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에도 비어 있는 이동노동자 쉼터
주차도 동선도 걸림돌…택배기사에겐 먼 쉼터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김다빈 인턴기자 = 연일 이어지는 한파 속에서 배달·대리 등 이동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 혹한과 폭설에 그대로 노출되는 이들은 잠시 몸을 녹일 공간조차 마땅치 않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이동노동자 쉼터 역시 현장 여건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2024년 발표한 '플랫폼 종사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배달·운송 등 기후 영향을 직접 받는 이동노동자는 약 48만5000명에 달한다. 이는 국내 플랫폼 종사자(88만3000명)의 절반을 넘는 규모다.
그러나 이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이동노동자 쉼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고용노동부의 전국 이동노동자 쉼터 현황에 따르면 2024년 11월 말 기준 전국에 설치된 쉼터는 83개소에 불과하다. 단순 계산하면 쉼터 1곳당 5800명 이상의 이동노동자가 이용해야 하는 셈이다.
이처럼 이동노동자 쉼터는 수 자체도 충분하지 않은 데다, 위치와 이용 여건이 현장 특성과 맞지 않아 근무 중 실제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형 차량을 이용하는 택배기사의 경우 차량 주차 공간이 부족하고, 배송을 마쳐야 업무가 종료되는 특성상 근무 중 배송 구역을 벗어나 쉼터를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탓이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택배본부 준비위원장은 "택배 노동자는 1톤 차량을 이용해 일하지만 대부분 쉼터에 주차공간이 없어 차량을 세울 수 없고, 배송 속도가 중요한 업무 특성상 배송 구역을 벗어나 쉼터를 찾아 쉴 여유가 없다"고 했다.
김광석 택배노조 위원장은 "쉼터 위치가 실제 작업 동선과 너무 멀기도 하고, 차량을 주차할 공간도 부족해 이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도 "택배기사는 사실상 이용하기 어렵고, 보통 대리기사들이 이용한다"고 보탰다.
실제로 지난 7일 오후 1시께 뉴시스가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이동노동자 쉼터는 영하권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약 두 시간 동안 쉼터를 이용한 사람은 대리운전기사 A(61)씨 한 명뿐이었다.
A씨 역시 "역 안을 지나가다 (쉼터가) 우연히 보이면 들어가는 정도이지,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근무 시간과 장소가 일정하지 않아 콜이 비는 동안 지하철역이나 상가 인근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 이용 현황도 쉼터의 한계를 보여준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이동노동자 쉼터의 경우 한파가 집중되는 1월과 12월에 이용이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일부 지자체 쉼터의 이용 상황은 여전히 저조하다.
종로구는 별도의 방문 현황조차 관리하지 않고 있으며, 용산구 쉼터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전체 이용자가 66명에 그쳐 하루 평균 3명 안팎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봉구 쉼터 역시 지난해 하루 평균 이용자가 20명 수준에 머물며, 한파 대응 공간으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동노동자 쉼터는 존재하지만 이는 법적 의무가 아닌 지자체 차원의 '선의'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라며 "넓은 활동 반경에 비해 제한된 위치만 제공되다 보니 많은 이동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동노동자들의 열악한 겨울 근무 환경은 쉼터 부족만으로 설명되기보다는, 제도 공백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법·제도가 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인 이동노동자들은 휴식권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임금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됐다"며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은 지정된 휴게공간은 물론, 몇 시간 일하면 얼마를 쉬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조차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부가 추진 중인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 제정되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최소한의 안전과 휴식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될 것"이라며 "쉼터 확대도 도움이 되지만, 그에 앞서 이동노동현장의 실태를 면밀히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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