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상품권 판매 가장 불법 고리사채 피해자로 판단
1심 "사채업자가 사기 피해자로 둔갑"…검찰 항소 안 해
[광주=뉴시스]변재훈 기자 = 상품권 예약 판매 사기 혐의로 기소된 30대에 대해 법원이 "도리어 변칙 고리대금업 피해자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광주지법 형사6단독 차기현 판사는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A(37)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다만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11차례에 걸쳐 '급전이 필요해 모바일상품권을 판매한다'고 속여 B씨 등 6명으로부터 선금 총 330만원만 가로채고 상품권은 지급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A씨는 포털사이트 카페 게시글을 통해 상품권 구매자를 모집해 선금 명목으로 일부 만을 받고 정해진 날짜에 모바일 상품권을 전송하겠다는 계약서를 썼다. 가령 50만원을 선금으로 받고 일주일여 뒤 백화점상품권 80만원권을 발송해주겠다는 식이었다.
B씨 등 피해자 측 고소로 수사에 나선 수사기관은 당초부터 A씨가 상품권 지급 의사 또는 능력 모두 없었던 만큼, 사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도리어 B씨를 비롯한 사기 피해자들이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위반 소지가 있는 단기 고리 사금융을 했고, 외형 상으로는 상품권 거래로 가장한 것이라고 봤다.
실제 거래의 의미는 겉보기와 다르게 B씨 등이 지급한 상품권 대금이 A씨에게 빌려준 원금이고, 일주일 안에 갚지 못하면 이자까지 붙인 상품권으로 갚는 형태라는 판단이다.
재판장은 "사실상 A씨가 50만원을 빌려쓰고 일주일 내 갚지 못하면 상품권 가액인 80만원으로 원리금이 불어난 것이다. 상품권 거래를 가장했고, 연이율로 환산하면 1123.1~8111.1%에 달하는 불법 사금융이다"며 "B씨 등은 A씨의 사기에 속은 것이 아니라 '채권 추심에 성공하지 못할 위험'을 감수한 것 뿐이다"라고 봤다.
특히 B씨 등이 '상품권 판매자' A씨에게 미리 만들어 둔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해 상품권 거래를 주도한 것처럼 꾸민 점, B씨 등이 A씨에게 보증인 인적사항과 주민등록등본 등을 요구한 점도 석연치 않다고 봤다.
재판장은 "상품권 거래 사기 피해자들은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위반 소지가 높아 제대로 조사하면 처벌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채권 추심을 도와주기 위해 국가형벌권까지 발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결국 경제적 취약계층의 고혈을 빠는 고리 사금융을 열심히 하라고 국가가 권장하는 데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각 사기 혐의와 관련해 B씨 등 피해자들이 과연 착오에 빠져 처분 행위를 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범죄 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A씨의 음주운전 혐의에 대해서는 동종범죄로 이미 징역형 집행유예 기간 중인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음주운전 관련 유죄 판결에 항소했다. 반면 검사는 항소하지 않아 A씨의 사기 혐의 무죄 부분은 확정됐다.
최근 이와 같은 돈을 빌려준 뒤 며칠 만에 원금을 크게 웃도는 금액을 상품권으로 돌려받는 방식의 단기 초고금리 불법 사금융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21일 '불법사금융 근절을 위한 범정부 TF' 회의를 열어 외관상 상품권 매매를 가장하더라도 거래 실질을 고려해 상품권 예약판매도 대부업법을 적용하기로 했다. 특히 대부업 등록 없이 반복적으로 거래하는 경우 불법사금융업자로서 엄정 대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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