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문화연구소 "조세이 탄광 희생자는 강제징용됐다"

기사등록 2026/05/27 10:44:36 최종수정 2026/05/27 12:08:25

'집단 도항 선인 유부 기록'(集團 渡航 鮮人 有夫 記錄) 입수 확인

[울산=뉴시스] 일제강점기인 소화 15년(1940년) 4월 조선인을 집단으로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기록한 조세이 탄광 문서. (사진=한일문화연구소 제공) 2026.05.2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울산=뉴시스] 조현철 기자 = 한일문화연구소는 27일 "일제강점기 조선인 136명 등이 수몰된 '조세이(長生) 탄광' 희생자는 자발적 돈벌이 때문이 아닌 강제징용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모든 조선인 희생자에 대한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7일 한일문화연구소 김문길 소장(부산외대 명예교수)이 최근 입수한 일본의 '집단 도항 선인 유부 기록'(集團 渡航 鮮人 有夫 記錄)을 보면 소화 15년 4월(1940년) 집단으로 끌려와 조세이 탄광에서 강제노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는 1942년 2월 5일 오전 8시 일본 야마구치(山口県)현 오베(宇部)시 해안에서 1㎞ 떨어진 조세이 탄광 해저 지하 갱도에서 일어나 183명이 사망했다. 이 중 136명(총 308명)이 조선인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조세이 탄광 조선인 희생자에 대해 전원 강제징용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강제징용자는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15일 이전까지 온 사람만 인정한다. 즉 조세이 탄광 조선인 희생자는 1939년 7월 28일 조선인 동원령, 즉 자유의지의 '관알선'으로 들어간 사람이라는 것이다.

40여 년 전부터 유족 찾기에 나선 김문길 소장은 "강제성이 없다면 왜 도망자가 많았겠는가. 도망 못 가도록 탄광 주변에 철조망을 4m 높이 설치했고 숙소는 감옥과 같았다. 주로 바다로 헤엄쳐서 도망가다가 죽은 자가 많았다“고 바다로 탈출한 경북 영덕 출신 추모씨가 전해줬다고 한다.

김문길 소장은 "강제 동원이 아니라고 어깃장을 놓는 일본 정부는 이번에 찾아낸 집단 도항 선인 유부 기록을 파악해 향후 유족 배상 등 책임 있는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일문화연구소에 따르면 2001부터 2005년까지 부산에 있는 대한불교 법연원 사찰 주지 조연 스님은 100여명의 신자와 함께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현장을 방문해 천도재를 올리고 유골 수습 작업을 벌였다. 유골은 1구도 수습하지 못했지만 바다 밑 탄광의 구조와 바닷물이 들어온 원인을 조사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는 올해 2월 13일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감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안동 답방 때도 재차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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