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간 창덕궁 일대서 하루 9회 시범 운용
자율 순찰에 더해 관제실 실시간 정보 제공
국가유산청, 보완점 등 살펴 확대 적용 검토
[서울=뉴시스]한이재 이수지 기자 =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창덕궁 영화당 앞에 대기 중이던 자율 순찰로봇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눈앞의 불꽃을 감지하자 안내 음성이 울렸고, 관제 화면에는 붉은 경고창이 즉시 떴다. 로봇 제작사 관계자가 휴대전화로 비명 소리를 재생하자 화면에는 '비명 감지' 문구가 표시됐다. 궁궐 안전을 책임질 인공지능(AI) 로봇 순찰이 첫발을 뗐다. 전통 공간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첫 시도다.
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 영화당 앞에서 순찰로봇 '순라봇' 시연회가 열렸다. '순라봇'은 조선시대 도성 안팎을 순시하던 순라군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난 10일부터 창덕궁 일대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로봇 제작 업체 관계자는 "현장 로봇과 관제실 화면이 동일하게 보인다. 이중 체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된 순라봇은 120㎏ 중량의 육면체 형태다. 시속 0.7m로 이동하며, 15도 경사로까지 오를 수 있다. 8시간 충전하면 8시간 운행이 가능하다. 위급 상황에 대비해 자동심장충격기(AED) 등을 보관할 수 있는 수납함도 갖췄다.
운영 방식은 정해진 시간에 맞춘 원격 순찰이다. 주간에는 오전 10시30분과 오후 3시30분 두 차례, 야간에는 2시간 간격으로 7회 순찰한다. 기존 인력 순찰과는 별도로 운영되며, 상황실과 실시간 연계된다.
로봇에는 카메라, 라이다(LiDAR) 센서, 열화상 카메라, 마이크, 경광등, 스피커 등이 탑재됐다. 위성항법시스템(GPS) 기반으로 사전 설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열화상 카메라는 화재를 감지하고, 마이크는 비명이나 유리 파손음 등을 식별한다. 수상한 상황이 포착되면 관제실에서 원격으로 음성 안내나 경고를 할 수 있다. 라이다 센서는 사람이나 장애물을 인식해 자동 정지·회피 기능을 수행한다.
김철용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복원정비과장은 "궁궐 안전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궁궐 AI 안전관리' 시범사업의 시작"이라며 "관리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순라봇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로봇이 만능은 아니다"라며 "인력과 첨단기술이 힘을 합친다면 국가유산의 안전관리는 훨씬 더 촘촘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덕궁이 시범 장소로 선정된 이유는 흙길과 경사 등 다양한 지형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 데이터를 통해 로봇의 감지·주행 성능을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제약도 있다. 동일한 상황이 반복해 일어나면 분석에 시간이 걸리고, 잔디가 있거나 3㎝ 이상 눈이 쌓이면 운용이 어렵다. 궁궐 문 턱(5㎝ 이상)을 넘을 수 없고 사물·음성 인식 정확도 역시 추가 학습이 필요한 단계다.
제작 업체 관계자는 "고궁에 실외 순찰로봇을 투입한 국내 유일 사례로 알고 있다"며 "비가 와 사람이 순찰하기 힘든 경우 등에 로봇을 운용하면 근무 여건이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다음달 9일까지 실제 현장 운용을 통해 개선점을 보완한 뒤, 정식 도입과 타 문화 유산 확대 적용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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