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연출, 신구와 작업 위해 10년 만의 신작 '불란서 금고' 집필
신구 "연기, 연극은 밥 먹는 것과 마찬가지…내가 살아있는 이유"
장진 연출 "신구 선생님 무대에 모실 수 있는 작품 쓰려고 작업"
정영주·장영남·장현성 등 배우들도 "신구 선생님때문에 출연" 입모아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살아있으니까 내가 평생 해온 일을 해야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아흔의 나이로 국내 현역 최고령 배우 수식어를 갖게 된 신구가 연극 '불란서 금고'로 올해도 무대에 선다.
신구는 10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열린 '불란서 금고' 제작발표회에서 "살아있으니까, 내가 평생 해왔던 게 연극이니까 하는 것"이라고 작품 참여 이유를 밝혔다.
'불란서 금고'는 장진 연출이 2015년 '꽃의 비밀' 이후 약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희곡이다. 은행 건물 지하, '밤 12시 모든 전기가 나가면 금고를 연다'는 단 하나의 규칙 아래 다섯 명이 모이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장 연출은 "희곡에 대해 늘 갈증이 있었는데 마음처럼 잘 써지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을 수 있던 건 지난해 5월 신구가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한 덕이다.
장 연출은 "정말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 그러면서 내가 왜 저 분을 내 무대에 못 모셨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그냥 무조건 쓰자, 되든 안 되든 선생님을 무대에 모실 수 있게 한번 써보자'하고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떤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고, 신구 선생님 억양으로 이 대사를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 하나로 첫 대사 하나만 가지고 갔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탈고한 대본을 지난해 9월 중순께 신구에 건넸고, 10월 초 가진 식사 자리에서 출연 승낙을 얻어냈다.
장 연출과 신구는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등에서 함께 작업한 적은 있지만 연출과 배우로 연극을 함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구는 이번 작품에서 전설적인 금고털이 기술자 맹인 역을 성지루와 나눠 연기한다.
신구는 "너무 성급하게 (출연을) 결정한 것 같다. 연습을 해보니 나이가 들어 극복하기 힘든 것도 있고, 작품 해석이 어려운 것도 있다. 노욕을 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배우 이순재가 향년 91세의 일기로 별세하며 그가 갖고 있던 '현역 최고령 배우' 타이틀은 신구가 넘겨 받게 됐다.
"얼마 전 이순재 형님이 돌아가셔서 내가 위로 모실 분이 안 계신다. 아쉽기 짝이 없다"고 쓸쓸함을 드러낸 신구는 고령의 몸을 이끌고 무대 작업을 하는 어려움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몸이 신통치 않다. (나이가 드니) 여러 장애가 오는데, 어떻게 극복해 작품에 누가 안 되게 할지 고심하고 있다"면서 "이 나이가 되니까 외운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그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연기와 연극은 자신에게 "밥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소개한 '천생 배우' 신구는 누구보다 무대에 오를 준비에 열심이다.
장 연출은 "출연 승낙을 하신 뒤 무대에 오를 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되셔서, 걷는 것부터 연습을 하셨다더라. 선생님께 '불란서 금고, 이 작품이 자신이 살아있는 이유'라는 내용이 담긴 문자를 받았다. 그러니 저희가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님을) 열심히 쫓아가려고 한다"고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도 작품 참여 이유로 입을 모아 신구의 이름을 외쳤다.
밀수 역에 캐스팅된 정영주는 "대본을 받고 '이 역할을 내가 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처음에 들었지만 앞뒤 안 재고 할 수밖에 없던 배경은 신구 선생님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시 밀수 역을 맡은 장영남은 "장진 감독님이 10년 만에 쓴 작품이기도 하고, 신구 선생님이 출연하신다"면서 "선생님은 저희에게 살아있는 역사 같은 분이다. 그런 분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뜻깊은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대학교 동기인 장 연출과 장현성은 37년 만에 한 작품에서 연출과 배우로 호흡을 맞추게 됐다.
교수 역을 맡은 장현성은 장 감독이 건넨 대본에 대한 믿음과 함께 신구의 출연이 작품을 참여하게 된 큰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저희도 이제 현장에 가면 선배 축에 든다. 하지만 선배님들을 모시고 공연을 하다보면 몰랐던 것을 깨닫고, 울컥하는 게 있다. 선생님을 뵈면서 '배우는 저런 모습이구나, 불필요한 것들이 다 덜어낸 결정체 같은 모습이구나' 하는 많은 생각이 들어 공부가 된다"고 했다.
배우들이 출연 계기로 연이어 '신구'의 이름을 부르자 신구는 활짝 웃는 얼굴로 배우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할게요"라고 화답했다.
대선배인 신구와 같은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성지루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소 신구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성지루는 "감히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게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고 소감을 밝혔다. 성지루는 이번 작품을 위해 군 제대 후 처음으로 삭발에 가까운 헤어스타일로 변신하는 열의도 보였다.
신구의 출연이 주목받고 있지만 작품은 장 연출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건달 역의 최영준은 "작품을 고른 이유의 90%는 (신구) 선생님 때문일 것 같은데, 유일하게 제가 아닐 것"이라며 "저는 장진이라서 하는 거다. 그런데 선생님도 계시니 저에게는 너무너무 행복한 일"이라며 웃었다.
정영주는 "장진만 가지고 있는 강력한 말의 힘이 있다"며 "남다른 에너지가 있는 대본"이라고 장 연출의 대본을 높이 샀다.
은행원 역에 김슬기와 더블 캐스팅된 금새록과 건달 역에 최영준과 함께 이름을 올린 주종혁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선다.
금새록은 "첫 연극이지만 관객분들이 보러 오시는 귀한 시간과 금액이 아깝지 않도록 연습해서 누가 되지 않게 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불란서 금고'는 다음 달 7일 NOL 서경스퀘어 스콘 1관에서 개막해 5월 31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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