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헤니 20년 만 재회
산티아고 순례길서 "각자 고향에 길 만들자"
십수 년간 수소문 끝 AI 도움으로 만남 성사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잔느 캐서린 헤니의 이야기다.
"우리는 '길'이라는 게 마치 자연이라는 아름다움에 입원해 스스로를 고치는 '행복한 종합병원(Happy General Hospital)' 같다고 생각했다."
19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만난 '헤니'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헤니는 2006년 서 이사장이 23년간 몸담아온 언론계를 떠나기로 결심한 직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인연이다. 그리고 서 이사장이 제주에 올레길을 만들도록 마음에 불을 지핀 장본인이다.
서 이사장은 "헤니와 만난 건 내가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 33일째, 헤니가 32일째 되는 날이었다"며 "하루 차이로 서로의 속도가 맞아떨어지면서 만난 우연으로 정작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5~6시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이 서로의 공통분모에 몰입하기엔 충분했다.
당시 서 이사장은 23년간 언론인으로서 지내다 은퇴를 결심했고 20년간 한 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해 온 헤니 역시 스스로의 삶을 되새기고자 순례길에 올랐다. 당시 두 사람의 나이 49세, 54세였다.
서 이사장은 "처음 가슴 설렜던 직업이라도 수십 년간 총력 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지쳐버리기 마련이고 그때의 우리가 그랬다"며 "두 중년의 인생이 서로의 인생을 되돌아봤던 시간"이라고 소회했다.
그는 "둘 중 누가 먼저 꺼낸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걸어온 순례길이 마치 종합병원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중증이든 경증이든 심신이 아픈 현대인이 자연이라는 아름다움에 입원한 거고 자신의 두 발이 스스로 의사가 되고 간호사가 되고 상담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면 이 행복한 종합병원이 왜 여기에만 있어야 하느냐. 시골에 사나, 도시에 사나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각자의 나라에, 각자의 지역에, 커뮤니티에 행복한 마을병원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서 이사장은 직접 길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특히 "각자의 고향에 직접 길을 내자. 당신은 한국에, 나는 영국에"라는 헤니의 제안은 서 이사장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고 했다.
서 이사장은 "이미 30여일간 순례길을 걸으며 고향 제주에 길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단순히 칼럼을 써서 행정 등에 길을 만들 것을 제안하려는 정도였다"며 "마음속에 제주의 길에 대한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왔다면 헤니가 내 가슴에 불을 확 지핀 것"이라고 밝혔다.
두 사람은 후일 서로가 만든 길을 교류하기로 약속하고 연락처를 교환했지만 재회는 20년이 지난 이제야 이뤄졌다.
핸드폰 없이 순례길에 오른 바람에 서로의 연락처를 쪽지로 나눴지만 결국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십수 년간 헤니의 소식을 좇는 수소문으로 이어졌다.
올레길을 만들면서도, 세계 트레일 컨퍼런스에서도, 외국인 올레꾼들에게도 헤니를 아느냐고 물었지만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헤니'는 잔느 캐서린 헤니의 성이었다. 또 잔느는 안달루시아 산중 마을의 대규모 개발을 막기 위해 스페인 현지에서 환경 정당을 만들어 스페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마치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김씨를 찾은 격이었다.
잔느 역시 서 이사장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전해지지 못했다. 마침내 지난 18일 서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제주땅을 밟았다. 20일에는 보목포구에서부터 제주올레여행자센터까지 이어지는 제주올레길 6코스 일부 구간을 걸었다.
약 17만5200시간 전 단 6시간의 만남이, 서로의 가슴 속에 20년간 남아 있었던 셈이다.
"오래 만나도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 있고 잠깐 만나도 심장에 남는 사람이 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제주국제공항에서 20년 만의 인연을 기다리며 한 말이다.
서 이사장과 잔느 캐서린 헤니는 28일 오후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토크콘서트를 열고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을 올레꾼들과 나눈다. 참가자 모집은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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