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부터 찰스1세까지…재판부 "대통령도 내란죄 주체"

기사등록 2026/02/19 17:41:32

"행정부 수반도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 성립"

"국회 기능 정지 목적으로 계엄 선포…유죄"

법리 설명하기 위해 서구 사례 언급해 판시

사과 않은 태도, 막대한 사회적 갈등도 고려

[서울=뉴시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가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기일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 등 관련 피고인들에게 주문을 선고하고 있다. (사진= 서울중앙지법 제공) 2026.02.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정현 이승주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로마시대부터 처형된 영국 찰스1세 국왕까지 거론하며 행정부 수반에게도 내란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던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두고도 "국회 권한 침해를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면 죄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비상계엄 선포 그 자체만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지만, 국회에 군을 투입한 이상 계엄 선포 행위는 국헌문란 목적이 인정돼 내란죄가 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19일 윤 전 대통령에게 내란 우두머리죄가 성립한다는 법리를 이같이 판시하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행정부 수반도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 주체 된다"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형법 91조 2호가 적용되는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는 대통령도 저지를 수 있다"며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강제로 의회를 점령하거나 의원 체포 행위를 한 것은 국회 활동을 저지, 마비시켜 국회의 기능을 상당기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고자 하는 목적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지 부장판사는 "행정부 수반(한국의 경우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회는 자칫 갈등과 긴장 관계에 놓이기 쉽다"며 "이 경우 군 통수권을 갖는 행정부의 수반이 군을 동원해 의회 기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어 방해 없이 정책을 밀고 나가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법 91조 2호는 형법상 내란죄의 '국헌문란'을 정의한 조문이다. 형법은 국헌문란을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를 범할 주체가 될 수 있는지 보기 위해 로마시대부터 연혁을 짚어 나갔다.

◆의회 난입, 처형된 찰스 1세 사례 들며 법리 설시

재판부는 로마 시대에 '국가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내란죄로 처벌했으나, 제정이 들어서면서 국가와 황제를 동일시하는 기조가 서구 법리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이 영향력이 중세 시대에 미쳐 "왕이나 군주 자체는 내란죄를 저지르는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졌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런 기조는 영국 청교도 혁명으로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하는 의회에 의해 패배해 1649년 1월 처형에 이른 찰스 1세의 사례에서 바뀌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윤석열(오른쪽 위) 전 대통령이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기일에서 지귀연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듣고 있다. 법원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오른쪽 아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진= 서울중앙지법 제공) 2026.02.1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지 부장판사는 "(찰스 1세는) 의회가 자신의 잘못 200가지를 시정해 달라는 취지의 결의문을 내자 이에 분노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의사당에 난입해 그 자리에서 의회를 강제로 해산하는 일이 있었다는 점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검찰(특검)이나 피고인(윤 전 대통령 등) 측이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 때부터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 받은 의회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것은 왕이라 하더라도 주권을 침해하는 반역죄라는 인식이 생겼고, 우리 법 체계에도 영향을 미친 서구 법계에 반영됐다는 이야기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국가 원수가 내란죄의 피고인으로 재판에 선 사례를 재판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다만 아프리카나 남미 등 개발도상국의 경우 이른바 '친위 쿠데타'가 실패한 경우에도 망명 등으로 사법 단죄에 이르지 못한 사례가 많고, 선진국은 양원제나 중간 선거 등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다고 봤다.

그렇지만 이런 사례를 종합해 검토하면, 윤 전 대통령 사건처럼 의회 권한 행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행정부 수반이 군을 입법부에 보낸 행위는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국회 기능정지' 목적 계엄 선포는 내란죄 성립"

재판부는 대통령의 국가 긴급권 행사, 즉 비상계엄 선포를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로 볼 수 있다고 봤다.

다만, 계엄 선포 그 자체는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도 그 목적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국헌문란에 있다면 죄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달았다.

지 부장판사는 "(계엄 선포의) 실체적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에 대한 대통령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며 "자칫 필요한 경우 판단을 주저하게 만다는 저해 요소가 될 수 있고 절차적 요건을 따지는 것도 어느 정도의 절차를 어기는 것이 문제가 되는지 삼을 수 있는지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형식적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 사건 비상계엄 선포 그 자체가 내란죄 성립 요건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헌법이나 계엄법 등은 비상계엄을 하더라도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거나 행정·사법의 본질적 기능은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며 "이를(헌법기관의 본질적 기능 침해)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이라면 헌법이 정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라 하더라도 형법 91조 2호가 적용되는 국헌문란 목적 내란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는 "헌법이 정한 권한 행사라는 명목을 내세워서 이를 통해 할 수 없는 실력 행사를 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野 반국가세력' 규정 尹 향해 "명분과 목적 혼동"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를 하루 앞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는 19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6.02.19. 20hwan@newsis.com
윤 전 대통령의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권이 주도하던 국회를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자유민주적 질서 수호를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주장도 반박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어떤 일을 행한 동기나 이유, 명분과 그 목적을 혼동해 하는 주장으로 보인다"며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바로잡고 싶어 했던 것은 정당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동기나 이유, 명분에 불과할 뿐이지 군을 국회에 보내는 등의 목적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의 목적은 '국회의 기능 마비'에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 부장판사는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고 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국헌문란의 목적의 인식 공유는 미필적인 것으로 족한다"며 윤석열 정부 군·경 수뇌부 간의 암묵적 의사소통만으로도 공범 관계가 성립된다고 봤다. 또 비상계엄 선포부터 국회의원 체포조 편성 운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 등 시도 행위 전반은 대한민국 전역, 최소한 서울 수도권 지역의 평온을 해할 위력을 행사한 데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사회적 비용, 산정 못할 어마어마한 피해" 질타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일련의 행위는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 점에서 비난의 여지가 크다고 판시했다.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대한민국의 신인도 하락, 정치적으로 양분된 사회적 여론도 양형 이유로 거론했다.

지 부장판사는 "사회적 비용은 이 재판부가 보기에도 산정할 수 없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피해라고 할 것"이라며 "비상계엄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됐고 그 부분에 대해 사과의 뜻을 내비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 별다른 사정 없이 출석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다만 그는 "물리력의 행사를 최대한 자제시키려 했던 사정도 보인다. 실탄 소지나 직접적인 물리력, 폭력을 행사한 예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윤 전 대통령은) 범행 이전에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고 장기간 공무원으로 봉직해 왔으며 현재 65세의 비교적 고령이다"라고 유리한 정상을 참작, 형을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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