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004만6000원 몰래 놓고 사라져
26년 동안 총 11억3488만2520원 기부
"천사 뜻밖의 선물 감사…온기 전할 것"
[전주=뉴시스]최정규 강경호 기자 = "기자촌 한식뷔페 앞 소나무에 상자 1상자를 뒀습니다. 좋은 곳에 써주세요."
30일 오후 3시43분, 전북 전주시 완산수 노송동주민센터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전화를 받은 이병욱 주무관은 갑작스런 전화에 뭐라고 반문하려 했지만, 전화를 건 이는 같은 말만을 반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곧 주민센터의 모든 직원들은 올해도 '얼굴 없는 천사'가 찾아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전화의 목소리가 남긴 장소를 찾아가자 복사용지 상자가 놓여있었다.
상자에는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천사의 편지와 함께 동전이 담긴 돼지저금통과 5만원권 현금 다발이 담겨있었다.
올해 천사가 전해준 돈은 9004만6000원. 올해까지 26년 동안 천사가 기부한 총액은 11억3488만2520원이다. 지난해 누적 기부액이 10억을 넘어갔고, 올해는 처음으로 단년 성금액도 9000만원을 넘었다.
이름과 직업 모두 베일에 쌓인 천사의 기부는 지난 2000년 4월, 한 초등학생의 손을 빌려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동사무소에 기부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때부터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매년마다 이 같은 기부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2019년에는 그가 두고 간 6000여만원의 성금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천사의 선행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의 뜻을 유지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도 이어졌다. 전주시는 지난 2009년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으며,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를 천사의 길로 명명하고 기념공원도 조성했다. 지역주민들은 매년 10월4일을 '천사의 날'로 기념해 불우이웃 나눔 행사를 하고 있다.
그의 선행을 연극과 영화로 풀어내는 이들도 있었다. 2011년 12월9일에는 전북지역 연극단체인 창작극회가 얼굴 없는 천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극 '노송동 엔젤'이 무대에 올랐으며, 2017년 4월에는 영화 '천사는 바이러스'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2025년이 이틀 남은 이날 오전까지도 천사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아 혹여나 하는 불안함이 돌기도 했지만, 천사는 여전히 노송동에 따뜻한 온기와 희망을 전해줬다.
전화를 받은 이병욱 주무관은 "공무원 생활을 한지 얼마 안 됐는데 따로 전해들은 게 없어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매년 찾아오는 천사께서 오셨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천사께서 전해주신 따뜻함과 온기를 주변에 잘 전달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식 얼굴 없는 천사 축제 조직위원장은 "천사께서 26년째 선행을 베풀어주시고 계신데, 저희 노송동 역시도 천사가 오신 이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예전보단 찾아오신 시점이 늦어서 긴장을 했지만, 오늘 뜻밖의 선물을 주셔서 모든 시민 분들이 고맙게 생각하실 것이다.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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