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전쟁영웅에 김광수 육군 대위·밴 플리트 미 육군 대장 부자
[서울=뉴시스] 옥승욱 기자 = 국가보훈부는 3·1운동을 계승한 전국적 만세운동인 6·10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박하균, 강달룡, 박내홍 선생을 6월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3·1운동 이후 다시 전개된 대규모 항일독립운동인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의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났다. 순종의 승하는 식민지 현실에 대한 울분과 독립의 열망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사회주의계·민족주의계·천도교·학생계가 연합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그러나 격문이 사전에 발각돼 주요 인사들이 체포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독자적으로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배포하며 시위를 이어갔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비록 전국적 봉기로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6·10만세운동은 1920년대 항일민족운동의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다.
박하균(1902년~미상) 선생은 1919년 함흥과 홍원의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서 활동하며 6·10만세운동 준비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격문과 태극기를 제작·배포하고 시위를 이끌어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강달룡(1888년~1940년) 선생은 진주 3·1운동을 주도해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에도 노동·농민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조선공산당 책임 비서로 활동하며 천도교, 민족주의 세력과 협력해 6·10만세운동을 준비했다.
박내홍(1894년~1928년) 선생은 천도교 청년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다. 천도교청년동맹 대표위원으로서 6·10만세운동 준비 과정에서 격문 인쇄와 지방 연락을 담당하며 전국적 봉기를 계획하고 준비했다.
정부는 애국지사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박하균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강달룡, 박내홍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김광수 대위는 1953년 3월 제9사단 제30연대 제11중대 선임 장교로 강원도 김화지역 북진능선 방어 임무를 수행했다. 같은해 6월 중공군이 제9사단이 담당하던 중부전선에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을 당시 김 대위는 중부전선 오성산 근처 북진능선의 K고지를 방어했다.
수적 열세에 중대 주진지가 적에게 점령되는 위기에 처했지만 김 대위 지휘하에 K고지를 다시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적 수류탄에 중상을 입고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1계급 특진(당시 계급 중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밴 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11일 미8군 사령관으로 임명돼 6·25전쟁에 참전했다. 한국 도착 후 승산이 없으니 동경으로 철수해야 한다는 참모의 건의에도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북상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장군의 아들 밴 플리트 2세 대위도 6·25전쟁에 자원해 B-26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1952년 4월 4일 서해 연안해주 인근에서 폭격 임무 중 실종됐다.
장군은 전쟁 중인 1951년 10월,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로 다시 개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3년 2월 제8군 사령관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돌아간 뒤 1957년 한·미 우호 증진을 위한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설립하는 등 한·미동맹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오늘날 한·미 동맹 기여자에게 장군의 이름을 딴 '밴플리트상'이 수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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