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역사박물관, 2000년대 초반 밤문화 재조명
유교적 윤리-쾌락주의 충돌, '멀티 페르소나'의 탄생
나이트는 사적 욕망 충족 공간이자 정체성 실험장
인터넷·핸드폰 일상화…낮엔 싸이월드, 밤엔 나이트
[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2000년대 초반, 한국의 밤은 세대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20대가 음악에 몸을 맡긴 '부비부비'의 무대를 즐겼다면, 30~40대는 웨이터에 이끌려 자리를 옮기는 '부킹'의 세계로 향했다. 같은 성인나이트클럽이지만, 그 안의 풍경은 달랐다.
장세길 전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2차 근현대사 콜로키움에서 발표하는 연구 '일상의 카니발: 성인나이트클럽, 일탈과 저항의 경계'에서 이 현상을 '새천년 시대 카니발'로 읽어낸다. 성인나이트클럽은 단순한 유흥 공간이 아니라 2000년대 초 3040세대가 자신들의 방식으로 밤을 소비한 하나의 문화적 장치였다는 분석이다.
당시는 Y2K 공포를 지나며 막연한 낙관론이 확산했고, IMF 외환위기를 버텨낸 보상 심리가 겹치며 사회 전반에는 '과잉'이 흘렀다.
이 분위기에서 클럽을 향유하는 행위는 개인의 경제력과 사회적 감각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기능했고, 유흥은 더 이상 '죄악'이 아닌 '취향'과 '라이프스타일'로 재정의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공간의 성격도 변했다. 지하의 은밀함은 광장의 공유성으로 확장됐다. 나이트클럽은 사적 욕망 충족의 장소임과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정체성을 실험하는 장이 됐다.
당시는 또 기술과 감성이 빠르게 교차하던 과도기였다.
초고속 인터넷(ADSL)과 폴더폰이 일상화되면서 낮에는 싸이월드에서 감정을 예열하고, 밤에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관계를 실험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워졌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의 등장으로 설명한다. 낮의 직장인과 부모라는 자아와 밤의 댄서이자 만남의 주체로서의 자아가 공존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의 밤문화가 은밀한 일탈이었다면, 새천년의 밤문화는 자기 경제력과 매력을 증명하는 자기표현 수단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정당화되던 시대의 문화"라고 분석했다.
성인나이트클럽을 특징짓는 핵심은 '부킹'이다.
카바레 시절 '쪼인'에서 이어진 이 문화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테이블과 테이블을 잇는 웨이터의 중개로 낯선 남녀가 만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리를 바꾸는 구조. 즉 익명성과 비공식성을 전제로 한 관계 맺기의 방식이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문화의 중심에 3040세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장 선임연구원은 "춤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가 목적이었다면, 근원적 목적은 남녀 간 만남의 매개인 부킹"이라며 "성인나이트는 기혼 남녀의 소개팅이 묵인되는 공간이자, 기존 질서에서 잠시 벗어나는 카니발의 장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언론은 이를 '탈선'으로 규정했다. 한 현장 리포트는 "찜질방에 간다"고 하고 나이트클럽을 찾아 '묻지마 부킹'과 '2차'를 즐기는 주부들의 모습을 통해 나이트클럽을 성적 탈선을 부추기는 온상으로 묘사했다.
유교적 엄숙주의와 서구적 쾌락주의가 공존하던 한국 사회에서 성인나이트는 금기와 욕망이 충돌하는 경계지대였고, 동시에 그것은 억불린 일상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해방의 카니발로 기능했다는 것이 장 선임연구위원의 해석이다.
그는 성인나이트를 도덕적 잣대로만 판단하기보다, 당시 사회가 겪은 가치관의 전환과 문화 소비 방식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2000년 '돈텔마마'에서 시작된 새천년의 밤문화 속 성인나이트클럽은 새천년을 맞은 30~40세대의 '유흥 해방구'이자 '부킹'이란 은밀한 욕망이 실현되며 가부장 질서가 전복되는 일탈의 장소, 저항의 '일상적 카니발 공간'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콜로키움은 오는 25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제2강의실에서 열린다. 별도 신청없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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