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구의 날' …허민 국가유산청장 특별 기고
[서울=뉴시스] 매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이할 때면, 지구가 우리에게 보내는 간절한 신호를 되새기게 된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환경의 변화를 넘어 우리가 수천 년간 지켜온 '자연유산'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유구한 시간의 기록이자 생태계의 보고인 자연유산이 급속한 온도 상승과 이상기후로 인해 소리 없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기후변화로 자연유산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이미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첫째, 해수면 상승과 연안 지질유산의 침수로 인한 소실을 들 수 있다. 천연기념물인 제주 용머리해안 화산쇄설층은 과거 만조 시에도 관람이 가능했으나, 최근 해수면 상승과 잦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연간 관람 가능 일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과거 1980년대만 해도 연중 대부분 자유롭게 거닐 수 있었던 용머리해안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지난해 기준 1년 중 3분의 1정도만 종일 관람이 가능하다.
빨라지는 해수면 상승 속도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36년간(1989~2024년) 우리나라 해수면은 약 11.5cm 높아졌으며, 특히 2015년~2024년의 10년간 제주 부근을 중심으로 연 4~7mm수준의 높은 상승률이 나타났다. 이는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치로, 용머리해안의 침수 빈도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원인이 되었다.
둘째, 식생 변화와 생태계 교란이다. 지구 온난화로 난류성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주 연안의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지가 위협받고 있다. 북상하는 유해 해양 생물들이 산호 군락을 뒤덮어 집단 폐사를 유도하며, 이는 고유한 해양 생물다양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기상 재해에 의한 물리적 파손이다. 폭우와 이로 인한 대규모 붕괴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수월봉 화산쇄설층과 같은 해안 절벽의 후퇴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가뭄과 대형 산불의 위험은 고산 지대의 아고산대 식물군락과 천연림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국가유산청은 국가유산의 보존 패러다임을 '사후 복구'에서 '선제적 예방'으로 전환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현재 제 2차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28~’32)을 수립하여 유산별 기후 위기 취약성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지능형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 중이다.
또한, 탄소 흡수원으로서 자연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전통 재료와 친환경 공법을 활용한 보존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국가유산의 기후 탄력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우리의 소중한 국가유산을 박제된 과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기후 환경에 적응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생명체로 대하는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특히 우리나라 자연유산의 절반 이상을 보유한 동시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세계지질공원 등 '국제보호지역 4관왕'의 타이틀을 거머쥔 제주도는 기후 위기 대응의 최전선이자 상징적인 장소다.
제주의 화산 지형과 독특한 생태계는 한 번 훼손되면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제주 지역의 자연유산과 지질유산을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사·연구할 '국립제주문화유산연구소'의 건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이 연구소는 제주 고유의 자연유산을 정밀 기록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지형 및 식생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제주의 자연유산이 지닌 가치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보전 관리 모델을 정립할 때, 우리는 비로소 기후 위기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소중한 우리 유산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날을 맞아, 우리가 누리는 이 푸른 풍경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국립제주문화유산연구소 건립을 발판 삼아, 우리 세대가 물려받은 이 경이로운 자연의 기록들을 다음 세대에게도 온전히 전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