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文 정부 때도 국민청원 계기 검토했으나 '법리적 한계'에 무산
즉각적 행정 처분보다 '혐오 플랫폼 규제' 입법화 공론의 장 포석도
"플랫폼 침묵 죄과" 여당 사격…야당 "표현 자유 침해"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 조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일베가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혐오·조롱 콘텐츠를 방치하고 조장하고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법조계 의견은 다르다. 현행법과 기존 법원 판례를 따져보면 혐오 표현을 이유로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강제로 문 닫게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즉각적인 행정 처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혐오 표현을 규제하고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이른바 '혐오 콘텐츠 규제법' 입법을 위한 국민 공론의 장을 직접 열었다는 해석이다.
◆李 대통령"혐오 방치 사이트 폐쇄 검토"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일 오전 자신의 X(구 트위터)를 통해 "엄격한 조건 하에 조롱·혐오표현에 대한 처벌과 징벌배상, 일간베스트저장소처럼 조롱·혐오를 방치 조장하는 사이트 폐쇄, 과징금 등 필요조치를 허용하는 것에 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과거에도 제기됐던 일베 폐쇄 논란을 직접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도 검토를 지시하겠다"라며 국민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이번 발언은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7주기 추도식 논란이 발단이 됐다. 당시 일베 이용자로 추정되는 인물들이 조롱성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이 확산했다. 대통령이 특정 온라인 플랫폼의 폐쇄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행정부 차원의 대응을 지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체 게시물 70% 불법' 입증 책임 장벽…과거 文 정부 때도 폐쇄 시도 불발
온라인 커뮤니티 폐쇄를 둘러싼 법리적 공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일베 폐쇄 요구 청원이 올라왔다. 한 달 만에 23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서 정부 차원의 공식 검토가 이뤄졌다.
하지만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법률적 한계로 제재 방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현행 정보통신망법 체계에 따르면 특정 인터넷 사이트 전체를 전면 차단하거나 폐쇄하기는 매우 어렵다. 까다로운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2018년 당시 정부는 사이트 폐쇄 기준으로 '해당 플랫폼 게시물 중 70% 이상이 명백한 불법 정보일 것'을 제시한 바 있다.
음란물이나 도박, 마약 유통만을 목적으로 개설된 불법 사이트들은 폐쇄가 쉽다. 반면 일베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일상 글이나 유머 게시물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불법 정보 비중 70%'라는 기준을 증명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사이트 폐쇄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 악성 게시물 때문에 사이트 전체를 없애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대법원 판례 역시 사이트 개설 목적이 오직 불법 정보 유통에 있을 때만 전체 사이트 차단을 인정하고 있다.
◆플랫폼 책임 강화하는 '혐오 규제법' 입법 군불 떼기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엄격한 조건 하의 처벌과 사이트 폐쇄'를 현실화하려면 현행 법 개정이나 특별법 제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발언은 입법 공론화를 위한 '군불 떼기'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현행법상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특정 개인을 대상으로 해야 처벌할 수 있다. 참사 유가족이나 특정 지역을 겨냥한 혐오 표현을 규제하려면 '불법 정보'의 정의를 법적으로 넓혀야 한다.
징벌적 배상과 과징금 제재를 위해서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 7월 시행을 앞둔 정보통신망 개정안에는 '허위조작 정보'에 대한 손해배상을 규정했을 뿐이다.
법조계에서는 정부와 국회가 단순히 특정 사이트 하나를 타깃으로 삼기보다는 인터넷 생태계 전반의 플랫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특히 기존의 70% 불법 정보 규정이나 대법원의 개설 목적 판례를 우회하는 방식도 거론된다. '혐오 표현 유통 방지 의무 불이행 시 제재'와 같은 새로운 법적 의무를 플랫폼 사업자에게 부과하는 방안이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여당은 즉각적인 입법 지원 사격에 나서며 정치권의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주희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SNS 게시와 같은 날인 24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혐오를 표현의 자유로 둔갑하는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혐오 표현 규제 입법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마주해야 할 과제"라며 "지난 십수년간 우리 사회에 혐오가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그 자양분은 혐오를 수익으로 환산해 온 온라인 플랫폼들의 침묵"이라고 꼬집었다.
헌법적 기준과 엄격한 요건을 전제로 하되, 혐오 콘텐츠를 고의로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플랫폼 사업자에게 강력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나아가 사이트 폐쇄 조치까지 내릴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겠다는 게 여당의 구상으로 보인다.
조롱과 혐오 표현을 직접 유포한 자에 대한 형사 처벌과 민사상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포함한 입법적 대안을 폭넓게 검토하겠다고도 천명했다. 6·3 지방선거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은 조승래 사무총장 역시 국회 간담회에서 "상습적으로 구조적인 혐오를 부추기는 사이트에 대해서는 폐쇄까지 검토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행정 권력을 동원한 표현의 자유 침해이자 국가 폭력"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법조계에선 규제의 칼날이 자칫 정치 권력의 표현 검열 수단으로 변질되거나 정상적인 비판, 사회적 풍자까지 위축시키지 않도록 입법 과정에서 세부적인 통제 장치를 정밀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교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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