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황도 비슷한데…BIS "고부채, 물가상승 대응 발목"

기사등록 2026/05/31 10:30:00 최종수정 2026/05/31 10:42:24

BIS 보고서 "국가채무 늘수록 금리인상 비용 확대"

작년 韓 국가채무 1304.5조원…사상 첫 1300조원대

명목성장률 10% 전망 속 물가 압력 확대 우려도

"높은 공공부채, 중앙은행 물가 대응력 약화시켜"

[서울=뉴시스]
[세종=뉴시스]박광온 기자 = 국가채무가 늘어날수록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여력이 줄어들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구조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는 국제결제은행(BIS)의 분석이 나왔다.

최근 정부가 경기 회복과 성장률 제고를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채무 증가가 향후 물가 안정 정책의 새로운 제약 요인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BIS는 지난 2월 이런 내용을 담은 '재정여력 축소의 위험성(The Perils of Narrowing Fiscal Spaces)'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한노 카세 유럽중앙은행(ECB) 선임 경제학자, 레오나르도 멜로시 유럽대학연구원(EUI) 경제학과 교수, 세바스티안 라스트 네덜란드 중앙은행(DNB) 연구 경제학자, 마티아스 로트너 BIS 경제학자 등이 공동 집필했다.

보고서는 국가채무가 늘어날수록 금리 인상에 따른 정부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고 분석했다.

물가 상승에 대응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경우 정부의 국채 이자비용도 함께 증가하게 되는데, 채무 규모가 클수록 재정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2025 회계연도 미국 연방정부의 순이자지출은 1조 달러에 육박했으며 전체 연방정부 세입의 약 20%를 차지했다. 이는 국방비 지출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연구진은 이를 국가채무 증가가 통화정책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국가채무가 높은 상황에서는 금리 인상이 정부의 이자지출을 크게 늘리게 된다"며 "재정 부담이 커질수록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 압박은 약해지고 물가 안정화 정책의 효과도 제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를 '재정제약(fiscal constraint)'으로 설명했다.

국가채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더라도 정부의 이자비용 증가와 성장 둔화로 국가채무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결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에 필요한 수준만큼 금리를 올리지 못하게 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남게 된다는 논리다.

보고서는 재정제약 위험이 존재하는 경우 물가상승률이 중앙은행 목표 수준보다 약 0.1%포인트(p)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재정여력이 추가로 축소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은 약 0.4%포인트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같은 분석은 최근 국가채무 증가와 물가 상승 압력 확대,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과도 맞물린다.
[서울=뉴시스] 6일 국가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더한 국가채무는 1304조5000억원으로 전년(1175조원) 대비 129조4000억원 증가했다. 국가채무가 1300조원을 돌파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49.0%로, 우리 경제 규모 대비 국가채무가 절반 수준까지 늘어났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정부의 '2025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채무(D1)는 1304조5000억원으로 사상 처음 1300조원을 넘어섰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9.0%로 전년(46.0%)보다 3.0%포인트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추가경정예산(추경) 영향으로 국가채무비율이 50.6%까지 상승해 사상 처음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 명목성장률이 10%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정부 전망이 제시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 확대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실질 성장률을 2.5~3.0%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상 명목성장률이 10%에 육박하기 위해서는 GDP 디플레이터(물가) 상승률이 약 6.5~7.0% 수준까지 올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GDP 디플레이터 평균 상승률이 2.8%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 압력이 최근 평균보다 약 2.5배 높은 수준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물가가 오르면 한국은행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실제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하면서도 연내 추가 긴축 가능성을 열어뒀다.

당시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성장세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바로 이런 상황을 BIS는 '재정제약' 위험으로 설명한다.

국가채무가 많을수록 금리 인상에 따른 정부의 이자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이로 인해 통화당국의 물가 대응 여력이 제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보고서는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경우 물가 상승 기대가 높아지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주체들이 "중앙은행이 높은 국가채무 때문에 충분한 금리 인상에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면 이러한 기대가 현재 물가에 반영돼 실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특히 국제유가 급등이나 공급망 차질 같은 공급충격 국면에서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고물가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통상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해 물가를 억제해야 하지만 국가채무가 많을수록 금리 인상에 따른 재정 부담도 커지게 된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이 충분한 긴축에 나서지 못하면서 물가 상승세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재정제약이 중앙은행의 긴축 강도를 약화시켜 물가 상승 압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높은 공공부채는 단순한 재정 문제가 아니라 통화정책의 유효성과 물가 안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고부채 환경에서는 재정여력을 유지하는 것이 물가 안정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 구윤철(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와의 조찬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04.23. myj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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