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대화록, '강북 모텔 연쇄 사망' 사건서 핵심 증거
수사기관 챗GPT 데이터 요청 1년새 3배↑…"AI 대화, 더는 비밀 아냐"
[서울=뉴시스]윤정민 기자 = #. 2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챗GPT에 "회사에서 상사와 갈등이 있는데 그만두는 게 맞을까", "결혼을 고민해야 하는 나이에 3년 사귄 연인과 헤어질지 고민 중인데 객관적으로 조언해 달라" 등의 질문을 남겼다. 주변 사람에게 털어놨다가 괜한 오해를 사거나 뒷말이 돌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챗GPT는 퇴사 고민에 대해 "감정이 가장 격해졌을 때 결정하면 후회할 확률이 높아요. 먼저 몇 가지를 차분히 점검해 보는 게 좋아요"라고 답했다. 연애 고민에 대해서는 "단순한 연애 문제가 아니라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문제라서 더 무겁게 느껴질 거예요"라고 위로하며 객관적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A씨는 "사람에게 말하면 평가받는 느낌이 드는데 AI는 그렇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독자 여러분이 가장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누구인가요? 가족인가요, 친한 친구인가요, 아니면 연인인가요? 저 역시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인공지능(AI)에 물었으니 AI가 어쩌면 가장 안전한 '익명의 상담자'가 된 셈입니다.
이처럼 최근 챗GPT, 제미나이 등 AI 챗봇이 단순 검색 도구를 넘어 디지털 상담 창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채용 플랫폼 진학사 캐치가 지난해 7월 청년 구직자 1592명에게 실제 사람 대신 AI에만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73%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한 사람의 진짜 모습을 알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탐색(돋보기 아이콘)' 탭 대신 챗GPT 등 AI와의 대화를 봐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데요.
이처럼 AI 챗봇이 가장 솔직한 대화 상대가 된 시대에 뜻밖의 장소에서 그 기록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범죄 수사. AI 챗봇과 대화를 나눈 기록이 범죄 혐의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증거로 채택되고 있습니다.
◆"나만 아는 비밀이었는데"…AI 대화 몇 줄, 범죄 결정적 증거로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19일 '강북 모텔 연쇄 사망'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20대 여성 A씨를 살인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했습니다.
이 사건은 챗GPT 대화로 혐의 자체가 바뀐 이례적인 사건입니다. 처음 경찰이 A씨에 부여한 혐의는 상해치사 혐의였습니다. A씨는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음료에 타서 건넸을 뿐 피해자가 숨질 줄 몰랐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찰이 A씨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살인 고의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기록이 발견됐습니다. A씨가 챗GPT 앱에 '수면제랑 술을 같이 먹으면 어떤가', '얼마나 같이 먹으면 위험한가', '죽을 수도 있나' 등의 질문을 남긴 걸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A씨가 범행 시 사망 가능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보고 혐의 항목을 살인으로 바꿨습니다. AI 챗봇에 남긴 질문 몇 줄이 '몰랐다'는 항변을 무너뜨린 겁니다.
AI 챗봇과의 대화가 범죄 수사에 결정적인 증거가 된 사례는 미국에도 있습니다. 미주리주 현지 매체인 'KOLR 10'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 10대 청소년이 미주리 주립대 주차장에서 차량 17대를 파손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경찰은 피의자 휴대전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그가 차량 파손 후 챗GPT에 "사람들이 유리창 깨고 있길래 나도 같이 했는데 지금 기숙사야. 나 감옥 가나", "만약 내가 여러 대를 때려 부쉈다면", "나라는 걸 경찰 등이 알 방법이 있을까" 등의 질문을 남긴 것을 파악했습니다.
◆포털 검색·카톡 넘어 AI 대화도 수사 실마리로
과거에는 포털 검색 기록이나 '지식인' 등 커뮤니티에 남긴 질문, 카카오톡 대화 내용 등이 디지털 증거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범행 전 특정 키워드를 검색했는지, 공범과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에 AI 챗봇 대화가 빠르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수사기관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픈AI 등 AI 챗봇 운영 기업에 직접 대화 데이터를 요구하는 비중이 늘고 있습니다.
오픈AI가 공개한 투명성 보고서에 따르면 수사기관이 오픈AI 서버에 실제 대화 내용을 직접 요청한 건수는 2023년 상하반기 모두 0건이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상반기 8건을 시작으로 지난해 상반기엔 26건으로 불과 1년 만에 3배 이상 급증했습니다. 오픈AI는 이 중 23건의 실제 대화 내용을 수사기관에 제공했습니다. 법적 요건(수색영장 등)이 갖춰지면 AI 기업도 사용자 대화를 수사기관에 넘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7월 한 팟캐스트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사적인 것들을 챗GPT에 이야기한다. 챗GPT를 상담사나 인생 코치처럼 사용하며 연애 문제나 고민을 털어놓는다"면서도 "상담사, 변호사, 의사에게 고민을 말할 때 보장되는 '법적 비밀유지 특권'이 챗GPT와의 대화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강북 모텔 연쇄 사망' 사건에서 증명됐듯 수사기관의 AI 대화 기록 활용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질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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