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헤즈' 데이비드 번, 50년 만에 韓에 도달한 '부조리 시학' "과거에 머물지 않죠"

기사등록 2026/06/05 08:39:00 최종수정 2026/06/05 08:56:13

8월21일 경희대서 펼치는 첫 내한공연 기념 인터뷰

41년 만에 韓 개봉한 토킹헤즈 콘서트 실황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도 화제

번 레이블 '루아카 밥', 韓 밴드 이날치와 계약

"천국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번. (사진 = Shervin Lainez 제공) 2026.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천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라던 위대한 뮤지션이, 마침내 아무 일도 예측할 수 없는 이 혼돈의 땅에 당도한다. 1974년 미국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를 결성하고 1977년 발매한 명반인 데뷔 앨범 '토킹 헤즈(Talking Heads) : 77'으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선보이며 주목받은 지 약 50년 만에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첫 내한공연(8월21일 오후 8시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한다.

반세기에 가까운 궤적 동안 번은 늘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바깥을 향해 걷는 사람이었다. 펑크(Punk)의 원시적인 시선으로 팝의 공식을 해체했고, 아프리카의 리듬과 전위적인 무대 연출을 결합한 콘서트 실황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1984)를 통해 음악이 육체의 언어로 번역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직조해 냈다. 지난해 41년 만에 국내 처음 개봉한 이 영화에서 헐렁한 오버사이즈 슈트를 입고 무대를 질주하던 기이한 프런트맨은 이후 솔로 아티스트이자 작가, 영화감독, 시각 예술가로 자신의 영토를 무한히 확장해 왔다.

그의 긴 이력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로의 퇴행에 대한 단호한 거부'일 것이다. 토킹 헤즈의 재결합을 요구하는 거대한 자본과 대중의 향수 앞에서도 그는 결코 시계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다. 지나간 영광을 박제해 안전한 이윤을 얻는 대신, 현재의 진화 안에 불안하게 머무르는 쪽을 택한다. 이는 시간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예술가의 가장 윤리적인 저항이다. 타인의 향수를 위해 자신을 복제하는 일을 멈출 때, 비로소 예술가는 살아있는 현재진행형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그가 설립한 레이블 '루아카 밥(Luaka Bop)'이 장영규 음악감독이 이끄는 한국의 사이키델릭 팝 밴드 '이날치'의 손을 잡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는 변방의 소리를 '이국적인 장식품'으로 타자화하지 않고, 생동하는 동시대의 언어로 포착해 낸다. 경계를 허물고 타자와 접속하려는 이 치열한 호기심이야말로 그를 늙지 않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다.

여기 최근 새 앨범 '후 이즈 더 스카이?(Who Is The Sky?)'를 발매하고 미국 대형 음악 축제 '2026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을 비롯 월드 투어를 도는 번과 나눈 인터뷰 기록이 있다. 우연한 오독에서 탄생한 시 같은 앨범 제목의 질문은, 완벽히 통제된 이성을 멈출 때 비로소 삶의 진실에 가닿는다는 그의 오랜 철학 '스톱 메이킹 센스'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정적이고 무의미한 완벽함뿐인 '천국'을 지나, 그가 마침내 안착한 구원의 장소는 우연과 부조리, 그리고 웃음이 뒤섞인 우리의 불완전한 지상이다.

수많은 타인의 눈과 귀를 빌려 자신의 성채를 무너뜨리고 또다시 쌓아 올리는 이 거장은, 세상의 부조리를 논리로 해부하는 대신 그저 우리와 함께 춤추고 웃으며 이 혼돈을 건너가자고 청한다. 기만적인 시간과 자본의 덫을 피해 가장 독창적인 방식으로 생존해 낸, 한 위대한 예술가의 아름다운 변론이다. 다음은 국내 언론이 음반사 베거스(Beggars)를 통해 번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번. (사진 = Shervin Lainez 제공) 2026.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신의 작품은 세상을 명료하게 관찰하면서도 유머, 낙관주의, 그리고 인간적 유대에 대한 관심을 결코 잃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그 자체의 모순을 품고 있는 듯한 세상에서, 예술가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저항은 부조리를 논리적으로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춤추고 웃으며 그것을 헤쳐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불안과 갈등이 고조된 시대에, 음악과 공연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무엇이라고 믿으십니까?

"와, 질문이 정말 많네요! 솔직히 그 낙관주의와 인간적 유대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것일 텐데, 어쩐지 요즘 그냥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 같아요. 완전히 의식적인 건 아니지만, 어떻게 그 일부가 일어나는지는 짐작할 수 있어요. 밴드(그리고 댄서들)는 모두 이동이 자유로워요. 그래서 호주 투어에서 알게 된 건데, 그로 인해 생기는 효과가 있어요. 공연이 더 민주적이고 덜 위계적으로 느껴진다는 거죠. 물론 제가 대부분 앞에 있긴 하지만, 때로는 드러머들이 앞으로 나오고, 때로는 댄서들이, 때로는 클라리넷과 첼로 연주자가 나와요. 모두가 최소한 한 번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있고, 배경의 실루엣으로 밀려나지 않아요. 그 결과, 모두가 보여지고, 인정받고, 존중 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무대 위의 전반적인 좋은 기분으로 이어지죠. 또 짐작하건대 세월이 흐르면서 제가 덜 권위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더 많이 협업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환영하고, 지시하기보다는 이끌어요. 우리가 하려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모두가 그 목표와 결과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건 집단의 노력이고, 그것 역시 좋은 기분을 줘요."

-거의 50년 동안 당신은 토킹 헤즈에서부터 솔로 작업, 영화, 뮤지컬 극장, 시각 예술, 글쓰기, 그리고 레이블 운영에 이르기까지 창작 영역을 계속 확장해 왔습니다. 이렇게 오래 활동한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는 데 안주하지만, 당신의 음악은 끊임없이 실험하려는 의지로 특징 지어지며,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놀라운 수준의 기교를 유지합니다. 이미 효과가 검증된 자신만의 스타일로 후퇴하지 않고 이토록 오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한 단 하나의 가장 큰 힘은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그 갱신의 원천은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과찬이세요. 제 음악적 취향은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에 형성됐는데, 제가 존경했던 많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걸 발견했어요. 그 실험정신이 멋진 것으로 여겨졌죠. 예술가들은 팬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시도하도록 격려받았고, 그래서 저는 그 감수성을 흡수했고 그것이 제가 작업하고 창작하는 방식이 될 거라고 여겼어요. 토킹 헤즈 시절에도 우리가 너무 많이 자신을 반복하면 특정한 사운드와 접근 방식과 동일시될 것이고, 그것이 함정이 되리라는 걸 깨달았어요. 변화하고 유연하게 함으로써 갇히지 않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게다가 저는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고, 실험 극장에 빠졌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화 제작자들에게 빠졌고, 음악 밖에서 영감을 찾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제 호기심이 저를 여러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게 이끌었죠."

-프로듀서 키드 하푼(Kid Harpoon)과 작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 음반은 당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서사들을 그에게 넘길 때, 상세히 전부 공유했나요, 아니면 핵심적인 밑바탕의 아이디어만 전달하고 그가 해석하도록 했나요? 외부 협업자가 이토록 개인적인 무언가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궁금합니다.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번. (사진 = Shervin Lainez 제공) 2026.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저는 키드 하푼에게 제 음반 프로듀싱을 제안하기 전에 이 곡들 중 여러 곡을 이미 써 뒀어요. 아주 아주 희박하고 최소한의 데모를 만들었죠. 어쩌면 저와 기타, 그리고 아주 단순한 그루브뿐인,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각 곡이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지 감지할 수 있다는 게 제게 고무적이었어요. 그가 했던 음반들이 정말 멋지게 들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곡들이 팝송치고는 특이할지 몰라도 여전히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적절한 사운드와 프로듀싱이 그걸 도울 수 있다고요. 저는 마일리(Miley), 플로렌스(Florence), 매기 로저스(Maggie Rogers)를 조금 알고 있어서 '톰(Tom)(키드 하푼은 톰 훌(Tom Hull)이라는 활동명도 가지고 있다)과 작업하기 괜찮았어?'라고 물어볼 수 있었어요. 모두 그렇다고 했죠. 저는 그에게 고스트 트레인 오케스트라(Ghost Train Orchestra)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위험을 감수하고 함께 도약하기로 한 게 좋았죠. 키드 하푼은 그들과 작업하고 곡에 가장 잘 맞도록 그들의 편곡을 조정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40년 전 '스톱 메이킹 센스'에서 당신은 몸의 두 배 크기 정장을 입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성의 상징인 '머리'를 더 작게 보이게 해, 음악을 정신이 아닌 몸의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한때 텅 빈 맨 무대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서사를 쌓아 올렸던 당신이, 이번 투어에서는 대규모 앙상블과 함께 화려한 시각적 세계 한가운데로 뛰어듭니다. 몸에서 스펙터클로, 텅 빔에서 영화적 장대함으로, 이러한 변화들을 가로질러 무대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며, 수십 년에 걸쳐 그 생각이 어떻게 진화해 왔습니까?

"저는 분명 거창한 무대 연출 아이디어로 시작하지 않았어요. 다른 예술가들의 무대 연출이나 춤이나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베끼고 싶지 않아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조명도 없고, 무대 연출도 없고, 춤도 없었죠. 하지만 조금씩 다른 밴드나 가수가 아니라 저에게서 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움직임의 방식들을 발견했어요. 실험 극장을 보고, 록 밴드들이 시도하지 않던 다른 종류의 조명과 무대 연출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제 무대 연출에 대한 사고를 정말로 해방시킨 것은 아시아 전통 극장에 대한 노출이었어요. 종교 의식과 전통 극장(이 둘은 종종 연관돼 있죠)을 본 후,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실제 삶의 어떤 재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단지 매우 제한된 한 종류의 서양 '자연주의적' 무대 연출 방식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시아 극장은 자연스러운 몸짓, 말, 무대 연출의 재현인 척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제게는 그것이 음악 콘서트가 무엇일 수 있는지에 더 가까워 보였어요. 예를 들어, 그 큰 정장은 노(Noh) 극장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서양의 비즈니스 정장으로 번역된 것이죠."

-당신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토킹 헤즈 재결합을 단호히 거부하며,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과거를 방부 처리하는 대신, 당신은 현재의 진화 안에 머무르기를 택합니다. 이 거부는 시간의 폭력과 자본의 유혹 양쪽 모두를 견뎌내는 예술가의 가장 윤리적인 방식일까요?

"제가 보기에 토킹 헤즈는 존재하던 시기에 꽤 성공적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의, 혹은 뒤늦은 인정을 자본화하기 위해 재결합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아요. 처음 존재했을 때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이나 돈)을 결코 받지 못한 밴드들도 있죠. 그러니 그들이 재결합으로 그걸 얻을 수 있다면, 못 할 것도 없죠? 해체하는 모든 그룹이 원인으로 '음악적 차이'를 거론하긴하지만, 제 경우에는 그게 분명히 사실인 것 같아요. 밴드가 해체된 후 제가 만든 첫 음반은 라틴 음악가들과 함께한 것이었는데, 그건 토킹 헤즈와는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제 경력은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지금은 제 관객이 토킹 헤즈 때보다 더 많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계속 진화하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할 수 있어요. 새로운 종류의 공연, 뮤지컬, 미술 설치 작품 같은 것들을요."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번. (사진 = Shervin Lainez 제공) 2026.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신의 레이블 '루아카 밥'은 오랫동안 특정 지역의 음악을 단순한 '이국적 사운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시대 음악으로 소개해 왔습니다. 오늘날 비영어권 음악이 전 세계적으로 더 자주 들리지만, 스트리밍은 또한 음악이 소비되는 속도를 가속화합니다. 이 시대에, 국경을 넘어 음악을 옮길 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가장 보고 싶은 변화는 무엇입니까?

"감사합니다. 다른 지역의 음악을 '이국적'으로 제시하려는 진짜 유혹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그 문화와 음악을 깎아내리는 것처럼 보였죠. 그래서, 우리는 어디 출신이든, 오키나와, 페루, 콜롬비아, 브라질, 쿠바, 프랑스든 그 음악을 동시대적이고, 생동감 있고, 살아 있는 것으로 제시하기로 했어요. 어떤 유물이나 얼어붙은 전통이 아니라요. 모든 것이 인기를 끌었던 건 아니에요. 솔직히 아시아 음반들은 서양 청취자들에게 도전적이었어요. 하지만 루아카 밥은 포기하지 않았어요. 다음 음반은 급진적인 한국 밴드 이날치의 것이 될 거예요. 서양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할지 두고 보죠. 우리 중 일부는 좋아하니까요!"

-'후 이즈 더 스카이?(Who Is The Sky?)'는 알고리즘의 우연한 오독에서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비문법적이면서도 묘하게 시적인 구절을 만들어낸 오류 말이죠. 당신이 오랫동안 견지해 온 철학 '스톱 메이킹 센스'는 이성에 의해 완벽히 통제된 의미를 멈출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삶의 진실에 닿는다고 봅니다. 그 철학이 이 우연한 오류조차 필연적인 시, 즉 존재 그 자체를 질문하는 시로 격상시킨 것일까요?

"네, 저는 제목이 '발견된' 출처에서 나왔다는 게 좋아요. 실수, 매트릭스의 결함이 일종의 우주적 시를 만들어냈다는 거요. 우리는 이성적인 정신으로 많은 것을 해냈지만,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가 주장하듯이, 감정이 없으면 우리는 얼어붙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 즉 우리의 감정과 느낌이 그렇다는 거죠. 이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저는 아마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약간의 감수성을 공유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에 반응해 세상이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변했다고 느꼈고, 그들의 예술이 무의식에서 나온 그 혼란스럽고 비현실적인 발산들을 반영했다고 하죠."

-인공지능(AI)이 음악 창작과 산업 전반에 빠르게 진입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AI가 제한적인 방식으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지만, 특정 예술가의 스타일을 모방하기 위해 동의 없이 기존 작품으로 학습시키는 접근 방식에는 비판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AI가 창작자를 위한 도구로 기능하는 것과, 넘어서는 안 되는 선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울=뉴시스] 데이비드 번. (사진 = Shervin Lainez 제공) 2026.06.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저는 제 그림을 애니메이션화하는 데 AI를 사용했어요. 피터 잭슨(Peter Jackson)은 비틀스 다큐멘터리에서 악기와 목소리를 분리하기 위해 AI에 매우 가까운 무언가를 사용했죠. AI가 의료와 건강 관련 발견에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이 기술이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하도록 돕는 도구일 때는 모두 좋은 거죠. 하지만, 네, 그것은 또한 글쓰기, 음악, 영화를 대체하고 모방하기 위해 크레디트나 보수 없이 저작권이 있는 자료로부터 '학습'하는 데 사용돼 왔어요. 산업 혁명 때처럼 노동의 노력을 향상시키고 노동자가 일을 더 잘하도록 돕는 기술들이 있었고,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는 다른 기술들도 있었죠. 그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까요? 그 정의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네요.."

-당신의 콘서트 영상에서는 종종 현재 미국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 감지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의도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피하고, 어떤 이들은 예술가가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술가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공연에서 제 '정치적' 발언은 간접적인 경향이 있어요. 저는 특정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심지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지도 않아요. 저는 제가 보는 대로 세상을 묘사하려고 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관객이 결정하도록 둬요. 예를 들어 이번 공연에서는 달에서 공연을 시작하는데,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지구를 가리키며 '저기 있네요, 우리의 천국, 우리가 가진 유일한 천국'이라고 말해요. 자, 어떤 사람들은 천국이 다른 차원의 존재에 있는 마법 같은 곳이라고 믿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저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어요. 천국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에요. 영원히 완벽한 행복도, 전쟁도, 죽음도, 고통도, 슬픔도 없죠. 하지만 황홀함도, 맛있는 식사도, 초월적인 사랑도, 놀라움도 없어요."

-1979년작 '헤븐(Heaven)'에서 당신은 '천국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이라고 노래하며 완벽함의 무의미한 권태를 경고했습니다. 당신이 던지는 질문 '하늘은 누구인가?'은 끊임없이 일들이 일어나는 이 불완전하고 종종 부조리한 지상에서, 우리가 서로의 하늘이 될 수 있음을 '구원이자 거울 둘 다로서' 시사하는 듯합니다. 한때 당신이 거부했던 그 '정적인 천국'을 지나, 마침내 당신이 도달한 궁극의 구원의 장소는 바로 우리 일상의 이 혼돈과 부조리일까요?

"네, 우리가 삶의 혼돈, 우연, 사랑, 부조리, 유머를 끌어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어쩌면 어떤 종류의 만족, 어떤 종류의 구원과 평화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브라이언 이노(Brian Eno)부터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 키드 하푼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디스코그래피는 타인과의 끊임없는 연결의 역사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과 귀를 빌려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 온 이 긴 협업의 과정을 통해 누구에게도 결코 내주거나 타협할 수 없었던 당신만의 단 하나의 성채는 무엇이었습니까?

"솔직히 그 선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미 넘었을지도 몰라요. 만약 어떤 식으로든 타협했다고 느낀다면 그걸 느낄 거고, 알 거라고 짐작해요.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렇게 느낀 적이 없어요. 모든 협업이 제가 바라는 만큼 성공적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타협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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