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교도소 수감 중에도 월 300억 마약 유통
"말하면 뒤집어진다" 수사기관 조롱하기도
경기북부청 압송…신상공개 여부 검토
[서울=뉴시스]최은수 오정우 기자 =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9년 만에 국내로 압송된 박왕열(48)을 부르는 이름이다. 수산물 수입유통회사 대표 출신인 그는 살인, 탈옥, 마약 밀유통을 거치며 '동남아 3대 마약왕'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필리핀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던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팜팡가주의 한 사탕수수밭에서 국내에서 투자사기 혐의로 도피해온 한국인 남녀 3명을 공범과 함께 총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다. 피해자들과 수익금 분배 문제로 갈등을 빚은 끝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공범 김모씨는 귀국 후 경찰에 붙잡혀 징역 3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박왕열은 사건 직후 필리핀 현지에서 체포됐지만 2017년 3월 첫 번째 탈옥에 성공했다. 같은 해 6월 다량의 마약을 소지한 채 재검거됐으나 2019년 10월 법정에 다녀오던 중 두 번째 탈옥을 감행, 이후 약 1년간 잠적했다. 2020년 10월 필리핀 라구나주에서 세 번째로 붙잡힌 뒤 2022년 4월 필리핀 법원에서 단기 52년·장기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세 번째 검거 후에도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박왕열은 필리핀 뉴빌리비드 교도소에 수감된 뒤에도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로 휴대전화를 이용해 국내 마약 유통을 지속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달에 최대 60㎏, 금액으로 300억원 규모의 필로폰이 그의 조직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총책 '바티칸 킹덤' A씨가 박왕열로부터 마약을 공급받아 유통한 혐의로 2021년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며, 과거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가 투약한 마약 역시 박왕열의 유통망을 거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박왕열이 수감 중에도 마약 사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엔 필리핀 교도소의 허술한 관리 체계가 꼽힌다.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경찰 수사관은 방송 인터뷰에서 "그곳은 교도소라기보다 범죄자들을 모아놓은 '범죄자 마을'에 가깝다"며 "돈만 있으면 개인 방을 살 수 있고 휴대전화 사용도 자유로웠다"고 증언했다. 실제 현지 단속 과정에서 교도소 내부에 초호화 빌라, 스파 욕조, 운동시설 등이 갖춰진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진다.
박왕열은 2023년 방송 인터뷰에서 "말하면 한번 뒤집어진다"며 "검사부터 옷 벗는 놈들도 많을 것"이라고 했고, "내가 마약 판 증거가 있느냐"며 수사기관을 조롱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2017년부터 필리핀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으나 필리핀 측은 자국 재판과 형 집행을 이유로 사실상 거절해 왔다. 돌파구는 정상외교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마닐라 정상회담에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에게 직접 임시인도를 요청했고, 이튿날 동포 간담회에서 박왕열을 직접 거론하며 "교도소 안에서 대한민국으로 마약을 수출하고 있다. 애인도 부르고 논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이 필리핀에 직접 방문해 법무부 장관과 면담하며 집중 협의에 나선 끝에 요청 22일 만에 성사됐다.
박왕열은 이날 오전 6시34분 아시아나 OZ708편으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야구모자를 쓰고 회색 카디건을 입은 채 출국장을 나온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사라김' 김모씨는 2022년 7월 베트남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된 뒤 대법원에서 징역 25년이 확정됐고, 탈북자 출신 최모씨는 같은 해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송환돼 올해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았다. 박왕열이 3대 마약왕 중 마지막으로 한국 땅을 밟은 셈이다.
경찰은 박왕열을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로 압송했다. 기존 3개 경찰 관서에서 별도로 수사하던 마약 사건을 병합해 집중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경기북부청 마약수사관 12명, 경남청 2명, 서울청 가상자산 분석팀 6명 등 총 20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구속영장을 조만간 신청하는 한편 체포 당시 확보한 휴대전화 등 증거물 분석, 공범 수사를 통해 마약 조직의 실체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등 형태의 범죄수익 환수도 추진하며, 신상정보공개위원회를 열어 박왕열의 신상 공개 여부도 검토할 예정이다.
임시인도 방식으로 들어온 만큼 마약 관련 수사와 재판이 종결되면 원칙적으로 필리핀으로 돌아가 잔여 형을 복역해야 하지만, 수사 경과에 따라 임시인도 연장 협의도 가능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schoi@newsis.com, friend@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