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제주는 고사리 철
향기롭고 다채로운 꽃들이 들판을 장식하는 4월, 제주에는 꽃보다 '이것'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달랑 줄기 하나만을 내놓고 하늘을 향해 꽂꽂이 서 있는 '고사리'다.
15일 오전 6시 제주 중산간에 위치한 오름에서 고사리 채취객들을 만나 봤다. 이 오름은 매년 봄바다 고사리 '포인트'로 알려진 곳이다. 햇빛이 어둑한 하늘을 밝힐 즈음 차량들이 갓길과 들판에 들어섰다. 홀로 오거나 2~3명씩 짝을 지어 온 채취객들이다.
◇고사리 채취 필수품 긴옷·장갑·장화·포대기에 '막대기' '휴대폰'
고사리는 제주도 전역에 분포해 있다. 특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 속이나 야생 들판에는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옛부터 제주에서는 '고사리가 많은 곳은 며느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는 사람만 안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각종 벌레와 뱀 등 야생동물과 수풀, 험난한 지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고사리 채취 시 긴 팔과 긴 바지는 필수 복장이다. 두꺼운 장갑이나 코팅장갑도 껴야 손이 다치지 않는다. 목이 긴 장화를 신으면 벌레와 진흙, 수풀로부터 발목과 종아리를 보호할 수 있다.
채취객 대부분 자외선 차단을 위해 챙이 있는 모자를 착용한다. 꺾은 고사리를 담을 망태기나 바구니도 필수품이다. 넉넉한 배터리가 충전된 휴대전화와 호루라기는 길 잃음 사고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사리 채취 경력이 5년이 넘었다는 '프로' 채취객은 막대기도 챙기면 좋다고 전했다.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왔다는 A(60대·여)씨는 "막대기로 나무 밑이나 수풀을 헤치면 고사리를 찾기 편하다.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큰 고사리를 찾을 수 있다. 균형감각도 잡아줘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고 말했다.
음식점에서 마주하는 고사리는 어두운 색을 띄고 있다. 이는 채취 이후 삶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변색된 것이다. 야생의 고사리는 일반 풀과 같이 초록색이다. 이 때문에 다른 식물과 헷갈릴 수 있다. 하지만 고사리가 유난히 잘 보이는 시간대와 상황이 있다.
고사리는 비가 내린 다음 날에 쑥쑥 자라난다고 한다. 제주에서는 4월 중순부터 하순, 길게 잡으면 3월 말부터 5월 초순까지를 '고사리 장마' 시기라고 일컫는다. 고사리철과 봄비가 맞물리면서다. 능숙한 고사리객은 비가 내린 다음 날 새벽부터 채취에 나서 질 좋은 고사리를 효율적으로 수확한다.
특히 비 날씨로 인해 습도가 높은 상황에서 해가 뜨기 직전이면 도톰한 고사리 줄기에 이슬이 송송 맺혀있는 걸 볼 수 있다. 햇빛이 이슬에 반사돼 수풀 사이에 있는 고사리가 유난히 빛나 보인다. 일출 시간대인 오전 6시를 전후해 고사리 채취에 나선다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양의 고사리를 꺾을 수 있다.
이날 지인들과 고사리를 꺾으러 온 B(60대·여)씨는 "지금 시기 고사리는 꺾으면 '똑' 소리가 나난다. 꺾을 때 너무 뿌리쪽으로 밑을 꺾으면 질길 수 있다"며 "크기가 너무 커도 좋지 않다. 특히 꽃이 펴버린 고사리는 꺾지 않는 게 좋다. 독이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왜 하필 제주 고사리인가…'맛·영양·친환경'
고사리는 꽃잎 하나 없고 나비도 찾지 않는 식물이다. 심지어 독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독초'다. 하지만 뜨거운 물에 여러번 삶고 말리면 '약초'로 변신한다.
고사리에는 섬유질, 칼슘, 철분, 비타민이 풍부하다. 골다공증, 변비를 비롯해 피부건강, 혈압 조절, 독소배출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육개장에 들어가는 재료로 취급되지만 사실 고사리는 돼지고기와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 돼지고기의 지방 흡수를 억제하고 풍미를 더해준다는 평이다.
◇힐링하고 운동하고 선물하고…"봄 취미로 최고죠"
고사리 채취객 C(50대·여)씨는 "타 지역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뒤 처음 고사리를 꺾어 봤다"며 "처음엔 잘 안 보였지만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익는다. 돌아가면서 못 봤던 고사리도 보여 꺾었다. 먹었을 땐 그냥 반찬이니 했는데 직접 꺾으러 와보니 고사리 귀한 줄 이제야 알았다. 찾는 재미가 있다"고 전했다.
일행 D씨는 "아침 일찍 고사리를 꺾으면 공기도 좋고 조용해서 심신 안정에 좋은 것 같다"며 "들판과 오름을 돌아다녀서 운동도 된다. 봄철에 취미로 하기에 최고로 좋은 활동"이라고 했다.
또다른 채취객 E(70대·여)씨는 "고사리 꺾을 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한 번씩 주변에 뱀이나 이런 것들이 신경쓰이긴 한다"며 "직접 먹기도 하지만 육지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보내주려고 한다. 제주 고사리는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사리 꺾다가 '여기가 어디지'…헬기 출동에 구조견 투입
고사리를 꺾을 땐 시선이 지면에만 고정돼 있다. 땅만 보고 걷다가 주변을 돌아봤을 땐 이미 낯선 곳까지 와버린 상황이다. 방향 감각이 상실돼 산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면서 신고까지 이어진다.
119 신고가 접수되면 GPS 등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수색이 이뤄진다. 열화상 기능이 포함된 드론을 통해 산 속에 있어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구조견도 투입돼 채취객을 발견하면 즉시 구조대원들에게 알린다. 배터리가 넉넉히 충전된 휴대전화를 챙겨야 하는 이유다.
제주소방안전본부는 4월 고사리 길 잃음 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고 안전관리에 나서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고사리 채취는 오름과 중산간 등 복잡한 지형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방향을 잃기 쉽다"며 "채취 시 2인 이상 동행하고 휴대전화 위치 서비스 활성화, 보조 배터리와 밝은 옷 등을 준비해야 한다. 길을 잃었을 경우 즉시 119에 신고한 뒤 이동하지 말고 구조를 기다려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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