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엄태구 "귀엽지 않으면 죽겠다는 각오로"

기사등록 2026/06/03 06:00:00

3일 개봉작 '와일드 씽' 구상구 역 맡아

기존 이미지 깨고 본격 코미디…춤·랩도

"망가지는 것 안 괴로워…연기가 중요"

혼성그룹 래퍼 역할 춤·랩 5개월 연습

"무대 즐기는 모습 보여주기 위해 노력"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망가지는 건 전혀 괴롭지 않아요. 자연스럽지 못한 연기가 괴로울 뿐입니다."

배우 엄태구(43)가 춤을 추고 랩을 할 거라곤 누구도 몰랐다. 게다가 카메라가 얼굴을 비출 때마다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 사람도 없었다. 내향인. 어느새 이 말은 엄태구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단어가 됐다. 말수는 적어도 너무 적고, 능청이나 넉살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민망해 하는 사람. 목소리를 크게 낼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눈 마주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 그게 우리가 아는 엄태구였다.

그러나 영화 '와일드 씽'(6월3일 공개)을 보면 엄태구는 내향인이기 전에 프로페셔널이라는 걸 새삼 다시 알게 된다. 떠올려 보면, 엄태구라는 배우를 처음 주목하게 한 영화 '밀정'(2016)에서 그는 대선배 송강호를 앞에 두고도 눈알을 부라리며 위악을 부리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부하 허성태의 뺨을 수 차례 내려치는 강단을 보여주지 않았나. 그러니 춤·랩·애교라고 못할 것도 없다.

"이건 제 직업입니다. 제가 평소 춤과 노래를 하지 못 한다고 해서 연기까지 어색하게 할 순 없습니다. 내 연기가 어색하다는 게 보일 때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롭죠. 많은 스태프 앞에서 춤과 랩을 하는 게 민망하지 않았냐고들 물어보시죠. 물론 그럴 때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민망할 겨를이 없습니다. 준비한대로 연기를 제대로 해내고, 정말 그렇게 나왔는지 확인하느라 바쁘니까요."

'와일드 씽'에서 엄태구는 '구상구'를 연기했다. 그룹 트라이앵글의 막내이자 팀에서 랩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멤버 중 가장 재능이 없어 보이지만 누구보다 욕심이 많다. 자신의 랩 파트가 적어서 늘 불만인 그는 동료 '현우'(강동원)와 '도미'(박지현)가 무대를 떠났을 때도 계속 앨범을 내며 자신만의 랩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 쓰다가 현우·도미와 재회해 무대에 다시 설 기회를 얻게 된다.

그간 코미디 연기를 안 한 건 아니지만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남다른 카리스마 덕에 엄태구는 주로 중량감 느껴지는 캐릭터를 도맡았다. 기존 그의 이미지와 상반된 구상구이기에 엄태구 역시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긴 했다"고 말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놔두고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걸 하는 선택한 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태구는 "관객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다. 관객을 정말 웃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강동원 선배님이 먼저 캐스팅 돼 있었기 때문에 선배님이 춤, 제가 랩을 하면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쉽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춤이나 랩 둘 다 전혀 못 했거든요. 이 정도로 본격적인 코미디 연기를 해본 적도 없었고요. 준비 과정과 촬영 모두 고통스러울 거란 걸 알고 있었지만, 하고 싶었어요. 글쎄요. 제가 다른 건 모르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안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춤과 랩을 촬영 전 5개월 간 준비했다. 매일 4~5시간 거울을 보며 춤을 췄고, 전담 선생님과 마주 앉아 매일 랩을 하고 가사를 썼다. "처음엔 쑥쓰러웠는데, 선생님께서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격려를 많이 해주셔서 덩달아 신나서 랩을 했습니다. 끝나고 나면 민망해 하고요." 말하자면 엄태구는 춤과 랩을 달고 살았다. "전 랩보다 춤이 더 어러웠어요. 랩은 흉내라도 내겠는데, 춤은 선이 참 안 살더라고요. 제가 하면 자꾸 체조 같아지는 게 참…"

엄태구는 랩보다 어려운 게 춤이었고, 춤보다 어려운 게 구상구의 높은 텐션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구상구는 무대에 설 때 짜릿함을 잊지 못하는 인물. 구상구가 무대에 서는 걸 정말 즐거워 한다는 걸 그의 에너지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건 연기이긴 하지만 제가 무대를 즐기지 못하면 상구의 텐션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엄태구는 무대 위에서 정말이지 놀고 싶었다. 자유롭게. "4~5살 때 팬티만 입고 춤추고 그러잖아요. 그 모습을 떠올린 겁니다."

"귀여운 느낌으로 가자는 건 현장에서 결정 됐습니다. 그런 표정은 미리 준비한 게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귀여운 표정을 무대 위에서 그저 쏟아낸 거죠. 물론 그런 표정들을 짓기 전에 저만의 다짐이 있긴 했어요. '귀엽지 않으면 차라리 죽겠다'라는 거였죠.(웃음)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귀여운 척을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해요."

엄태구는 여전히 연기가 고통스럽다고 했다. "정말 너무 어려워요. 어제 제가 다른 작품 촬영을 했는데, 다소 간단한 장면이라서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날부터 또 큰 부담이 느껴지는 겁니다. 어떻게 쉬운 장면이 단 하나도 없을까요."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데도 계속하는 건 연기가 잘 됐을 때 기쁨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거 하나 보고 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와일드 씽'에서 온갖 걸 했고, 죽기살기로 귀여운 표정까지 지어봤지만 그렇다고 타고난 성격이 변할 리 없다. 엄태구는 이번 작품에서 2016년 '가려진 시간' 이후 강동원과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당시 엄태구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강동원과 친해지지 못해 전화번호를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했다. '와일들 씽'을 할 땐 번호도 받았고 그때보다 가까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강동원이 어렵다고 했다. "워낙 대선배님이셔서요." 엄태구는 강동원에게 처음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한 시간을 썼다 지웠다고 했다. "잘 부탁드린다, 뭐 그런 얘길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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