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포구 김정 목사 비석, 30여 년 만에 비문 소멸
해풍·마모·관리 부재 등으로 비석 유산 훼손 가속
이장 증가로 일반 묘비 매립·방치…"기록화·보존체계 시급"
글자만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난 26일 제주대학교 대학원 출신 연구모임 ‘지평’ 회원들이 현장을 답사했을 때 비석은 손으로 조금만 힘을 줘도 표면이 모래처럼 부서질 만큼 심하게 풍화됐다.
김정은 조선 후기 제주와 육지를 잇는 관문이었던 화북포 축항에 힘쓴 인물이다. 스스로 돌을 져 나르며 공사를 감독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는 화북포구 객사에서 숨졌고 포구에는 그의 치적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졌다. 1991년 발행된 '화북동향토지'에는 ‘김공정봉공비’라는 한자 비문이 어느 정도 확인됐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비문은 거의 사라졌다.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각을 둘렀으나 비문은 해풍을 맞으며 녹아내렸다. 염분과 습기를 견디지 못하고 닳아 없어진 것이다. 염분은 석재의 미세한 틈으로 스며든다. 이후 젖음과 마름이 반복되면 돌 표면이 약해지고 글자를 새긴 부분부터 흐려진다. 바닷가의 오래된 비석에서 글자가 먼저 지워지는 이유다.
지평의 한 회원은 "비석의 글자가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표면 손상이 아니라 기록의 소멸이다"며 "비문이 사라지면 그 비석이 누구를 위해 세워졌는지, 어떤 시대를 증언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비석은 제주 곳곳의 오래된 비석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해안에 세워진 비석은 바닷바람과 염분에 노출되고 있으며 '화북 비석거리'처럼 마을 어귀나 묘역에 세워진 비석은 관리 부재 속에 마모되고 있다.
제주에는 목민관 관련 비석 148기를 비롯해 유허비, 마애명, 묘비 등 다양한 금석문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제주목사와 판관, 현감의 공적을 기리는 비석도 있고 효자·열녀를 기리는 정려비도 있다. 마을의 형성과 가문의 정착을 보여주는 묘비도 많다.
제주문화원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제주금석문집' 5권을 발간하며 개인 묘비 등 414기에 대해 탁본 촬영을 하고 비문을 판독했다.
최근에는 묘 이장이 늘어나면서 일반 묘비가 파묻히거나 방치되는 일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 돌들이 단순한 장식물이나 묘의 부속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석에는 한 사람의 이름과 생몰연대, 관직, 본관, 가족관계, 마을 이름, 옛 지명, 공적, 시대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비석은 한 개인의 죽음을 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 시대와 지역을 증언하는 사료가 된다.
제주 묘비의 자료가치는 오래됐는지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근대 초기 묘비라도 마을 형성사, 이주사, 교육사, 관직사, 여성사, 장묘문화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 조선 후기나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의 묘비는 제주 사회의 변동을 읽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장 현장에서 묘비의 기록 여부를 의무화하거나 보존 가치 판단을 지원하는 체계는 없다. 묘는 정리되지만 묘비는 전해지지 않고 묻히고 있다. 이는 제주 비석 문화유산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비석은 침묵하는 돌이 아니다. 이름과 장소, 시대의 흔적을 품은 기록물이다. 해풍에 닳고 이장 과정에서 묻히기 전에 제주 비석 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기록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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