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베트남…美와 전쟁 대비하면서 무역 협상 양면 전술

기사등록 2026/02/03 14:09:59 최종수정 2026/02/03 14:34:23

베트남 국방부 “중국에 대한 억지력 강화 위해 무력 침공할 수도” 문서 작성

“美 실존적 위협으로 여기고, 반중 동맹 가담 의사 전혀 없음 보여줘”

트럼프, 베네수엘라와 쿠바 압박에 베트남 지도부 긴장

[하노이=AP/뉴시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지난해 11월 2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또 럼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회담하고 있다.2026.02.03. *재판매 및 DB 금지

[하노이=AP/뉴시스] 구자룡 기자 = 베트남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무역 협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침략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는 등 양면성을 보인 문서가 3일 공개됐다. 

이 문서는 베트남이 미국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 이상이다.

◆ 베트남 인권단체 ‘88 프로젝트’ “베트남판 색깔 혁명 우려”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이나 1986년 필리핀의 황색 혁명처럼 외부 세력이 공산 지도부에 대항하는 이른바 ‘색깔 혁명’을 조장할지도 모른다는 뿌리 깊은 두려움을 확인시켜 준다.

베트남의 인권 유린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인권 단체 ‘88 프로젝트’가 분석에서 인용한 다른 내부 문서들은 베트남에서 미국의 충동에 의해 유사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88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이자 보고서 작성자인 벤 스완튼은 “정부 전체와 여러 부처에 걸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며 “당이나 정부내 소수 집단이나 편집증적인 세력의 의견이 아니다”고 말했다.

◆ ‘미국의 제2차 침공 계획’ 우려

베트남 국방부가 2024년 8월 작성한 ‘제2차 미국 침공 계획’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에 대한 억지력 강화라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국가 및 영토에 대해 비정규전 방식과 군사 개입, 심지어 대규모 침공까지 감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베트남 계획 담당자들은 “미국의 호전적인 성격 때문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침공할 구실을 만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베트남 군사 분석가들은 버락 오바마부터 도널드 트럼프의 첫 번째 임기, 그리고 조 바이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세 번의 미국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는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과의 군사 및 기타 관계를 점점 더 강화해 왔다고 분석한다.

베트남은 외교적 노력과 내부의 우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3년 베트남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해 베트남은 미국과 관계를 러시아, 중국과 같은 최고 외교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2024년 군사 문서에서 베트남 기획자들은 미국이 베트남을 “자유, 민주주의, 인권, 민족 및 종교에 관한 가치를 전파하고 강요하여 사회주의 정부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 베트남 군부 “1975년 끝난 전쟁 잘 기억하고 있어”

스완튼은 “제2차 미국 침공 계획은 베트남 외교 정책에 대한 가장 냉철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자료 중 하나”라며 “미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보기는 커녕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미국의 반중 동맹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고 썼다.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의 응우옌 카크 장은 “이 문서는 베트남 공산당 내 보수적이고 군부와 연계된 파벌은 오랫동안 정권에 대한 외부 위협에 몰두해 왔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워싱턴 국립전쟁대학의 재커리 아부자 교수는 “베트남 군부는 1975년에 끝난 미국과의 전쟁을 여전히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방 외교관들은 베트남이 중국의 침략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 문서는 지도자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색깔 혁명’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다른 정책 문서들을 뒷받침한다고 아부자 교수는 말했다.

미국과 베트남간 신뢰를 더욱 약화시킨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가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삭감한 것이었다.

미군이 사용한 고엽제에서 나온 치명적인 다이옥신으로 오염된 토양과 불발된 미군 탄약 및 지뢰를 정화하는 사업과 같은 프로젝트들이 차질을 빚었다.

◆ 중국은 위협 아닌 지역 경쟁자

중국과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지만, 해당 문서는 중국을 미국과 같은 위협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지역적 경쟁자로 묘사하고 있다.

아부자 교수는 “중국은 베트남 공산당에 실존적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며 “중국은 베트남 공산당이 약해 대규모 봉기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베트남을 압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 또 럼 서기장, 미국과의 협력도 강화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양방향 무역 파트너인 반면 미국은 최대 수출 시장이므로 하노이는 외교 및 경제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위험 분산을 위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아부자 교슈는 “심지어 진보적인 지도자들조차 미국에 대해 ‘좋은 파트너이지만 색깔 혁명이 일어난다면 분명히 지지할 것이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장 교수는 해당 문서가 작성될 무렵 공산당 서기장기가 된 또 럼 서기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 강화에도 주력해 왔다고 말했다.

럼 서기장은 지난달 서기장에 다시 선출됐으며 국가 주석도 겸할 것으로 예상돼 수십 년 만에 가장 강력한 인물이 될 전망이다.

럼 서기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평화위원회 참여 제안을 거의 즉시 수락했다.

◆ 트럼프, 베네수엘라와 쿠바 압박에 베트남 지도부 긴장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감행한 군사 작전은 베트남 보수파에게 미국과의 관계 강화에 대한 불안감을 다시금 부추겼다.

베트남의 우방국인 쿠바를 겨냥한 미국의 압박도 전략적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장 교수는 “쿠바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쿠바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베트남 정치 엘리트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쿠바와 매우 긴밀하고 강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아부자 교수는 “베트남 국민들은 인권과 민주주의 증진을 중시하면서도 국가 주권을 침해하고 자신들이 싫어하는 지도자를 제거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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