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진원 '2025 뮤즈온' 인터뷰⑤
"'완성도'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져"
싱어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밀레나(Milena·정세이)의 음악을 듣는 일은 그래서 감상이라기보다 '읽기'에 가깝다. 그녀가 음표 사이에 심어둔 행간은 성급히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다만 우리가 발 딛고 선 일상의 지표들을 투명하게 비춘다.
데뷔 4년 만에 당도한 첫 정규앨범 '웨어 투 비긴(Where to Begin)은 자아라는 좁은 방에서 걸어 나와, 타인이라는 광활한 숲으로 향하는 이정표다. 이전의 작업들이 스스로의 심연을 응시하는 서늘한 독백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타인의 온기를 투박하게나마 긍정하려는 다정한 대화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사랑의 화려한 수사학 대신, 누구나 사랑할 자격이 있다는 자명한 진실을 목격한다.
그녀의 행보는 지난해 두 가지 의미 있는 지표를 통해 그 정당성을 확보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의 신인 뮤지션 지원 사업 '뮤즈온'과 CJ문화재단 인디 뮤지션 지원사업 '튠업 26기'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건 단지 유망한 신예의 등장을 알리는 걸 넘어선다. 밀레나가 구축해 온 음악적 세계가 보편적 공감의 궤도에 무사히 안착했음을 의미한다.
서울대 작곡과라는 이력보다 더 빛나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과시의 도구가 아닌 교감의 매개로 사용할 줄 아는 밀레나의 '겸손한 시선'이다. 다음은 서면을 통해 밀레나와 나눈 일문일답.
-지난해 7월에 인터뷰를 했었는데 벌써 약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 밀레나 씨에게 가장 큰 근황은 무엇입니까?
"그간 가장 큰 근황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저의 첫 LP가 발매된 일이 제일 컸어요. 첫 LP인 점도 그렇고, 디자인도 직접 같이 참여해서 너무 소중하고 즐거웠던 과정이었습니다. 첫 MD도 만들었고요. 언제나 저의 LP나 MD를 가져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동경했었거든요. 아직까지 '처음'이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즐거워요. 지난해 특히 '처음'하는 것들이 참 많았어서,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뮤즈온은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도움이 됐나요?
"뮤즈온이 '처음'들을 많이 가져다 주었죠. 덕분에 첫 라디오도 해보고, 처음으로 록 페스티벌도 해보구요. 너무 많은 공연 기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원 없이 공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배운 것도, 느낀 것도 너무 많고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에겐 정말 소중하고 큰 프로젝트였어요. 공연장에서 저만을 보러 와주신 분들을 그렇게 많이 만난 적이 없었어서 기억에도 많이 남고, 저 자신에게도 최선을 다했던 프로젝트로 남기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었거든요. 과정에서 고민도 많았고, 그래서 더더욱 치열하게, 또 즐기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살면서 그렇게 많은 곡을 한번에 불러본 적도 없었어서 첫 콘서트 정말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밀레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밴드 '웨이브투어스'가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큐레이터로 나서 처음 큐레이팅한 공연이라 더 남달랐을 거 같아요.
"맞아요. 웨이브투어스 친구들 덕분에 2025년 한해 행복하게 마무리 할 수 있었어요. 제 앨범도, 라이브 영상도 친구들의 서포트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고맙고 든든합니다.
-여기에 더해 펜타포트 공연도 너무 좋았어요. 야외 공연이라 날씨가 더 덥긴 했지만, 밀레나 씨 덕분에 몽환적으로 환기가 되더라고요. 밀레나 씨는 어땠나요?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잊지 못할 페스티벌 중 하나로 남을 것 같아요. 살면서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면서, 행복하게 공연했던 순간이 또 있을까요! 앞으로 많은 공연들을 하겠지만,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요. 처음 느껴보는 에너지였거든요. 록페스티벌을 즐기시는 관객 분들을 존경하게 됐습니다. 또 제 음악으로 록페스티벌이 괜찮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무대를 내려와서 또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 만큼 그냥 그 순간 자체를 관객분들 덕분에 충만하게 즐겼던 것 같아요."
-지난해는 밀레나 씨에게 남다른 해일 거 같아요. 한 해를 돌아보시면 어떤가요? 특히 정규 앨범의 여운이 여전한데요. 이 앨범 작업이 밀레나 씨에게 어떤 것을 남겼는지요. 막 앨범 냈을 때랑 몇 달 뒤인 지금 생각이 약간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봅니다.
"아직도 정규 앨범을 생각하면 애틋하고 고마워요. 막 앨범을 냈을 때는 첫 만남처럼 설레고 기대감에 가득했다면, 지금의 저에게 이 앨범은 뭔가 조금 더 든든한 지원군같은 느낌이에요. 시간이 흘러도 언제나 이 앨범을 만들고 세상에 선보였던 제 모습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사실 아직까지도 앨범 활동이 완전히 끝났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 같아요. 많은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만든 만큼, 오래도록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제게는 최고의 수단이었던 것 같아요.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과정에서 제가 그렸던 사랑이 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되돌아오는 경험은 저에게 있어 짜릿하고 강렬한 과정이었어요. 사실 요즘은 앨범을 만들었을 때에 비해 음악 말고도 영화도 더 많이 보려고 하고, 책도 더 많이 읽으려 하거든요. 다양하게 삶이 표현되는 방식을 더 유연하고 폭 넓게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또 다음 음악이 잘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서요. 사랑을 표현하는데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언어와 모양들이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눈이 반짝 할 만큼 저를 꿰뚫는 것들을 만날 때면 제 음악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고요."
-밀레나 씨의 스펙트럼이야 워낙 넓죠. 요즘 새로 관심 갖게 된 아티스트나 장르가 있습니까?
"얼마 전 랜덤하게 들은 노래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찾아보니 영화 '500일의 썸머' 주인공인 주이 디샤넬이 속해 있는 '쉬 앤 힘(She & Him)'이라는 팀의 노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고 원래 노래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너무 제 취향이라 앨범들을 몇 번이고 돌려 들었어요. '카펜터스'를 너무 좋아하는데 딱 그 풍의 빈티지팝 기반이라 요즘 빠져있어요. 요즘은 빈티지하고 투박한 질감이 너무 좋아져서 올드팝들 많이 찾아 듣고 있습니다. 데뷔 초 부터 지금까지 점점 변해왔던 제 음악이 앞으로 또 어떤 모양으로 나아갈 지 요즘은 가만히 지켜보는 중이에요."
-지난해 활동으로 프로듀서 관점도 달라졌을 거 같아요. 프로듀서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완성도'라는 단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군더더기 없고, 튀는 부분 없이 깔끔한, 세련된 사운드에 좀 더 집착했다면 지금은 그런 것만이 음악 또는 앨범을 완성한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 오히려 모난 부분들이 더 매력적이게 다가오는 것 같고. 어릴 때는 단점 없고 완벽한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좀 더 인간적이고 개성을 드러낼 줄 아는 사람이 더 멋있게 느껴지는 것처럼요. 프로듀서로서 저의 부족한 점이 드러나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참 두려웠었는데 지난해 앨범을 내고 그런 것에 있어서 많이 유연해진 것 같아요."
-밀레나 씨의 올해 활동이 더 기대가 되는데요. 혹시 힌트를 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나요?
"일단 올해에도 새로운 음악들 들려드릴 예정이고요. 정규까지는 아니어도 싱글보다 미니앨범이 될 것 같아요. 할 얘기가 계속 생기는 것이 참 다행인 것 같습니다. 또 계속해서 다양한 무대에서 인사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페스티벌에서도 더 자주 인사 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할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제 음악 많이 들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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