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시스] 이상제 기자 = 습한 열기와 강렬한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는 수영장. 2026 병오년을 맞아 새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친 물살을 가르는 두 선수가 있다. 대구 달서구청 장애인 수영팀 소속의 강주은(30)·강정은(27) 자매다.
대구 최초의 장애인 실업팀으로 창단돼 장애인 수영계의 롤모델이 된 이들의 곁에는 어머니이자 엄격한 스승인 박소영(57·여) 감독이 늘 함께한다.
평소 이들의 보금자리였던 두류수영장이 천장 처짐 현상으로 보수 공사에 들어가면서 달서아트센터 수영장으로 훈련 터전을 옮겼다. 50m 레인을 갖춘 두류수영장이 아닌 국제 규격의 절반 수준인 25m 레인을 갖춘 이곳에서 훈련해 정확한 기록 계측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매의 얼굴엔 아쉬움이나 피곤함보다 단단한 결의가 비쳤다.
훈련을 막 마치고 나온 듯 촉촉한 머릿결과 은은한 소독약 냄새는 장소가 어디든 이들이 '현역'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기록보다 바른 태도가 우선"…박소영 감독의 '신뢰 리더십'
대구 최초의 장애인 실업팀으로 창단된 달서구청 수영팀을 이끄는 박소영 감독에게 지난 시간은 '책임감'과의 싸움이었다.
지적 장애 선수들을 지도하며 훈련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때론 쉽지 않았지만, 박 감독은 복잡한 프로그램 대신 '반복'과 '바른 태도'라는 핵심 가치를 팀에 심었다.
그는 "단순히 기록을 내는 것보다 바른 태도가 중요하다"며 "우리가 먼저 좋은 모습을 보여야 꿈나무 선수들이 '달서구청은 국가대표가 있는 팀'이라며 꿈을 키울 수 있다.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팀의 이미지를 만든다는 책임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팀 창단부터 지금까지 책임감을 강조해 왔다. 단 두 명의 선수로 시작한 소수 정예 팀이지만, 이들이 짊어진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세밀한 전술 대신 맞춤형 프로그램을 직접 짜고 컨디션이 떨어지면 직접 마사지를 해주며 "정신 차리자"고 독려하는 등 선수들의 멘탈을 관리했다. 이러한 헌신 덕분에 자매는 대구 장애인 스포츠의 자부심으로 성장했다.
◇샤워하러 갔던 수영장, 국가대표의 꿈으로 피어나다
자매가 물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뜻밖에도 소박했다. 동생 정은 씨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고모를 따라 샤워하러 갔던 수영장에서 처음 물의 매력을 느꼈다. 언니 주은 씨 역시 5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해 장애 등급을 받기 전부터 이미 물살을 가르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국가대표급 실력을 갖추기까지의 여정은 험난했다. 특히 7년간 국가대표로 활동한 정은 씨에게 선수촌 생활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지도자가 바뀔 때마다 훈련 방식도 변했고 정체된 기록은 자매와 감독 모두를 답답하게 했다.
결국 박 감독은 선수촌 대신 팀에서 직접 지도하는 결단을 내렸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밀착 지도는 곧 성과로 이어졌다.
정은 씨는 2025년 제45회 전국체전 개인혼영 200m에서 무려 100분의 1초 차이로 짜릿한 승리를 거머쥐며 다시 한번 건재함을 과시했다. 언니 주은 씨 역시 2023년 전국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며 자매의 저력을 증명했다.
◇"라이벌이자 든든한 동료"…세상에 전하는 '파이팅'
자매에게 서로는 어떤 존재일까. 특별한 응원 구호는 없지만,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 훈련이 끝나면 함께 강아지 두 마리를 산책시키고 언니는 매운 음식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평범한 일상을 공유한다.
하지만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 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한 '선수'가 된다. 정은씨는 "늘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며 라이벌들의 이름을 되새겼다. 주은씨는 "내년에도 국가대표에 선발돼 동생과 함께 좋은 기록을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소영 감독은 이제 이들이 기량 향상을 넘어 안정적인 동행을 이어가길 바란다.
박 감독은 "정은이는 다가올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이상의 성과를 냈으면 하고, 주은이는 지금처럼 부상 없이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며 후배들에게 좋은 기준점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애라는 벽을 허물고 매일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드는 자매의 스트로크는 누군가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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