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마지막 주말, K-팝 40만 팬 닛산스타디움·국립경기장·도쿄돔에 운집
'오시카쓰 문화', K-팝 아이돌과 만나 시너지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 수도권 뿐 아니라 日 전역에 분포
"韓 공연장 정책 참고할 지점"
K-팝 2세대 '동방신기', 3세대 '트와이스', 4세대 '에스파'가 25~26일 양일간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 국립경기장, 도쿄돔을 각각 점령하며 전대미문의 '슈퍼 위크엔드'를 완성했다. 이들이 각각 이틀 동안 동원한 관객수는 약 13만, 약 16만, 약 9만4000명에 달한다. 여기에 K-팝 대표 밴드 '데이식스'는 같은 기간 도쿄 게이오 아레나 무대(양일간 약 2만명)에 올랐으니, 이틀 동안 일본 심장부에 모인 K팝 팬만 단순 산술적으로 40만 명에 달한다. 2001년 '아시아의 별' 보아(BoA)가 일본에 데뷔한 이래, 약 25년에 걸쳐 축적된 K-팝의 저력이 확인된 셈이다.
28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작년 11월 ''오시카쓰(推し活)'가 소비 활성화의 열쇠가 될 것인가? 라이브·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활기를 살펴보다'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지 라이브·엔터테인먼트 시장의 활성화에 K-팝 아이돌과 이들의 팬들이 크게 기여했다.
◆'오시카쓰 문화'가 K-팝 아이돌과 만나 시너지
오시카쓰는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아이돌 등을 응원하는 활동을 가리킨다. 자신만 만족하는 덕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전광판 광고처럼 고액 소비를 포함 자신의 최애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는 활동이 동반돼 경제 효과를 유발한다. 특히 일본 현지에선 K-팝 아이돌을 응원하는 활동과 연관돼 자주 사용되고 있다. 고물가 흐름에 콘서트 티켓 가격이 높아져도 오시카쓰 시장은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양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해당 발표가 인용한 사단법인 콘서트 프로모터스 협회 '라이브 시장 조사'에 따르면, 2024년 라이브 총 동원 인원은 약 5940만 명, 총 매출액은 약 6122억 엔(약 5조 6621억)으로 모두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총 매출액은 67.0%나 증가, 코로나 사태 이전의 규모를 크게 뛰어넘어 성장 중이다.
일본 피아 종합연구소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시장 동향 조사'는 이러한 지속적인 상승의 배경으로 오시카쓰, 체험형 소비 정착 등을 꼽았다. 티켓 단가가 상승하는 추세 속에서도 팬들이 라이브라는 '특별한 시간'에 본질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라고 일본 경제산업성은 풀이했다.
특히 2024년 일본 내 해외 아티스트의 공연 총 매출액은 1335억 엔(1조 2345억)으로, 그 해 전체 일본 라이브의 21.8%를 차지했다. 동원 인원은 926만9000 명에 달해 2019년 대비 53.5% 증가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또한 "일본은행의 국제수지통계에서도 한국의 개인·문화·오락 서비스 수취 및 지급이 모두 증가 추세에 있어 한국과의 활발한 거래가 확인된다"면서 "이는 한국 정부가 콘텐츠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전개하며 콘텐츠 수출을 강화하고 있는 점도 주요한 배경"이라고 짚었다.
실제 한국 관세청 최신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5년 음반 수출액은 3억174만달러(약 4420억원)로 한국 음반 수출액이 3억달러를 처음 넘겼는데 수출액이 전년 대비 10.2% 감소하긴 했지만 일본은 K-팝 음반 최대 수출국 1위 지위를 유지했다. 올해 방탄소년단(BTS), 블래핑크 등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는 K-팝 대표 팀들이 완전체로 복귀했고 방탄소년단은 특히 최근 도쿄돔에서 공연한 만큼, 올해 K-팝이 일본 음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윤미 대중음악 저널리스트(한국대중음악상(한대음) 선정위원)는 "동방신기, 에스파, 트와이스 등 세대도 다르고 소속도 다른 K-팝 대표 그룹들이 같은 시기에 일본 초대형 공연장을 동시에 채운다는 것은 K-팝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면서 "2~4세대 K-팝 그룹들이 각기 다른 상징성을 지닌 공연장에서 이틀간 약 40만명의 관객을 모은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내 K-팝이 거대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본이 여전히 K-팝의 핵심 시장임을 방증한다"고 톺아봤다.
'들어볼래? J-팝(J-POP)!' 등을 펴낸 J-팝 전문가인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대음 선정위원)는 "닛산 스타디움, 국립경기장, 도쿄돔은 일본의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도 쉽게 서지 못하는, 5만 석 이상의 수용력을 지닌 장소들이다. 이런 무대에 한국 가수들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일본 음악시장에서 K-팝의 영향력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감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00년대 '한류' 시대를 주도한 동방신기, 2010년대에 데뷔한 트와이스, 그리고 2020년대를 이끄는 에스파까지. 근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며 이 정도의 콘텐츠 파워를 이어왔다는 점이야말로 지금의 상황이 지닌 가장 큰 의미"라고 특기했다.
4~5월에 K-팝 라이브가 집중되는 배경에는 일본의 계절적 소비 흐름이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황선혜 일본 조사이국제대 미디어학부 교수(전(前)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센터장)는 "일본은 4월에 신학기와 신생활이 시작되고,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골든위크(황금 연휴)가 이어져 공연 관람 수요가 높아지는 시기"라면서 "여기에 한국 아티스트들이 1~3월 컴백 후 4월부터 본격적인 월드투어·아시아투어에 나서는 흐름이 맞물린다. 세계 2위 음악시장과 안정적인 공연 인프라를 갖춘 일본은 대형 K-팝 공연이 집중되기 좋은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 수도권 뿐 아니라 日 전역에 분포…韓 공연장 정책 참고할 지점
국제음반산업협회(IFPI) 기준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의 탄탄한 하드웨어 인프라도 K-팝 아티스트들의 매머드급 공연이 동시다발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다. 심지어 같은 기간(24~26일) 일본의 국민 그룹 '아라시(ARASHI)'가 후쿠오카 미즈호 페이페이 돔에서 고별 투어를 진행했다.
일본은 홀(5000석)에서 시작해 아레나(1~2만 석), 돔(5만 석), 스타디움(7만 석 이상)으로 이어지는 촘촘한 계단식 공연장 생태계가 뒷받침된다. 4대돔, 5대돔 투어도 가능해 일본 내 자국에서만 수십만명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 그간 일본 아티스트들이 내수 시장에만 신경 써도 괜찮았던 이유다.
일본 경제산업성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한 공연장 형태는 아레나였다. 아레나는 2020년 이후 간토(도쿄·요코하마 등 일본 수도권이 포함된 관동 지역) 권역을 중심으로 여러 곳이 신설되어 가동 중이다. 프로 농구 경기 등의 장소로도 활용되는 등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폭넓게 포괄하고 있다. 일본 전역에 아레나 규모의 공연장만 약 30개에 달한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 겸 글로벌 K-센터장(한대음 선정위원)은 "일본은 대형공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5대 돔 외에도 1만명에서 3만명 사이 관객 수용이 가능한 아레나급 공연장도 많고, 그 외에도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면서 "또한 이런 공연장이 도쿄·수도권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는 일본 자국 가수 및 해외 가수의 대형 공연을 한꺼번에 유치할 수 있는 인프라로 기능한다"고 짚었다.
황선혜 교수는 "일본은 돔, 아레나, 홀, 라이브하우스 등 공연 규모와 성격에 맞는 인프라가 촘촘하게 구축돼 있다. 대도시뿐 아니라 지역에도 수천 명에서 수만 명 규모의 공연장이 있어, 대형 투어부터 팬미팅, 쇼케이스, 멤버 개인 이벤트까지 다양한 형태의 라이브를 소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도쿄돔을 운영 중인 일본 대형 부동산 기업 '미쓰이 부동산'은 쓰키지 시장 부지에 야구장 등으로 활용 가능한 신 돔구장 건설 계획을 추진 중이다. 도쿄돔을 홈구장으로 사용 중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2030년대 초반 완공 예정인 신 돔구장을 새로운 홈구장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만약 그럴 경우, 도쿄돔에선 대형 콘서트가 더 많이 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도쿄돔 주말 대관은 쉽지 않다. SM엔터테인먼트 재팬 김동우 대표는 "K-팝 신규 팀들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활동하던 팀들, 그리고 일본 밴드와 아이돌들까지 겹쳐 주말 대관을 잡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프로야구 등 스포츠 시즌이 맞물리면 더욱 힘들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이 최근 금토, 에스파가 이번에 토일을 대관한 것 자체가 이들 팀들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신 돔구장이 생기면 도쿄돔은 자연스레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더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일본의 하드웨어 인프라는, 강력한 소프트웨어인 K-팝 종주국임에도 제대로 된 전용 공연장이 현저히 부족한 국내 공연장 업계에 많은 화두를 던진다.
실제 오는 10월까지 대관이 꽉 차 있는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제외하고 한국 수도권에서 거리, 인프라 등을 고려해 꾸준히 공연할 수 있는 2만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이 드문 상황이다. 케이스포돔은 1만석 정도의 규모이고 1만8000석 수용이 가능한 고척돔은 야구 시즌엔 대관이 어렵다.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는 공연장 시설은 훌륭하지만 여전히 접근성에 불편함이 따르다. 카카오 등이 민간 사업자로 참여한 서울 창동의 '서울아레나'가 내년 상반기 중 개관할 예정이나 스타디움급 공연장은 여전히 부족하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잔디 문제로 여전히 대관이 까다롭고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은 리모델링을 거쳐 5년 간 야구장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당분간 K-팝 공연이 열리기 쉽지 않다. 팽창하는 K-팝 팬덤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어떤 인프라적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 이번 일본의 K-팝 '황금 주말'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김윤미 저널리스트는 "일본은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돔·스타디움 등 대형 공연장이 지역별로 분산돼 있어 대형 그룹들의 동시 다발 공연이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대형 공연장 수가 매우 제한적이고,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은 부재하다. 계속 제기돼온 문제지만 전문 공연 시설 확충과 기존 체육시설의 공연 활용도 제고 방안을 시급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규탁 교수도 "K-팝 뿐만 아니라 인디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 한국 역시 5만명 이상 급 대형 공연장 뿐만 아니라 1만~2만명 수용 가능한 아레나급 공연장, 그 외 중소형 공연장을 다양하게 확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미 음악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수익원은 공연을 바뀐 지 오래인데,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가 국내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차우진 대표는 "닛산·도쿄돔·국립경기장 3개 공연장이 동시에 돌아가는 구조, 이게 일본 인프라다. 4만석급 돔 5개, 1만석급 아레나 30여 개, 그 위에 7~8만석 스타디움까지 단계별로 갖춰져 있는데, 핵심은 시설 수가 아니라 위계"라면서 "작은 클럽부터 아레나·돔·스타디움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며, 내수 시장과 외부 투어를 감당한다. 한국 공연장의 정책 과제가 참고할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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