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은 어떻게 비극을 껴안는가…세월호 12주기 '서정적 닻' 된 노래들

기사등록 2026/04/16 07:56:58
[서울=뉴시스] 루시드폴 '아직, 있다.' (사진 = 뮤직비디오 캡처) 2026.04.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4월16일. 12년의 시간이 흘러도 어떤 비극은 결코 풍화되지 않는다. 대중음악은 그 흩어지려는 기억을 단단히 붙잡아두는 '서정적인 닻'으로 기능한다. 음악이 시대와 호흡하는 방식을 치열하게 좇다 보면, 멜로디 이면에 감춰진 시대의 상흔과 마주하게 된다. K-팝을 비롯 한국 대중음악 신이 세월호를 어떻게 애도하고 연대해왔는지, 그 상징적인 궤적을 톺아본다.

◆루시드폴 '아직, 있다.'(2015)…기록자로서의 싱어송라이터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집요하게 참사를 기록한 진혼곡이다. 루시드폴은 화려한 편곡이나 감정을 쥐어짜는 장치 없이, 소박한 나일론 기타 선율 하나로 슬픔의 거대한 여백을 만들어낸다.

이는 인디 신과 포크 음악이 지닌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책무를 가장 묵직하게 수행한 결과물이다. 곡 제목에 찍힌 쉼표(,)는 숨을 고르는 찰나이자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삼키는 시적 여백이다. 물리적인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분명히 실재한다는 간절한 단언은, 음악이 슬픔을 강요하지 않고 청자를 연대의 공간으로 조용히 초대하는 방식을 증명한다.

◆김윤아 '강'(2016)…시대의 진혼가와 연대의 존재론

참사 이후 한국 사회에 만연한 무력감과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자의 죄책감을 파고든다. 김윤아 솔로 정규 4집 '타인의 고통'(2016)에 수록된 이 곡은 대중음악 신에서 김윤아가 지니는 보컬리스트로서의 고유적 위치를 다시금 확인시킨다. 비극을 한 발짝 떨어져 관조하는 듯하면서도,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의 밑바닥까지 깊숙이 개입하는 보컬의 질감이 압권이다.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라는 가사는, 고통이 결코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거대한 '강'처럼 흘러 우리를 근원적으로 묶고 있다는 존재론적 연대를 일깨운다.
[서울=뉴시스] 레드벨벳 '7월7일' (사진 = 뮤직비디오 캡처) 2026.04.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레드벨벳 '7월7일(One Of These Nights)' (2016)…K-팝 미장센과 은유적 추모

SM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정교한 미장센이 사회적 애도와 어떻게 결합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곡이다. 견우와 직녀 설화를 모티브로 한 R&B 발라드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배를 연상시키는 세트, 차오르는 물, 노란 우비 등 시각적 코드를 겹겹이 배치했는데 SM은 과거 추모곡이 아니라고 했지만 팬들은 애도의 노래로 해석했다. 동화적 메타포 뒤에 숨겨진 '분리된 시간'에 대한 비애를 읽은 것이다. 대중음악은 이렇게 청자의 노래가 된다.
 
◆방탄소년단 '봄날'(2017)…시대의 대변자가 된 K-팝

방탄소년단(BTS)의 '봄날'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위로를 건넨 곡이다. 멤버들과 소속사는 이 곡이 세월호 추모곡이라 콕 집어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은 이윽고 사회를 품는다. 주류 K-팝 아티스트가 동시대의 뼈아픈 비극을 어떻게 보편적인 상실의 서사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서울=뉴시스] 방탄소년단 '봄날' (사진 = 뮤직비디오 캡처) 2026.04.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돌이라는 위치에서 자칫 민감할 수 있는 사회적 참사를 끌어안은 것은, 이들이 단순한 퍼포머를 넘어 '시대의 서사'를 감당하는 아티스트로 도약한 결정적 분기점이 됐다. "보고 싶다"는 직설적인 언어의 먹먹한 반복 속에서, 노란 리본이나 쌓인 옷더미 같은 뮤직비디오의 시각적 은유가 겹쳐질 때, K-팝은 망각에 저항하는 글로벌한 위로의 매개체로 작동한다.
 
대중음악은 떠난 이들을 되돌려 놓지는 못한다. 그러나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나침반이 되기엔 충분하다. 멜로디 이면에 담긴 애도의 윤리학은, 오늘 우리가 굳이 이 노래들의 재생 버튼을 다시 누르는 이유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