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체 재프로그래밍'으로 성과 속속
"인간 수명 150살" 주장 하버드 생명공학자
인간 녹내장 환자들 대상 임상 실험 시작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엄마가 가진 난자는 태어날 때부터 품어온 것이다. 아빠가 가진 정자는 난자만큼 오래되진 않았어도 만들어진 지 몇 달은 된 것이다. 세포 수준에서 이처럼 나이를 먹은 난자와 정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수정란도 노화의 징후를 보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신비로운 변신이 시작된다. 수정란의 세포들이 부모가 DNA에 쌓아온 노화의 흔적을 털어내면서 2주 만에 젊음의 원점으로 돌아간다. 아기가 젊게 태어나는 비결인 ‘세포 회춘’의 과정이다.
세포 회춘을 완전히 이해하면 수명을 연장하고 수백 가지 질병을 치료하고 노화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과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회춘은 장수 연구에서 가장 새롭고 가장 유망한 분야다. 이 분야는 1993년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의 한 과학자가 단 하나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회충의 수명을 2배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세포 회춘' 규정 뒤 장수 연구 폭발적 증가
그 이후 장수 연구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을 쏟아내는 장수 산업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펩타이드, 보충제, 레이저 치료, 전기 치료복, 콜라겐 파우더, 냉동 요법, 혈액 주입 등 노화를 늦춘다고 주장하는 장수 산업 시장이 20조 달러(약 2경9500조 원)로 커졌다.
피터 틸, 래리 엘리슨, 샘 올트먼 등 전 세계 최고 부호 남성들이 장수 산업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제프 베이조스와 투자자 유리 밀너가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밀스러운 생명공학 기업 알토스 랩스(Altos Labs)는 2022년 창립 당시 30억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한 최대 규모의 생명공학 스타트업이다.
알토스의 회춘 연구를 이끄는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생명공학자 후안 카를로스 이스피수아 벨몬테다.
그는 2016년 유전적으로 병든 쥐를 회춘시켜 수명을 30% 연장하는 부분적 후성유전체 재프로그래밍이라는 방법을 발표했다.
후성유전체 분자들은 세포에게 심장, 폐, 피부 세포 중 무엇이 될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DNA 자체는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만, 이 후성유전체 분자들은 햇빛, 음식, 스트레스, 심지어 외로움 등 세상과의 접촉에 따라 변한다.
◆후성유전체 DNA와 분리 때 노화 발생
시간이 지나면서 후성유전체 분자들 일부가 잘못된 자리에 붙기 시작하고 DNA와의 긴밀한 연결을 잃어 세포가 지시를 읽기 어렵게 만든다. 한 이론에 따르면, 그럴 때 노화가 찾아오고 건강이 나빠진다.
후성유전체 표지를 재설정하는 방법은 2006년 야마나카 신야라는 일본 과학자가 초기 배아 발달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4개의 특이한 유전자(Yamanaka factors)를 발견한 일에서 출발한다.
신야는 이 유전자들을 배양 접시에서 나이 든 쥐의 피부 세포에 주입한 뒤 관찰했다. 2주에 걸쳐 피부 세포들은 배아 줄기세포에 가까운 것으로 변형됐다-마치 유아기를 향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 발견으로 신야는 2012년 노벨상을 받았지만 이 유전자들이 장수 연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엔 어려웠다. 야마나카 인자들을 인간에 적용하는 것이 크게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야마나카 인자로 쥐를 치료하려는 첫 번째 시도는 생물학적 재앙으로 끝났다. 2012년 스페인의 한 암 연구소 실험에서 세포들이 통제 불능으로 분열하면서 쥐의 장기들이 기능을 잃었다.
30년 동안 배아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조직과 장기가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해온 이스피수아 벨몬테는 회춘 과정을 정밀하게 조율하는 방법을 찾는데 집중했다.
이스피수아 벨몬테의 접근법은 쥐를 야마나카 인자에 간헐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이틀은 투여하고 닷새는 중단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늙은 쥐들 젊은 쥐로 변신
치료가 끝날 무렵 쥐들의 모습이 너무나 극적으로 달라져 일부 연구실 기사들은 쥐가 교체된 줄 알았다. 늙고 허약했던 쥐들이 활기를 찾았고, 털이 더 풍성하고 짙어졌으며, 심장도 더 강해졌다.
이스피수아 몬테는 2016년 셀지에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발표를 계기로 회춘 과정을 활용하려는 생명공학 기업들이 속속 생겨났다. 그중 이스피수아 벨몬테와 그의 연구팀 대부분을 흡수한 알토스가 가장 큰 기업이다.
젊은 세포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손상을 수리하면서 정상적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수리 모드에 들어간 세포는 마치 벽에 시멘트를 바르듯 세포의 구조를 보강한다.
이스피수아 벨몬테의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서 세포가 후성유전체 지시를 읽지 못하고 수리 모드에 갇혀 정상적인 기능을 재개하지 못한다. 시멘트가 겹겹이 쌓이면서 세포가 섬유화되면 해로운 수리 시도만 반복하는 것이다.
이스피수아 벨몬테는 이 과정이 우리가 노화하고 죽는 원인이라고 믿는다.
알토스는 나이 들면서 가장 먼저 기능이 저하되는 신장, 심장, 간에서의 회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알토스의 막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회춘을 가장 멀리 밀어붙인 연구실은 데이비드 싱클레어가 운영하는 하버드 연구실이다.
싱클레어는 2019년 출간한 베스트셀러 '라이프스팬: 우리는 왜 늙고 왜 늙지 않아도 되는가(Lifespan: Why We Age and Why We Don't Have To)'에서 사람이 150세까지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싱클레어는 노화가 후성유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세포가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워질 때 일어난다는 이스피수아 벨몬테의 주장을 옹호해왔다.
싱클레어의 연구팀은 4개의 야마나카 인자 중 암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하나를 빼는 실험을 진행했다. 나머지 3개의 인자를 눈을 멀게 만든 쥐의 시신경 세포에 적용하는 실험 결과 쥐들이 시력을 되찾았다.
이후 영장류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도 성공한 싱클레어의 연구팀은 지난달 녹내장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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