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또 뛸 판인데…UAE는 OPEC 탈퇴, 60년 원유질서 흔들

기사등록 2026/04/30 08:37:09 최종수정 2026/04/30 08:48:25

UAE, 사우디 주도 OPEC 탈퇴 선언…쿼터 벗어나 독자 생산 확대 길 열어

[서울=뉴시스]아랍에미리트(UAE) 국영 석유회사 아드녹이 소유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무바라즈호. 이 선박이 최근 이란 전쟁 발발 이래 처음으로 LNG를 가득 실은 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출처=vesselfinder) 2026.429.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영환 기자 =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세계 원유시장의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중동산 원유가 자유롭게 바다를 건너던 시대가 흔들리고, 산유국은 시장 점유율을, 수입국은 에너지 안보를 앞세우는 ‘각자도생’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는 28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해온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원유시장 안정과 산유국 간 생산 조율을 맡아온 OPEC에 적지 않은 타격이다. UAE는 앞으로 산유량 쿼터에 묶이지 않고 독자 행보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결정은 이란 전쟁으로 이미 흔들리던 원유시장에 또 하나의 균열을 냈다. WSJ은 세계 원유시장이 경제적 효율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구조에서 정치와 안보, 분쟁이 가격과 공급을 좌우하는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고 짚었다.

가장 큰 불안 요인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닫으면서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수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여기에 미국도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막는 해상 봉쇄를 강화하면서 유조선 통행량은 급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을 포함한 최근 회의에서도 이란 경제와 원유 수출을 계속 압박하는 방침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산유국이지만,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을 국내 생산만으로 묶어둘 수는 없다. 미국은 원유를 많이 생산하면서도 필요한 유종을 수입하고, 정유사들도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원유를 조달한다. 원유가 사실상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만큼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같은 충격이 생기면 미국산 원유 가격과 주유소 휘발유값도 함께 흔들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고유가 상황이 미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내놨다. 세계 각국이 미국산 원유와 가스를 더 많이 사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엑손모빌과 셰브런 등 미국 에너지 기업들에 생산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앞두고 휘발유값을 낮춰야 하는 것과 별개로, 미국 석유회사들은 전쟁발 고유가가 얼마나 오래갈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증산 투자에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있다.

다만 OPEC 쿼터에서 벗어나는 UAE는 시장 상황에 따라 원유 공급을 늘릴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UAE의 증산은 단기적으로 유가 급등을 누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공급량 자체만이 아니다. OPEC의 생산 조율 기능이 약해지고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 리스크가 커지면, 원유시장은 가격 안정 대신 산유국별 각자도생과 급등락이 반복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

UAE 에너지·인프라부는 수요와 시장 여건에 맞춰 책임 있고 점진적으로 추가 생산분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의구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한 분석기관은 UAE의 이탈이 원유시장의 “몇 안 남은 충격 흡수 장치”를 없앤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산유국들도 움직이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올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축출 이후 장기간 침체됐던 원유 생산을 늘리기 시작했다. 가이아나, 브라질, 캐나다 등 비OPEC 산유국들도 경제성장을 위해 원유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산유국들이 가격 안정보다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서면 OPEC의 조율 기능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수입국들도 급해졌다. 유럽과 아시아 주요 원유 수입국들은 중동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원전·재생에너지 등 자국 내 대체 에너지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서두르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비축유 방출로 가격 상승을 누르려 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준 유가는 27일 배럴당 111달러를 넘어섰다.

WSJ은 이란 전쟁이 단순한 중동 분쟁을 넘어 1970년대 이후 OPEC의 생산 조율, 전략비축유, 선물시장,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 통행을 축으로 돌아가던 세계 에너지 질서 자체를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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