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 가득 1000점 공개…직접 들고, 맡고, 살펴봐
문양 해석 분분…몽골 문자·일본 가문 상징 가능성
"문자 연구 시작"…한·중·일 공동연구 필요성 제기
[목포=뉴시스]한이재 기자 = "파스파 문자 아닐까요?"
25일 전남 목포 국립해양유연구소 강당. 바닥에 펼쳐진 자단목 앞에서 일본 학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나무 표면에는 숫자 2와 알파벳 E를 합쳐놓은 듯한 문양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날 공개된 자단목은 1975년 발견된 신안선 출수 유물 가운데 일부로,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목재가 50년 만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문양을 둘러싼 해석은 다양했다. 일본 덴리대학 후지타 아키요시 교수는 몽골 원나라 시기 사용된 '파스파 문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다른 문양을 두고는 일본에서 쓰이던 가문 상징이나 사인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세키 슈이치 고베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문양이 목적지나 구매 가문의 문양일 수도 있고, 정리 방식일 수도 있다"며 "문양 해독을 통해 무역 구조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강당 바닥에는 자단목 약 1000점이 빼곡히 펼쳐졌다. 지팡이처럼 가는 목재부터 성인 남성이 두 팔로 안아야 할 굵기까지 크기도 제각각이었다. 수장고에서 강당으로 옮기는 데만 인건비가 2000만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마치 미술대 입시 심사장을 연상케 했다.
연구자들은 나무 표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 문양을 이리저리 살폈다.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고 확대해 선을 따라가며 의미를 추적했다. 일부는 목재를 직접 들어보거나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맡기도 했다.
관람객들도 발걸음을 멈췄다. 돋보기를 꺼내 문양을 찾고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많은 자단목이 공개된 것은 처음 본다"며 "문양 설명을 들으니 특별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은석 국립해양유산연구소장은 "자단목은 당시 최고급 사치재였다"며 "오늘날에도 비싼 목재로, 현재 가치로는 100억원 수준까지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말했다.
자단목의 규모와 적재 상태를 두고는 침몰 원인과 연결한 해석도 나왔다.
아키요시 교수는 "(당시 사람들은) 신안선에 꿈을 쌓았고, 욕망을 실었다"며 "날씨 영향도 있겠지만 과적이 침몰 원인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양 해석은 향후 연구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자단목에 남은 문자와 기호를 분석하면 동남아시아에서 채취된 목재가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이동하는 과정과 교역 방식까지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한성욱 자현도자자료관장은 "자단목 문양 의미에 관한 연구는 이제 시작한 것"이라며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공동연구 추진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연구소는 자단목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하고, 고해상도 촬영과 3차원 데이터 구축을 통해 정밀 분석에 나설 계획이다. 적외선 촬영을 통해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문양까지 찾아내는 작업도 병행한다.
조미순 연구소 전시교육과장은 "자단목은 사실상 신안선 출수 유물의 마지막 연구"라며 "적외선 촬영이 이뤄지면 맨눈으로 보이지 않던 문양이 더 드러나는 등 자단목에 대해 더 밝혀질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한국 수중발굴 50주년을 맞아 자단목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오는 9월부터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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