왔다.
서울과 뉴욕, 파리, 베를린, 말뫼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어왔으며, 2022년 스페이스K 개인전 '그리고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를 통해 동시대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는 약 3m 높이의 대형 회화를 비롯해 드로잉 연작 'Refining Hallucinations' 등 미공개 신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근민은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사회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분류해온 인간 존재의 경계를 탐구해왔다.
전시 제목인 '장면이 되기 전'은 의학적·사회적 판단이 개입되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신작 'Psychiatrist's Head', 'Organic Plate', 'Connected Body' 등에는 해체된 신체와 장기, 혈흔,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환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기억 속 파편화된 이미지와 감각을 끈질기게 추적해 하나의 유기적 화면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이근민의 화면은 붉은 살점과 근육, 장기 등을 연상시키는 형상들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상태를 드러낸다.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한 이미지는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경계를 넘어 누구나 공유하는 인간의 조건으로 확장된다.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는 "작가는 자신이 환각 속에서 목격했던 파편화된 신체와 이름 없는 존재들을 화면으로 소환한다"며 "사회가 병이라 규정하고 배제해온 감각과 존재를 다시 가시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화면 위에 펼쳐지는 폭발적인 에너지는 작가의 내면 풍경인 동시에 자신을 구속해온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려는 해방의 몸짓으로 읽힌다.
특히 작가는 밑그림이나 사전 계획 없이 손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을 활용해 드로잉 연작을 완성했다. 화면 속 이름 없는 생명체들은 사회가 부여한 병명과 분류 체계 바깥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인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전시 개막일인 10일에는 이근민이 활동 중인 원맨 밴드 '고트 앤 멍키(Goat and Monkey)'의 IDM(Intelligent Dance Music) 음악이 함께 소개됐다. 사운드의 질감과 구조에 집중하는 IDM 특유의 감각은 회화와 음악을 병행해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전시는 7월 25일까지. 관람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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