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일본 향하던 원나라 무역선 '신안선'
1976년 발굴…도자기서 자단목으로 시선 이동
사치재 자단목…당시 '욕망의 소비' 보여줘
문자·기호 해독 되면 교역 구조 밝혀진다
[목포=뉴시스]한이재 기자 = 1975년 여름,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한 어부가 건져 올린 몇 점의 도자기는 신안선 발굴의 출발점이었다. 이후 50년 간 이어진 한국 수중발굴은 도자기를 중심으로 14세기 해상 교역을 복원해 왔다. 이제 연구의 시선은 함께 실려 있던 자단목(紫檀木) 1000여 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중국·일본 학계가 동시에 주목하는 새로운 단서다.
신안선은 1323년 중국 영파(경원, 명주)에서 일본 하카타로 향하던 원나라 무역선이다. 1976년 발굴 당시 도자기 등 약 2만4000점의 유물과 동전 800만개가 출수되며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실체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먼저 자단목은 생존을 위한 물자가 아닌, 고도의 소비 문화를 반영하는 사치재로 학계는 보고 있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이 목재는 성장에 수백 년이 걸리는 희귀 자원으로, 단단한 성질과 붉은 색감 덕에 불상, 고급 가구, 의례용 기물 등에 사용됐다.
원나라에서 자단목 수입으로 금과 은 유출이 심해지자 금·은 교역을 금지할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백제도 일본 왕실에 보낸 바둑판 '목화자단기국'을 자단목으로 만들었다. 이는 당시 경제가 단순한 생존 단계를 넘어 취향과 위계, 권위와 신앙을 소비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종숙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자단목은 생활필수품이 아닌 대표적인 사치재"라고 짚었다.
자단목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표면에 남아 있는 문자와 기호다.
일부 목재에는 표식과 절단 흔적, 가공 흔적 등이 확인된다. 이는 단순한 화물이 아니라 계약과 분류, 관리 체계를 갖춘 교역품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순일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2024년 11월 발표한 논문에서 자단목의 문자 등 전수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1000여점이 넘는 자료에 다양한 정보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문자와 기호 해독이 이뤄질 경우 자단목이 어떤 경로를 거쳐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어떻게 관리되고 분배됐는지 등 14세기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시스템을 복원할 수 있는 단서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채취된 자단목이 중국을 거쳐 일본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고부가가치 사치재를 중심으로 한 국제교역의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단서로 평가된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고해상도 촬영과 3차원 데이터 구축 등을 통해 정밀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자단목은 신안선을 ‘도자기를 실어 가던 배’에서 ‘욕망과 거래 시스템의 배’로 확장시키는 마지막 퍼즐로 떠오르고 있다.
조미순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전시교육과장은 "자단목은 사실상 신안선 출수 유물의 마지막 연구"라며 "적외선 촬영이 이뤄지면 맨눈으로 보이지 않던 문양이 더 드러나는 등 자단목에 대해 더 밝혀질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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