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 치료제 족집게 설계"…김빛내리 교수, '유전자 사냥꾼' 비밀 풀었다

기사등록 2026/06/11 00:00:00

IBS·서울대, 유전자 조절 단백질 활성화 과정 세계 최초 규명

택배 상자 열듯 RNA 실릴 공간 만드는 원리 확인

대사질환 등 난치질환 RNA 치료제 설계 시행착오 줄일 단서 제시

[서울=뉴시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수림문화재단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에서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2차 회의'를 열었다. 사진은 차담회에 참석한 김빛내리 서울대학교 석좌교수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서울=뉴시스]심지혜 기자 = 특정 유전자가 과도하게 발현돼 생기는 대사질환, 알츠하이머 등 난치성 질환을 겨냥한 RNA 치료제를 더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질병 원인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RNA 치료제'가 세포 안에서 어떻게 조립되고 작동하는지 그 전 과정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결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과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 ‘아고넛'의 활성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유전자 저격수 '아고넛', 베일 속 활성화 단계 포착

우리 세포 안에는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특정 유전자의 과도한 발현을 억제하는 '마이크로 RNA(miRNA)'가 존재한다. 아고넛은 miRNA와 결합해 표적이 되는 전령 RNA를 찾아 분해함으로써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단백질이다.

RNA 치료제가 몸 안에서 효과를 내려면 치료용 RNA가 아고넛 단백질에 정확히 실려야 한다. 그러나 아고넛이 어떻게 RNA를 받아들여 유전자 조절 기능을 갖춘 활성 상태가 되는지는 지금까지 미지의 영역이었다. 세포 속 아고넛은 대부분 이미 RNA와 결합한 상태로만 발견돼 결합 직전의 순간을 포착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단백질의 정상적인 조립을 돕는 도우미 단백질인 '샤페론'이 결합 직전 상태의 아고넛을 붙잡아 대기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써 치료제 개발의 막힌 혈을 뚫을 핵심 단서를 찾았다. 샤페론은 세포 안에서 다른 단백질에 붙어 정상적인 3차원 구조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단백질이다. 이와 함께 아고넛에 잘 결합하는 RNA의 특성도 규명했다.
[서울=뉴시스]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과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단백질 ‘아고넛의 활성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은 아고넛이 표적 유전자 억제 기능을 획득하는 과정. (사진=과기정통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본 분자 세계…상자 열어 RNA 탑재

연구팀은 아고넛의 조립 과정을 직접 관찰하기 위해 샤페론과 결합한 아고넛 복합체를 분리하고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최첨단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기술을 투입해 이 복합체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선명하게 분석했다.

분석 결과는 놀라웠다. 샤페론은 아고넛 단백질을 완전히 열린 형태로 붙잡아 두고 있었다. 마치 택배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상자 뚜껑을 열어둔 셈이다. 이 빈 공간에 miRNA가 들어가 결합하면 임무를 마친 샤페론은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이후 아고넛은 유전자를 조절할 수 있는 단단히 닫힌 형태로 완성이 됐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miRNA를 이미 완성된 빈 상자에 담기는 단순한 '탑재물'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miRNA가 상자의 뼈대를 이루며 아고넛 단백질의 조립을 완성하는 핵심 인자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서울=뉴시스]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과 서울대 생명과학부 노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핵심 단백질 ‘아고넛'의 활성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공동 교신저자인 IBS RNA 연구단 김빛내리 단장과 노성훈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공동 제1저자인 IBS RNA 연구단 이영윤·정민석 연구원, 이한솔 고려대 생명정보공학과 교수. (사진=과기정통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깜깜이식' 신약 설계 끝…시행착오 획기적으로 줄인다
 
이번 연구는 차세대 신약 플랫폼으로 주목받는 '작은 간섭 RNA(siRNA) 치료제' 설계 방식을 통째로 바꿀 원천 기술로 평가받는다.

현재 임상에서 쓰이는 siRNA 치료제는 체내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화학적 변형을 가한다. 하지만 그 변형의 종류와 위치 조합이 천문학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지금까지 수천 가지 조합을 일일이 만들고 테스트하는 노가다성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은 아고넛에 효율적으로 탑재될 수 있는 RNA의 화학적 특성, 이중나선 구조, 20~24개 염기의 최적 길이 등을 분자 수준에서 확인했다. 또 현재 임상에서 쓰이는 siRNA 치료제의 화학적 변형이 아고넛 조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밝혀냈다. 그동안 수천 가지 조합을 일일이 합성하고 검증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RNA 치료제를 보다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김빛내리 단장은 "그동안 시행착오에만 의존하던 RNA 치료제 설계에 명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성과"라며 "향후 훨씬 효율적이고 안전한 난치병 치료제를 빠르게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성훈 교수는 "이미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단백질이 기능을 갖추어 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한 데 의미가 크다"라며 "단백질 조립 원리를 규명함으로써 생물 현상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실장은 "이번 연구 성과는 우리 생명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폭을 넓혀갈 기초과학 연구의 소중한 결실"이라며 "이러한 원천지식이 국가 경쟁력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되는 만큼, 연구자들이 오롯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해 나가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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