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마녀' 어떻게 '마법사'로 비상하나…'데뷔 50주년' 한영애, 무대라는 제단 위 비행

기사등록 2026/04/07 14:34:23

데뷔 50주년 기념 간담회

반세기를 걸어온 소회 "부끄럽다, 장하다"

"앞으로도 원 없이 해보고파"

오늘 신곡 '스노레인' 발매… 부활 김태원 작사·작곡

김태원 "한영애 선배님은 진짜 예술가"

[서울=뉴시스] 한영애. (사진 = 나무뮤직 제공) 2026.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어떤 예술가의 목소리는 시대의 풍화 작용을 비껴가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영토가 된다.

1976년 데뷔해 한국 대중음악사에 유일무이한 궤적을 남겨온 '소리의 마녀' 한영애가 지나온 반세기는 단순한 생존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구원인 무대라는 제단 위에 자신을 끝없이 증명해 온 구도자의 치열한 일지다.

데뷔 50주년을 맞아 발표한 신곡 '스노레인(Snow Rain)'은 그 지난한 여정을 긍정하며 세상에 건네는 투박하고도 다정한 위로다.

올해 데뷔 40주년 맞은 밴드 '부활'의 김태원이 작사·작곡을 맡아 한영애에게 선물한 이 곡은 10년 전 대기실에서의 약속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결과물이다. 오랜 세월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해 가슴에 숙제처럼 담아두었던 김태원은, 이 곡을 통해 아무 조건 없이 내리는 눈과 비처럼 좋았던 기억도, 아팠던 시간도 결국 모두 추억이 된다는 삶의 관조를 담아냈다.

음원 발매 당일인 7일 서울 망원동에서 만난 한영애는 "추억 대신 기억이라는 단어가 쓰여져서 너무 좋았다"며 "같은 슬픔이라도 필터링 된 슬픔, 그렇게 슬프지 않은 아득함"이라고 이 곡의 정서를 읽어냈다.

연극배우 출신이기도 한 한영애는 이번 신곡에서도 텍스트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발성의 디테일을 치밀하게 세공했다. 노래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고맙다"라는 세 음절을 부를 때, 그는 글자마다 각기 다른 소리와 발성을 사용했다. 추상적인 가사를 입체적으로 빚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서울=뉴시스] 한영애 데뷔 50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 (사진 = 나무뮤직 제공) 2026.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이는 이날 사회를 본 임희윤 음악평론가가 대단한 디테일이라 극찬한 대목이기도 한데, 단어 하나를 그저 발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체라는 악기를 통해 실존적으로 벼려내려는 미학적 시도다.

한영애는 1976년 이정선, 이주호 등과 포크 그룹 '해바라기' 멤버로 데뷔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는 연극배우로 활약했다.

1986년 1집 '여울목/건널 수 없는 강'으로 솔로 데뷔했다. 신촌블루스 1기 멤버로 활동하는 한편 1988년 솔로 2집 '바라본다'의 '누구 없소?'와 '코뿔소', 3집 '1992'의 '말도 안돼'와 '조율'을 히트시켰다. 당시 독보적 표현력으로 '소리의 마녀'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이후 4집 '난.다', 5집 '불러오라 바람아', 6집 '샤키포'에서는 강산에, 방준석, 이병우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가들과 작업했다. 블루스, 모던 록, 일렉트로니카를 넘나드는 폭넓은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서울=뉴시스] 한영애 데뷔 50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 (사진 = 나무뮤직 제공) 2026.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반세기를 걸어온 소회를 묻는 질문에 그는 "부끄럽다, 장하다"라는 상반된 두 단어를 꺼냈다. 50주년이라는 거창한 목표에 도달하려 애쓰기보다는 늘 묵묵히 그 과정(프로세스) 안에 머물렀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그 기나긴 여정 중 가장 중요한 분기점은 단연 2집 '바라본다'다. 당시 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는 홀로 프로듀서 노릇을 자처하며 앨범의 뼈대를 세웠다. 한영애는 "당시 (음반 기획사이던) 동아기획 부장님이 훗날 내 손으로만 60만 장 팔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 도합 100만 장 이상 팔린 것"이라고 대중적 성취를 회고하면서도, 조력자 없이 고군분투하며 스스로의 음악적 발전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던 고독한 시간이기도 했음을 털어놓았다.

그 기나긴 고독을 버티게 한 것은 가혹하리만치 집요한 자기 성찰이었다. 혹여 마음이 흔들릴 때면 그는 스스로에게 "음악하는 데 뜻이 있는가"라고 묻는다. 시기에 따라 대답의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론은 언제나 같았다. "너의 구원은 무대에 있는 거야"라는 맹렬한 깨달음이다. 너무 거창한 대답 같다며 "해답은 무대에 있다"라는 말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지만 한영애의 무대를 보면 구원이 그 자리에 가장 적확하다는 걸 누구나 안다. 

1993년 63빌딩 옥상에서 열린 '아우성' 라이브 당시, 천장에서 젤라틴이 녹아내리는 아찔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스태프를 믿고 관객과 온전히 호흡하며 노래를 끝마쳤던 일화는 무대를 향한 그의 종교적 몰입을 증명한다. 가수와 관객, 공간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 경이로운 순간을 그는 "아라비안 양탄자를 타고 날아가는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그 순간 '소리의 마녀'는 빗자루를 타고 도깨비처럼 날아올라 모두를 매혹하는 '소리의 마법사'로 도약한다.
[서울=뉴시스] 한영애 데뷔 50주년 기념 기자 간담회. (사진 = 나무뮤직 제공) 2026.04.07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적 악기의 변화에 대해서도 한영애는 초연한 태도를 보인다. "소리가 변한다기보다 감성과 말투가 변해 내일 목소리가 변할 수도 있다"면서도, 여전히 원키를 소화할 수 있는 비결로 꾸준한 연습을 꼽았다. "오늘까지는 목소리가 매일 좋아져요. 자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이게 나의 작은 걱정"이라는 그의 말 속에는, 물리적 시간을 이겨내는 현역 아티스트의 형형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한영애의 시선은 과거의 영광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향해 있다. 데뷔 시절의 자신을 향해 "지금 원 없이 해보자"고 말해주고 싶다는 그는, 이제 완벽한 질적 도달점보다는 무대에 오르는 '양'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원 없이, 계속 노래하며 대중과 오래도록 함께 놀고 싶다"는 소망이다.

아이돌이 주도하는 가요계 흐름 속에서도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지드래곤의 '드라마'나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찾아 듣는다. "나이가 있는 가수가 젊은 세대 앞에 서는 것을 기획이나 사회적 통념이 쉽게 허락하지 않더라도,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얼마든지 소통하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가져본다"는 그의 말은 매섭고도 아름답다. 그 단단한 '오만함'이 허물어지지 않는 한, 한영애의 양탄자는 어떤 시대의 풍화도 넉넉히 견뎌내며 계속 날아오를 것이다.     

이날 간담회 중간 영상통화로 연결된 김태원은 한영애를 향해 "예술가란 칭호를 받을 수 있는 분이 몇 안 되는데 한영애 선배님은 진짜 예술가"라며 깊은 존경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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