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 커뮤니티 '놀이 문화' 무차별 노출
역사적 비극 조롱부터 특정 집단 비하까지 번져
전문가 "법·제도적 규제 공백과 플랫폼 방조가 악순환 키워"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김여림 인턴기자, 안태현 인턴기자 =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을 계기로 온라인 혐오 표현이 공적 영역으로 반복 침투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유사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규제할 법적 장치나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가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26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기업 홍보물이나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특정 집단을 비하하거나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는 문구·상징이 노출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사례가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탱크데이' 이벤트를 진행했다. 탱크 모양 텀블러 구매 고객에게 음료를 증정하는 행사였다. 행사명인 '탱크데이'와 함께 '책상에 탁' 등의 문구가 사용됐는데, 이를 본 일부 온라인 이용자들은 5·18 당시 계엄군의 탱크 투입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며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9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세 차례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날 진상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부사장은 "해당 임직원이 고의성을 갖고 마케팅을 기획한 사실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행사 결재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없었으며 첨부파일을 열지 않고 결재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했다. 신세계그룹 측은 이날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해당 임직원이 고의성을 갖고 마케팅을 기획한 사실을 입증할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일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일베처럼 조롱·혐오를 방치 및 조장하는 사이트의 폐쇄·징벌적 손해배상·과징금 등 필요한 조치를 엄격한 조건 아래 허용하는 데 대한 공론화와 실제 검토가 필요하다"며 "국무회의에도 지시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혐오 표현의 공적 영역 침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정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내부에서 '놀이 문화'처럼 쓰이던 문구와 상징이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 매체와 홍보물에 노출돼 파장을 일으킨 사례는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2019년 고(故) 박종철 열사와 6월 민주항쟁을 연상시키는 문구를 광고에 사용해 논란이 됐던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최근 재차 사과했다. 지난 11일에는 롯데 자이언츠 구단 유튜브 채널 '자이언츠 티비'가 10일 KIA전 경기 영상에서 노진혁 선수 등판에 '무한 박수'라는 자막을 넣어 '노무한 박수'로 읽히게 하는 방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노무현재단 이사인 조수진 변호사가 지난 23일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7주기 추도식에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이용자로 추정되는 방문객이 찾아와 조롱성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혐오표현 처벌법 제정도 촉구했다.
조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추도식을 마치고 보고 받은 심각한 내용”이라며 “‘일베’(일간베스트)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봉하마을 기념관에 들어와서 곳곳에서 ‘일베’ 티셔츠를 입은 채로 (‘일베’를) 상징하는 손가락 표시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2021년 GS25, 2023년 넥슨, 2024년 르노코리아 홍보물에는 극단적 여성주의 진영에서 남성을 조롱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집게손' 동작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2015년에는 청와대 폭파 협박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강모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법원으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를 뜻하는 손동작과 유사한 제스처를 취해 논란이 일었다.
경찰도 수사에 나섰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2일 정용진 회장과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고발한 서민민생대책위원회 관계자를 불러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경찰청은 5·18 민주화운동법 등을 위반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37개 SNS 계정에 대해 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 광주경찰청은 인공지능(AI)으로 제작한 '5·18, 북에서 지령받은 간첩들'이란 제목의 신문기사 형태 허위게시물을 유포한 50대 여성을 검거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사회적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당사자들이 사과하고 진상조사에 나서지만 유사 사례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 원인으로 제도적 공백을 꼽는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전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혐오 발언을 제재하는 법제도 변화가 따라왔는데 한국은 그런 변화가 없었다"며 "제거되지 않은 채 극우적 놀이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불평등 심화와 민주주의 발전 단계 미완성도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극우가 나설 수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에 더해 한국은 극단적 반공주의 영향도 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 플랫폼의 방조와 사회적 대응 실패가 악순환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혐오에 대한 법적·정책적·시민사회적 대응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혐오 표현은 형법상으로 규제해야 하는 범죄 행위임에도 일베 같은 사이트를 사회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심리학적으로는 군중심리와 몰개인화가 혐오 확산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군중심리로 몰개인화가 일어나면 개인이 사라지고 자기 생각보다 과격해진다"며 "누군가를 비난할 때 우월감이 생기고 집단에 소속되면서 같은 생각이 옳다는 믿음이 커져 만족감이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또 곽 교수는 "소속 집단에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더 과한 발언으로 이어지고, 조회수가 오르면서 과시욕구까지 채워지는 구조"라며 "심한 말이 오히려 더 과장되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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